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농성 235일···40도 폭염에 살아남은 옵티칼 소현숙씨가 외쳤다
“언젠간 ‘회사 다녀올게’ 하며 현관문을 나설 수 있겠다는 희망. 우리는 그걸로 버텨요.”
경북 구미시 구미4공단에 입주해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지난 28일 소현숙씨(43)가 9m 높이의 옥상에서 이처럼 외쳤다.
소씨는 지난 1월8일 직장동료 박정혜씨(40)와 함께 불에 탄 공장건물 옥상으로 올랐다. 흑자를 내던 외국기업이 불이 났다는 이유로 회사를 청산하고 공장철거를 강행하자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다. 현재 이곳에서는 노동자 7명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2003년 설립 이후 LCD(액정 표시장치) 핵심부품인 편광필름을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해왔다. 2022년 10월 구미공장 화재 발생 뒤 주주총회를 거쳐 해산결의를 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구미공장 폐업이 노조결성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구미공장은 불이 나기 전 물량이 늘어 100여명을 신규 채용했고 연 200억원대 흑자도 냈다. 그런데도 사측은 화재 직후 공장을 복구하는 대신 구미 생산 물량을 경기 평택시 한국니토옵티칼 공장으로 옮긴 뒤 그곳에서 신규채용을 진행했다. 두 공장 모두 일본 니토덴코의 자회사다.
소씨는 “이곳에서 16년을 일했다”라며 “회사는 우리나라에서 각종 혜택을 받아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고서도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먹튀’ 했다”라고 말했다. 옵티칼 구미공장은 외국인투자촉진법 등에 근거해 50년 토지 무상임대, 세제지원 등의 혜택을 받았다.
공장 아래에서 농성을 벌이는 다른 직장동료들은 두 사람을 위해서 매일같이 물과 음식을 도르래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역대급 폭염이 덮친 이번 여름에는 얼린 생수통 수시로 날랐다고 한다.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장은 “텐트 안 온도가 40도를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며 “여성 동지들이 얼음물을 안고 버텨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위해 희생한 것 같아 죄책감도 들었다”고 말했다.
강한 투쟁 의지도 설날과 추석에 가족들을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은 감추지 못했다. 박씨는 가족들에게 전화도 먼저 걸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딸이 걱정되시는 마음에 어머니가 통화하면 줄곧 우시는데 상처를 주는 것 같아 전화를 잘 하지 않게 됐다”고 털어놨다.
막막해진 생계도 걱정이다. 금속노조에서 지원되는 최소 생계비 지원비는 이달 끊겼다. 이 지원금은 최대 1년까지 지원된다. 소씨는 “나이가 많은 어머니가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엄마를 도와주지 못하는 딸이라는 생각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9년 만에 회사로 돌아간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식은 그들에게 희망이다. 아사히 노동자들은 지난 1일 구미국가산단에 있는 AGC화인테크노코리아(아사히글라스) 공장에 복직했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하청업체를 폐업해버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3321일 만이다.
박씨는 “아사히 동지들이 ‘10번의 여름, 9번의 겨울을 보내고서야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울컥했다”며 “무언가 보상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 그저 일하고 싶다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구미공장 노동자 생계지원을 위해 다음달 9일까지 ‘옵티칼도 이김’이라는 생계기금 마련 재정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사히글라스 노동자의 생계비를 마련했던 ‘아사히 이김’ 사업의 후속이다. 김 1세트를 2만원에 판매하고 남은 수익금을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로 후원하는 방식이다.
최 지회장은 “많은 동료가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했다는 말을 들었다. 아사히도 이겼고 옵티칼도 이기겠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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