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정은 "'없음'에 끌렸던 '아없숲' 순경 좋았다"

황소영 기자 2024. 8. 2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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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넷플릭스 제공
배우 이정은(54)이 20대 같은 사랑스러움으로 안방극장 시청자들을 홀리더니, 이번엔 순경 역으로 돌아왔다. 장르와 역할에 가리지 않고 도전을 거듭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가 오랜 시간 꿈꾸던 역할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다.

지난 23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한여름 찾아온 수상한 손님으로 인해, 평온한 일상이 무너지고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이정은은 파출소장 보민 역을 맡았다. 후배 하윤경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2인 1역을 소화했다. 전작인 JTBC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 이어 이번에도 2인 1역인 것.

이정은은 "아니 내가 정은지 씨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하윤경 씨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라면 같은 거 많이 먹고 쪘다고 해야 하나. 근데 또 그걸 용인해 주는 많은 분들이 있어 재밌는 것 같다"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전작 흥행에 이어 이번 작품도 공개 이후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부분 4위에 오르며 활약 중인 상황. "난리가 난 것 같다"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작품 공개 이후 약간은 반응이 엇갈린 것 같다.

"이렇게 논란이 되는 게 재밌다. 원래 어떤 사건 일어나면 난리가 나지 않나. 이걸 어떤 사건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이 흥미롭고 재밌다. '그만 꺼라. 볼 것 없다'는 얘기도 있고 '이 작품 미쳤어' 이런 얘기도 있더라. 그런 다양함이 재밌는 것 같다. 네이버톡방을 보니 53만이라는 숫자를 넘었더라. 경이로운 숫자를 보고 '다들 흥미롭게 보고 있구나!' 느꼈다. 이것 자체가 좋은 것 같다. 어머니한테 하윤경 씨 윤계상 씨 나오면 과거고, 김윤석 선배랑 내가 나오면 현재라고 설명해 주니 흥미를 잃지 않고 무리 없이 9회까지 다 보셨다. 누군가 그런 설명을 해주면 좀 더 쉽지 않을까 싶다."

-순경 역할이라서 하고 싶었다고 들었다.

"사실 중년의 나이에 오면 어떤 일선에서 몸을 움직이고 액션 하는 역할이 별로 안 들어온다. 사무실에서 오더 내리거나 우두머리가 되어서 사무실 붙박이 같은 역할이 많은데 활동성이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어느 시기부터 중년의 여성 순경을 다룬 작품 몇 개 제안이 왔었는데 아직 작품으로 나온 건 없다. 내가 테스트를 해봐야 어디까지 연기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기도 하고 제복 입은 모습으로 낯선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주변에 순경 역할이 있으면 하고 싶다고 흘렸다. 모완일 감독님이 '분량이 적은데 같이 할 수 있겠냐?'라고 제안했고 하겠다고 했다. 7, 8부까지 대본을 받고 빈도수가 내 생각보다는 많다고 생각했다. 사실 난 더 안 나올 줄 알았다."

-분량 자체도 많지 않아 초반 빌드업 과정이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진짜 처음 마음에 들었던 건 '없음'이었다. 그때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운수 오진 날'과 거의 비슷하게 촬영했다. 나 자체도 이제 전력질주하지 말고 일하자고 다짐하고 있는데, 내 바운더리 시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 중 보민은 빨래할 때 밖에 나가서 한다. 빨래 돌리면서도 자신을 건드는 사건이 있으니 계속 생각한다. 형사님들 탐문할 때 어떤 게 제일 기억에 남는지 묻자 범인을 잡은 성과보다 피해를 입은 가족에 대한 얘길 하는 게 더 많더라. 보민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 그때 그 일로 죽었던 아이와 그 가족 그런 게 전면에 있기 때문에 비슷한 사건과 마주했을 때 다른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어떻게 술래가 됐는지 과정을 다룬 스핀오프 버전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은.

"발로 움직여서 찾지 않나. 그만큼 눈과 감각을 수집하는 능력도 있어야 하는데 나 역시 노력형 배우다. 그녀가 쫓아가려고 하는 추진력, 성실성이 닮아있는 것 같다. 모르는 건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도 많다."

-보민을 연기하며 뭔가 유사성을 많이 느낀 것 같다.

