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세대 수긍토록"…연금개혁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승부수
유영규 기자 2024. 8. 29. 14:45
▲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정부가 '청년 세대도 수긍할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 나이 든 세대일수록 보험료를 빨리 올리는 차등 인상과 국민연금 지급 보장 명문화를 추진합니다.
이와 함께 기초·퇴직·개인연금 등 다양한 연금 제도를 함께 개혁해 다층적으로 서민·중산층의 노후 소득을 보장한다는 방침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정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노인은 가난하고 청년은 믿지 못하는 지금의 연금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며 "국회가 근본적인 국민연금 개혁 논의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정부가 구상하는 연금개혁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국민연금 개혁의 3대 원칙으로 ▲ 지속가능성 ▲ 세대 간 공정성 ▲ 노후소득 보장을 꼽았습니다.
특히 "가장 오래, 많이 보험료를 내고 연금은 가장 늦게 받는 청년 세대가 수긍할 개혁을 추진하겠다"며 청년 세대의 '국민연금 불신'을 해소하는 데 방점을 뒀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세대 간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화'를 추진합니다.
연령과 관계없이 요율을 일괄 적용하는 현재의 형태에서 벗어나, 나이 든 세대일수록 일정 기간 보험료 인상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차등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것입니다.
'국민연금 급여 지급 보장' 조항은 법에 못 박기로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국가가 (급여) 지급을 보장한다는 것을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며 "그래야 청년들에게 '우리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모수(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을 통해 국민연금 재정이 바닥나는 것을 조금 연장하자는 게 아니다"며 "연기금 운용 수익률을 제고하고, 연금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자동 안정화 장치를 도입하겠다"고 했습니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자동 안정화 장치'는 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같은 모수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서민·중산층의 노후를 위해 정부는 기초·퇴직·개인연금을 함께 개혁해 다층적으로 소득을 보장한다는 계획입니다.
윤 대통령은 "월 40만 원을 목표로 임기 내 기초연금 인상을 약속드린다"며 "현재 기초연금을 받으면 생계급여가 깎이는 부분이 있는데, 감액하던 금액을 추가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현재 퇴직연금은 임의적인 것이라 가급적이면 모든 기업이 이것(퇴직연금)을 채택하도록 해서 노후 소득을 충실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고, 개인연금에 대해서는 보험 회사를 통한 개인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여러 세제 인센티브를 드리겠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이 밝힌 정부안 중 '세대별 보험료 인상 차등'이나 '자동 재정안정화 장치' 등은 찬반 논란이 거셀 것으로 보입니다.
세대별 보험료 인상률 차등은 보험료율을 13∼15%로 인상하기로 하면 장년층은 매년 1%포인트씩 인상하고, 청년층은 매년 0.5%포인트씩 인상하는 등 목표 보험료율에 도달하는 시기를 차등 적용하는 제도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차등 인상을 통해 국민연금에 대한 젊은 층의 반발을 잠재우고, 실질적인 혜택 부여를 통해 연금기금 지지층을 넓히겠다는 복안입니다.
다만 중장년층 반발이 거셀 것으로 전망될뿐더러,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이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제기됩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세대를 구분할 기준도 모호하고, '세대 간 갈라치기'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자동 재정안정화 장치는 스웨덴, 일본, 독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당수 국가도 운용하고 있는 장치입니다.
예를 들면 스웨덴의 자동조정장치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연도별 연금 지급액이 축소되고, 연금 부채가 자산보다 커질 경우 균형재정을 달성할 때까지 지급액이 줄어드는 방식입니다.
전문가들은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는 방향성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일부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급여액이 자동 안정 장치를 도입해도 될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남찬섭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연금 급여 수준은 평균 65만 원 정도로,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해 더 깎는다면 소득 보장이라는 연금 취지에 맞지 않는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는 보험료율도 낮고 급여액도 많지 않아 보험료 인상이나 조세 투입을 통해 수지 균형을 맞추는 게 우선"이라고 제언했습니다.
정부가 월 40만 원까지 인상을 공약한 기초연금은 수급 범위를 놓고 논의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급속한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면 65세 이상 전체 노인 중에서 소득 하위 70%까지 지급하는 현행 기초연금 제도를 계속 지속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난 21대 국회의 연금 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에서 전문가들은 기초연금 수급 범위를 현행대로 유지하는 안과, 수급 범위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차등 급여하는 방안 등을 두고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이 같은 쟁점으로 인해 연금개혁 입법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내달 4일 구체적인 정부안을 발표합니다.
정부안은 큰 틀에서 윤 대통령이 밝힌 원칙과 핵심 사항을 포괄하며 '재정 지속가능성'과 '세대 간 형평성 맞추기'에 중심을 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재정안정론자의 반대편에 선 소득보장론자 등의 반대가 거셀 것으로 점쳐집니다.
참여연대는 오늘 대통령 브리핑 이후 즉각 입장문을 내고 "(국회 연금특위의) 공론화위원회에서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결정한 시민들의 요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반발했습니다.
정부안이 나오는 만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구성도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의 특위 구성 요구에 '정부안이 먼저'라고 대응해 왔습니다.
다만 야당과의 합의에는 진통이 따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민주당 국회 보건복지위 위원들은 정부가 예고한 개혁안에 대해 "21대 국회 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 결과로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해 달라는 국민의 뜻이 확인됐는데도, 이와 반대로 연금을 깎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반발했습니다.
모수개혁에 구조개혁까지 더한 광범위한 연금개혁을 놓고 야당과 원만한 합의에 이를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수치를 조정하는 모수개혁에 비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간의 관계 설정 등이 관련된 구조개혁은 협상 난도가 더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윤 대통령은 "구조개혁이라는 것이 다른 연금, 특수직 연금과 통합하겠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금개혁이 지체되거나 여야 합의가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일단 여야 간 원활하게 소통해 국회가 본연의 해야 할 일, 기능을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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