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AI 덕에 법률 번역 10배 빨라질 것… 유니크한 기술로 글로벌 확장"
'베링AI' 법률 문서 학습… 계약서 등 전문서류·용어 번역 특화
직원 20명… 전 세계 500여명 검수 지원 변호사 네트워크 보유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산업 영역을 창출하거나 기존 영역의 혁신을 강제한다. 누가, 얼마나 빠르게 AI로 인한 변혁을 따라잡거나 앞서가느냐가 앞으로의 경제 생태계를 뒤바꿀 것이라는 예측은 이제 상식이다. 그 변화의 흐름을 발빠르게 포착한 두 젊은 사업가가 설립한 AI 법률·특허 전문 번역회사 '베링랩'은 벌써 한국 시장을 선도하는 것을 넘어 세계 시장까지 접수하기 시작했다.
AI 번역 시장은 연평균 37% 이상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55억달러(한화 7조3500억원 상당)를 넘어섰다. 국내 AI 번역 시장도 2000억원에 달한다. 구글, 바이두,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이 시장을 이끌고 있고, 국내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 기업도 진출했다. AI 번역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정확도를 높여 더 다양한 분야에서 더 폭넓게 활용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보이는 이는 없다.
베링랩은 그 중에서도 전문성이 필요한 '법률 번역'에 주목했다.
김재윤(38·사진) 베링랩 공동대표는 "AI를 우리가 가진 법률 번역 데이터로 학습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며 "막상 결과를 받았을 때 깜짝 놀랄 정도의 속도와 정확성을 보고 '된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베링랩은 미 펜실베이니아대학 동기인 김 대표와 문성현(39) 공동대표가 의기투합해 만든 법률 전문 번역회사에서 출발했다. 금융계 출신인 김 대표와 법률 전공인 문 대표가 서로의 전문성을 살린 번역 서비스를 한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2012년 설립했다. 김 대표는 "전문가들이 전문 번역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구상으로 접근했고, 법률 번역 수요에 맞춰 빠르게 성장했다"며 "인간번역 회사로서는 법률번역을 가장 많이 하는 회사로 자리 잡았다"고 소개했다.
두 사람은 AI 번역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2020년 베링랩으로 변신을 꾀하며 AI 법률 번역 서비스인 '베링 AI'와 '베링AI 플러스'를 출시했다. 현재는 직원 20명 규모로 성장했고, 전 세계 500여명의 검수 서비스 지원 변호사 네트워크도 보유하고 있다.
김 대표는 "구글번역 등의 성능이 좋아지고 있지만 전문영역으로 들어가면 업무용어 등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다. 베링AI는 법률 문서 학습이 돼 있어 계약서 등 전문서류와 용어 번역에 특화돼 있다"고 자신했다. 베링랩은 설립 6개월 만에 네이버의 기업형 액셀러레이터 D2SF와 서울대기술지주로부터 투자를 따냈다. 이달 초에는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30억원 규모 프리A 투자를 유치했다.
이 같은 성과가 가능한 이유는 베링랩이 법률 분야에 특화한 AI 엔진을 개발해, 범용 AI 번역 대비 우수한 성능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베링랩 개발팀은 2020년 세계적인 기계번역대회인 WMT20, 이듬해 2021년에는 WAT 2021에서 잇따라 1등 수상을 했다. 지난해에는 화웨이클라우드가 주최한 국제 스타트업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지난해 싱가포르 정부가 주최한 글로벌 딥테크 스타트업 경진대회인 '슬링샷(SLINGSHOT) 2023'에서 2위를 차지했다. 현재 국내에서만 140여 개 로펌, 기업 법무팀 등 전 세계에서 300여 개 고객사를 확보했다. 솔루션 재구매율이 90%를 넘어설 만큼, 정확도와 속도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김 대표는 "베링AI의 핵심은 속도다. 법률 번역이나 어려운 전문 번역은 A4 1장당 1시간 정도가 걸릴 정도로 시간이 필요하지만, 베링AI는 번호사로부터 최종 검수까지 받아 정확도를 검증하면서도 3배 정도 속도가 빠르다"면서 "궁극적으로는 10배까지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또 다른 특징은 정확성이다. 인간은 번역에서 오역 등 실수가 있을 수 있고, 개인의 번역 스타일이 존재하지만, AI는 정형화된 번역을 하면서 오역이나 누락 없이 완성도를 높인다"면서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인간번역보다 40% 가량 저렴하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베링랩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중이다. 싱가포르에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번역 언어도 영어 외에 중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을 서비스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올해 중 4~5개 언어를 추가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조사해 보니 아시아 지역에 법률번역을 하는 소규모 업체는 있지만 AI 법률 번역은 베링랩이 가능한 영역이어서 해외 진출을 고민하게 됐다"며 "올초 미국 뉴욕 글로벌 리걸테크 행사에도 참여했고,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IT·가전 박람회인 CES 2024에도 리걸테크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참가했다"며 "잠재적 파트너사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의 서비스를 소개하고, 해외의 시각은 어떤지 알아봤다. AI 법률 전문 번역이 필요한 이유를 또 한 번 알게 됐고, 해외에도 경쟁 서비스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베링AI가 '유니크하다'는 반응도 받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한국에서는 번역 업계가 굉장히 낙후돼 있고 노동집약적인 측면이 있다"며 "그런 점을 혁신할 수 있는 회사가 바로 한국에서 나올 수 있다는 비전을 갖고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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