"배우 초창기엔 어떤 관계나 이런 것들을 직접 드러나게 표현하고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려고 노력했다. 연차가 높아지니 어떠한 것을 가졌을 때 추적하는 방식도 소리 없이 조용하게 접근하게 되더라. 보민한테 그런 비슷한 모습을 느꼈다. 그래서 범인을 잡자 쪽이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보민의 성장, 접근 방식이 달라지는 지점을 살리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술래로서 사람들에게 계속 질문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김윤석, 후배 고민시와의 호흡은.

"배우로서 윤석 선배님을 너무 존경한다. 굉장히 짧은 시간에 감독님이 원하는 신을 함께 만들었다. 고민시 씨랑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그녀가 풍기는 연기 아우라에서 상상할 수 없는 순간적인 감정을 많이 느낀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예상치가 잘 안 되는 배우들이었다. 주의 깊게 현장에서 봐야 하더라. 액팅이란 건 서로 주고받는 것이지 않나. 많은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관찰과 거기에 맞는 액팅으로 호흡을 맞추는데 윤석 선배님은 사석에서 개그감이 높은 분이지만 현장에선 딱 시동이 걸리는 느낌이다. 고민시 씨도 비슷하다. (현장에선) 접근 불가다. 가만히 있어도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 순경 역할을 소화한 뒤 CCTV를 6시간 동안 보고 뺑소니 범인을 잡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

"극 중 고민시 씨가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난리 치지 않나. 진짜 눈이 무서웠다. 근데 보민에게 그걸 이길 수 있는 힘이 뭘까 생각하게 됐다. 보통 친구들이 내가 싸울 때 냉혈인처럼 천천히 말하고 되게 침착하게 행동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장면을 그렇게 풀었다. 강렬한 악인이 보이는데 똑같이 맞닿을 필요는 없겠더라. 결국엔 내가 잡는 것이지 않나. 그런데 이런 역할하니 실생활에 진짜 도움이 됐다. '내가 왜 이런 피해를 입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본능이나 촉보다 끝까지 잡아봐야지'란 생각이 들어서 실행에 옮겼다."
이정은, 넷플릭스 제공

-작품을 정말 쉼 없이 하고 있다. 지치지 않는 원동력이 있나.

"에너지가 기본적으로 많은 편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무통이다. 통증을 잘 못 느낀다. 현장에서 에너지를 쏟고 있을 때 모른다. 영화 '경주기행'이란 작품을 찍을 때 액션이 센 게 있었다. 아프다고 못 느꼈는데 얼굴 앞부분 다 멍이 들었더라. 현장에서 좋은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현장 있을 때가 제일 재밌다. 일선에서 물러나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너무 바쁘다 보니 개인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너무 작품을 하다 보니 작품 하는 동안 식구들한테 신경을 못 썼다. 가족 구성원이 되어서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오랫동안 버려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한테 미안하더라. 그래서 지금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 1년 반 정도 된 것 같다. 엄마, 아버지의 요구사항이 많지만 너무 좋아하신다."

-지난 4일 종영한 '낮과 밤이 다른 그녀' 시청률 10% 돌파 공약 댄스 챌린지는 진행 중인가.

"정은지, 최진혁 씨랑 시간을 맞춰놨는데 스케줄 때문에 내가 지키기 못했다. 꼭 약속을 지킬 예정이다. 극 중 액션신이 많았는데 진짜 한의원, 정형외과랑 친해지면서 했다. 한동안 몸이 안 좋아서 춤을 추러 다녔는데 결과적으로 작품에 쓰였다. 평상시를 어떻게 보내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인상적이었다. 진짜 20대처럼 보였다.

"라스트신에서 내 얼굴로 끝나지 않나. 말랑말랑하게 젊은 친구들이 엔딩을 장식할 법한데 내가 나와서 시청자들에게 욕먹지 않을까,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나 싶었다. 이형민 감독과 제작팀에게 감사하다. 내 또래들을 만나면 '내 마음에도 20대가 있어'란 말을 하곤 한다. 임순을 연기할 때 20대처럼 연기하겠다고 생각한 적 없다. 내 마음은 20대니까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덜하더라. 지금도 내 안엔 여러 종류의 연령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꺼내서 보여줬을 때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건 이걸 본 사람들도 자기 안에 있는 20대를 꺼내 마주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다. 그 작품이 끝나니 '내 20대가 다 쓰였구나!' 싶어 빛을 잃은 느낌이다.(웃음) 이제 나의 50대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본래 사랑스럽다고 주변에서 많이 얘기하더라.

