[금융포커스] “年 보험료만 6조?” 가상자산거래소 보험 가입 망설이는 이유

5대 거래소 중 4개 거래소 보험 가입 無
보험 가입 대신 수백억원 준비금 적립
年 보험료 수억~수조원에 보험 외면

그래픽=정서희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의 보험 가입 의무가 새롭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주요 거래소는 여전히 보험 가입을 망설이는 상황입니다. 연간 보험료가 최대 수조원대에 달할 정도로 보험료 책정이 높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주요 거래소들은 보험 가입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준비금 적립으로 보험 가입을 갈음하고 있습니다.

29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5대 원화마켓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중 고팍스를 제외한 4개 거래소는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4개 거래소는 보험 가입 대신 수백억원대 준비금 적립을 택했습니다. 거래소별로 살펴보면 업비트가 471억원, 빗썸 400억원, 코인원 177억원, 코빗이 130억원을 마련했습니다.

거래소가 가입하는 배상책임보험이란 지난달 19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거래소에 새롭게 부과된 의무 중 하나입니다. 원화마켓 거래소는 최소 30억원, 코인마켓 거래소는 최소 5억원의 보상을 책임지는 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이는 해킹이나 전산사고 등으로 이용자의 예치 자산이 손실됐을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입니다. 다만 거래소는 보상 금액에 준하는 준비금을 적립했다는 사실을 증빙하면 보험 가입 의무를 피할 수 있습니다.

4개 거래소가 수백억원대 돈을 확보해 두면서도 막상 보험 가입을 꺼리는 이유는 천문학적인 보험료 부담 때문입니다. 거래소가 가입하는 보험의 경우, 거래소 이용자들이 예치한 총 가상자산 혹은 거래소의 연간 거래 규모에 일정 보험료율을 곱해 보험료를 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화마켓 거래소는 15%, 코인마켓 거래소는 8% 요율이 적용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때문에 거래소에 따라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수조원의 연간 보험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국내 점유율 1위 거래소 업비트의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이용자 예치 가상자산은 42조원에 달합니다. 여기에 15% 요율을 적용하면 연간 보험료만 6조3000억원가량에 육박합니다. 한 달에 내야 할 보험료는 5200억원이 넘습니다.

같은 기준으로 추산한 국내 점유율 2위 빗썸의 연간 보험료 예상치는 105억원입니다. 다른 거래소 역시 상황은 비슷합니다. 거래소들은 해마다 수억~수조 단위 보험료를 지불하는 것보다 30억원 이상의 준비금을 쌓는 게 지출을 아끼는 방법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 대상 보험이 기존에 없었던 상품이다 보니 보험사에서도 요율을 일단 높게 책정한 것으로 안다”며 “거래소 입장에서 터무니없이 보험료가 비싼 데다 준비금 적립이라는 다른 선택지도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결과다”라고 말했습니다.

5대 거래소 중 보험에 가입한 곳은 고팍스가 유일합니다. 고팍스는 지난 7월 삼성화재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고팍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팍스도 비용 측면에서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다만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보험 가입을 결정했습니다. 고팍스 관계자는 “가상자산사업자(VASP) 재신고 등 사업 체계 개편을 앞둔 만큼 거래소 신뢰도를 높이고 규제를 준수한다는 서비스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보험에 가입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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