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탄소중립법 헌법불합치…“온실가스 감축목표 부족”
헌법재판소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계획을 세운 정부의 목표가 부족하다며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29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정부가 2049년까지 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지 않아 미래 세대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오는 2026년 2월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번 소송은 이른바 아시아에서 제기된 첫 ‘기후 소송’으로 관심을 모았다. 다만 정부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기로 한 것은 합헌 결정을 받았다.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규정한 부문별, 연도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합헌으로 판단됐다. 법조계에서는 “정부에 장기적인 기후 대책 마련을 권고하면서도 국내 경제∙산업 구조 등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헌재는 이날 청소년 기후 단체와 영유아 등이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생명권과 환경권,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낸 헌법소원 심판에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현행 법령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이상 감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은 2030년까지 감축 목표만 정하고, 2049년까지 19년간 감축 목표에 관해 어떤 정량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이날 기후 소송에서 정부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면서도 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지 않은 부분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2021년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과 이듬해 나온 시행령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지만, 그 이후 기간에서는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있다.
헌재는 이에 대해 “2031년 이후 감축 목표를 강화하기 위해 사전에 필요하고 가능한 조치를 다하지 않으면, 감축 부담은 더욱 증가해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면서 “현행법은 기후 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 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50년에 이르기까지 온실가스의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이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감축 목표를 규율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는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해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다만 헌재는 이 기간 정량적인 감축 목표를 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회에 권한이 있다고 보고, 법을 개정하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반면 헌재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이라는 정부 목표가 국제사회 기준에 미치지 못해 시민들의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기후 단체들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온실가스 40% 감축 비율 등은 2050년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전제로 한 중간 목표”라며 “이 수치만을 이유로 미래에 부담을 주거나,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법이 아닌 시행령에 정한 것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경로 설정에 사회경제정책, 외교적 상황 등을 반영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문제없다고 했다.
정부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연도별∙부문별로 매년 줄여 올해 625.1백만톤, 2030년에는 436.6백만톤까지 감축하는 것으로 정한 것에 대해서도 합헌 결정이 나왔다.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은애·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이에 대해 “기후 위기에 상응하는 보호 조치”라며 “명백한 재량 일탈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 재판관은 기본계획으로는 ‘40%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위헌 의견 정족수(6명)에 미달해 합헌으로 판단됐다.
정부와 산업계는 그간 “국내의 제조업 중심 경제구조 등을 고려할 때 현재 감축 목표치만으로도 경제적 부담이 크다”며 “기후 대응에 있어 정책적 재량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 법조인은 “헌재가 정부와 산업계의 목소리를 일부 받아준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고는 2020년 3월 기후 단체가 위헌 소송을 낸 지 4년 5개월 만에 나왔다. 헌재는 올해 4~5월 공개 변론을 두 차례 진행하며 집중 심리했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 대해 “탄소중립기본법이 기후 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보호 조치로 필요한 성격을 갖추었는지,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을 고려해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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