"현장 스태프들이 개인 휴대전화에 내 사진을 가지고 다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이후 두 번째였다. 내가 '눈이 부시게'를 김혜자 선생님과 할 때 선생님이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이런 귀여움을 받다니. 자기가 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본 분들이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그럴수록 귀여움을 발휘해야.(웃음) 영화 '기생충' 때 '난 이렇게 귀여운 사람인데'라고 했던 건 순전히 농담이었는데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다."

-요즘 인스타그램을 안 하더라.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의외로 해외에 친구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친구들이 소식을 전해준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안 해도 되겠더라. 이전에 DM으로 오는 걸 일일이 답변해 드렸는데 영화제나 모임 같은 걸 다 갈 수 없으니 창구를 하나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체가 사생활이 많이 안 나오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옛날에는 사투리 배우러 가는 것도 편했는데 자꾸 뭐 하는지 보이는 게 싫더라. 인스타그램을 닫아놓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다."

-연출 전공자인데 연기를 하게 됐다.

"그땐 부모님이 내게 연기할 수 없다고 타고난 재질이 없다고 했다. 걱정이 되어서 일부러 더 모질게 말한 것 같다. 대본 보는 걸 좋아해서 연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고 대학 들어갈 무렵 배우 지망해서 온 친구들을 보니 다들 출중하더라. 4학년 때까지 연출도 실습 시간엔 연기를 하니 자연스럽게 연기를 했던 것이다. 연기가 재밌었다. 연기를 가르치는 코칭을 할 때도 연기가 좋았다. 그러다 내 속도를 낼 수 있을 때 연기를 하게 된 것 같다. 참으면 어느 순간 못 참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그걸 뚫고 나왔다. 아무래도 연출 공부를 했던 사람이지 않나. 연출은 작품 전체를 보니 연기할 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준익 감독님과 얘기하다 보면 재밌다. 영화 '자산어보'를 할 때 좌표를 그려 숲과 나무를 표현하시더라. 좌표를 읽는 게 우리에게 필요한 작업인 것 같다. 이 사람의 동력, 움직임을 읽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영화 40여 편, 드라마 60여 편 100여 작품울 했더라.

"파트에 상관없이 다 한 것이다 보니 많이 한 것 같다.(웃음) 진짜로 재밌게 하면서 온 것 같다. 앞으로도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시청자분들에게 이 사람의 연기는 어떤 상황이든 믿을 만하다는 신뢰를 얻는 것도 중요한데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업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진짜 가족들보다 '연우'(연기하는 친구)들과 보내는 지내는 시간이 더 많지 않나. 연우가 많아지는 게 좋은 것 같다."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나 역할이 있다면.

"옛날에 영화 '끝까지 간다' 조진웅 씨나 이선균 씨 작품이 나왔을 때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약간 성격이 유순하고 둥글둥글하게 적당한 선에서 성실함을 가지고 이때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끝까지 간다'는 말이 요즘 내 인생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자기 속도대로 끝까지 가는 역할에 대해선 궁금함이 있다. 집요할 수도 있고 짜증 날 수도 있지만 그 말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배우로서 끝까지 간다는 의미는 연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좋은 작품의 기회가 많았는데 언젠가 또 작품이 줄지 않겠나. 내게 오는 작품을 성실하게 잘 해낼 수 있는, 처음 먹은 마음처럼 열정을 다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연기 외적으로 요즘 관심사는.

"팔, 다리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이제 관절도 아프고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 근력을 키우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리듬 있는 걸 좋아하더라. 춤을 한 1, 2년 배우고 나니 조금씩 익숙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여력이 되면 좀 더 많이 하고 싶다. 정형외과에 가면 관절 때문에 많이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여유가 될 때 더 해보고 싶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어떤 의미의 작품으로 남을까.

"모두가 빠른 템포의 작품을 많이 볼 때 뭔가 생각했다고 착각하는, 그냥 스쳐 지나갔던 어떤 부분을 좀 더 생각하게 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남길 바란다."

황소영 엔터뉴스팀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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