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살이로 장애아 존중받게 만들어”

서울앤 2024. 8. 2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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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30여 년간 중증 장애인 ‘엄마’ 역할 해온 신혜옥 볕바라기 사회적협동조합 대표

[서울&] [사람&]

30년 넘게 장애인과 함께해온 신혜옥 볕바라기 공동생활가정 대표가 22일 금천구 시흥동 ‘볕바라기집’ 입구 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장애인도 좋은 집·가정에서 살 권리

아이들 이름의 문패 달아 자존감 높여

부정적인 말 대신에 이해하도록 설명

“서울시의 사회복지사 비용 지원 절실”

“아이들과 함께 ‘대안가족’으로 살기 위한 준비를 10년 전부터 해왔어요. 더는 부모에게 의지할 수 없게 되는 날에 대비한 거죠. 아이들에게 이곳이 ‘우리 집'입니다.”

볕바라기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금천구 시흥동 ‘볕바라기 공동생활가정’은 2023년 10월1일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20~30대 중증 장애인 6명이 사는데, 주말에 잠깐 부모가 사는 집에 들른다. 신혜옥(62) 볕바라기 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장애인과 생사고락을 함께해왔다.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은 장애인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생활하는 지역 주거시설이다. 소수의 장애인이 함께 사는 대안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 대표가 ‘엄마’인 셈이다. 신 대표는 22일 “나이 든 아이들 부모가 건강이 좋지 않거나 세상을 떠난다면 아이들을 책임질 곳은 볕바라기집뿐”이라며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워가고 있다”고 했다.

“볕바라기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볕을 쬔다는 뜻입니다. 양지에서 볕을 쬐려면 느긋하고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결국 장애인도 ‘인간다운 생활을 해보자’는 말입니다.”

볕바라기는 2000년 9월 가산동에 볕바라기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면서 시작됐다. 2015년 8월에는 장애인 자녀 부모들과 주간보호센터 운영진이 뜻을 모아 자녀들이 지역사회에서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금 있는 곳에 새 건물을 지었다.

볕바라기집 모습

“이곳 환경이 너무 좋아요.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좋은 집에서 한번 살아봐야죠.” 신 대표는 ‘우리 집’ 자랑하는 게 특기라며 ‘볕바라기집’을 자랑했다. 2층으로 된 볕바라기 공동생활가정 건물은 2016년 서울시건축사회 ‘우리 동네 좋은 집 찾기’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았다. 건물 구조나 내장재, 내부 장식이 장애인이 편리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일반 가정집과 똑같이 방과 거실, 부엌이 있는 구조다. 층마다 남녀 구분된 화장실이 1개씩 모두 4개가 있다.

볕바라기 공동생활가정의 목표는 ‘마을살이’다. 중증 장애인들이 일반 가정 같은 집에서 ‘가족생활’을 하며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신 대표는 장애인들에 대한 교육과 치료, 낮 프로그램 활동 등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노력하고 있다. 특히 마을 안에서 비장애인들과 이웃으로 지내면서 서로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장애·비장애 구별 없이 서로에게 이웃이 되도록 애쓰고 있다.

“마을에서 살아가려면 먼저 마을에 장애인이 살고 있다고 알려야 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통장에게 장애인 공공생활가정이라고 말하지 말고 유치원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단호히 거절했죠.” 신 대표는 “우리 아이들은 장애인으로 존중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며 “마을살이는 우리가 여기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그래서 집 앞에 아이들 이름이 적힌 문패를 달아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우리 애들을 보면 표정이 살아 있다고 해요. 애들에게 처음에는 분노밖에 없었어요. 살아오면서 듣는 말이 ‘하지 마’ ‘안 돼’ ‘아유 짜증 나’ ‘조용히 해’ ‘앉아’ 같은 말입니다. 이곳에서는 부정적인 단어를 절대 쓰지 않습니다.” 신 대표는 “누군가 소리 지른다고 해서 ‘목소리가 왜 이렇게 커’ ‘조용히 해’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설명한다”고 했다.

신 대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아이들과 함께 다녀온 해외여행을 꼽았다. “아이들과 여행도 합니다. 15년 전에는 첫 외국 여행으로 일본 도쿄를 다녀왔어요.” 신 대표는 “부모들이 아이 여권을 만드는 것 자체를 너무 신기해하며 좋다고 했다”며 “그 자체로 행복을 느끼는 것을 보고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신 대표는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을 운영하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중에서 사회복지사 급여와 운영 비용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은 장애인 4명에 사회복지사 1명꼴로 서울시 지원금이 나온다. 볕바라기 공동생활가정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은 6명인데, 사회복지사 4명이 근무하고 있다. 장애인 부모가 내는 비용과 몇 곳에서 들어오는 후원금 등으로 부족한 비용을 메워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신 대표는 “올해 5월부터 서울시에서 사회복지사 1명분 인건비 지원을 받고 있지만, 운영비가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며 “4명을 초과하는 2명에 대해서도 추가로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의 시작은 ‘존중’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 부모, 지역사회, 사회복지사 모두가 이를 바탕으로 소통하는 게 중요합니다.” 신 대표는 “우리 아이들이 장애가 있어 도움이 필요할 뿐이지, 장애인 이전에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며 “앞으로 계속 지역사회 일원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글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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