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美 수천억 '탄소세 폭탄' 코 앞…철강업계 "정부 지원 절실"
"EU는 수소환원제철 전환 비용 최대 60% 지원…NDC도 속도도절을"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에너지집약도가 높은 제조업에 탄소세를 물리는 미국 청정경쟁법(CCA)과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내년부터 줄줄이 시행될 전망이다. 업계에선 수소환원제철 전환 및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립 속도조절 등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으로 '제1차 산업부문 탄소중립 정책협의회'를 열고 글로벌 탄소규제 시행에 대한 민·관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김희 포스코홀딩스 전무, 윤호준 현대제철 상무, 채민석 세아창원특수강 전무 등 업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EU는 2026년부터 EU에 수출하는 기업에게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만큼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CBAM을 시행한다. 철강·알루미늄·비료·수소·시멘트·전력 6개 품목이 대상인데, 대한상의가 27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철강업계의 CBAM 인증서 연간 구매 비용만 2026년 851억 원에서 2034년 5500억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앞서 미국은 2025년부터 CCA를 시행할 전망이다. CCA는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 화학제품·화학비료, 석유정제품, 시멘트, 수소, 에탄올 등 에너지집약도가 높은 12개 제품에 대해 미국 제품 평균 탄소집약도 기준을 초과하는 배출량에 톤당 55달러의 탄소조정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야 지지를 받는 초당적 법안으로 연내 통과 가능성이 높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는 "2030 NDC 달성 외에도 글로벌 탄소규제의 도입과 글로벌 기업 협력사에 대한 탄소배출량 관리 및 감축요구가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철강·알루미늄 분야는 EU 탄소국경조정제도와 미국 청정경쟁법안의 대상 품목이라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업계는 이날 철강산업의 수소환원제철 전환을 정부가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철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은 2018년 기준으로 1억120만 톤으로 국가 전체 배출의 14%, 산업 부분의 39%를 차지하고 있다. EU의 경우 철강사가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할 경우 비용의 최대 60%를 지원한다.
김희 포스코홀딩스 전무는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개발·상용화되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는 환원제를 석탄에서 수소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연간 370만 톤의 그린수소와 추가적으로 4.5기가와트(GW)의 무탄소 전력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그린수소와 무탄소에너지를 차질 없이 공급해 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EU는 철강기업의 저탄소 상용설비 전환비용의 40~60%를 정부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일본은 4500억 엔의 기술개발(R&D) 지원, 3조 엔의 탈탄소 실증 및 설비 전환 지원과 함께 세액공제를 통해 그린스틸 판매량에 톤당 2만 엔의 설비 운영비까지 지원하고 있다"고 해외 사례를 강조했다.
2035 NDC 수립이 업계 기술혁신 속도와 보폭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본부장은 "국내 철강산업의 지속 성장과 도약을 위해서는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혁신형 전기로의 상용화가 시급하게 추진돼야 한다"며 "2035년 NDC 수립은 이런 기술개발 속도와 함께 무탄소 에너지, 철 스크랩 공급 등 제반 여건을 면밀히 검토하며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변영만 한국철강협회 상근부회장은 "지난 2022년 탄소중립 산업 핵심기술 개발사업 예산 타당성 조사에서 수소환원제철 실증사업 과제가 통과되지 못했다"며 "수소환원제철 실증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알루미늄 업계에선 폐알루미늄 등 비철 스크랩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에서 재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줄 것을 건의했다.
정부는 자금 지원과 탄소중립 플랫폼 구축을 통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달 25일 공급망으로 연결된 기업 간에 탄소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산업 공급망 탄소중립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승렬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정부는 철강부문의 핵심기술 개발과 세제·융자 지원을 강화하고, 글로벌 탄소규제 대응을 위해 공급망 기업 간에 탄소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산업 공급망 탄소중립 플랫폼을 조속히 구축해 철강·알루미늄 산업의 탄소중립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탄소중립을 선도적으로 이행하려는 기업들이 미래의 불확실성과 투자 리스크 때문에 의욕이 꺾이지 않도록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철강·알루미늄 업종을 시작으로 앞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석유화학·정유, 배터리·자동차 등 총 11개 주력업종의 탄소중립 이행 실태를 점검하고 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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