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 사진 앞세운 ‘트럼프 지지’ 엑스 계정들···“가짜”

친 트럼프 가짜 엑스(X, 구 트위터) 계정에 쓰인 유럽 인플루언서들의 사진. 정보탄력성센터(CIR) 홈페이지 갈무리.

유럽의 젊은 여성 인플루언서들의 사진을 앞세우고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가짜 엑스(X·옛 트위터) 계정이 다수 확인됐다고 미국 CNN 방송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NN은 영국 비정부기구(NGO)인 정보탄력성센터(CIR)와 공동 디지털 조사를 벌인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 부통령 후보 J D 밴스 연방 상원의원을 지지하는 가짜 엑스 계정 56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 가짜 계정은 젊고 눈에 띄는 외모의 여성 사진을 내세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을 위스콘신 출신 32세 트럼프 지지자라고 소개한 갈색 머리 여성 ‘루나’가 한 예다. 올해 3월 가입한 후 루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구호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홍보하며 3만 명 팔로워를 확보했다. 계정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가 암살 시도에 직면해 있다는 등의 음모론 등을 올렸다. 그녀가 지난달 흰색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서 찍은 셀카와 함께 게시한 “트럼프가 영원히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지하겠느냐”는 글은 5만4000명 조회를 기록했다.

하지만 루나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미국 투표권이 없는 독일의 패션 인플루언서 데비 네더로프의 사진을 허락 없이 가져다 쓴 결과물이었다. 네더로프는 친트럼프 가짜 계정이 자신의 사진을 쓴 사실에 분개하며 CNN에 “이게 무슨 일이냐”고 했다.

CNN에 따르면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러시아 등지의 패션·뷰티 인플루언서 17명 사진이 도용됐다. 일부는 인공지능(AI)이 생성한 것이었다. CNN이 인터뷰한 피해 여성들은 사진이 동의 없이 사용되거나 신원이 도용되는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신고를 해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업이 조치를 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엑스는 CNN이 기사를 발행하기 전 24시간 동안 문제 계정 대부분을 삭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포착된 가짜 계정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여성 사진 무단 사용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선언, ‘#마가애국자(MAGAPatriots)’, ‘#MAGA2024’, ‘#IFBAP(나는 모든 애국자를 지지한다)’ 해시태그 사용 등 체계적 패턴을 보면 조직적 생성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단 것이다. 다만 CNN은 트럼프 대선 캠프가 연루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계정에 쓰인 영어에서 문법적 오류가 발견되고 똑같은 내용을 복수 계정이 게시한 점을 들어 외국이 개입한 신호일 수 있다고도 봤다. 에밀리 혼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올해 미국 대선에 앞서 여러 국가 조직들이 SNS에서 허위 정보 캠페인을 시도한 사실이 있다면서 “정교함의 수준을 보면 러시아, 이란, 중국을 포함한 적대국 행위자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