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첫 ‘아기기후소송’ 낸 초등생…“제발 이겼으면”
“미래에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와 좋은 환경에서 자랄 권리가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저한테 그럴 권리가 있지 않나요?”
헌법재판소가 ‘기후 헌법소원’의 결론을 내리기 전날인 28일, 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당사가 가운데 한 명인 한제아(12)양은 한겨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한양은 2022년 6월13일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는 취지로 태아를 포함한 다른 어린이 61명과 함께 ‘아기기후소송’에 참여한 바 있다.
헌재는 이 ‘아기기후소송’과 앞서 제기된 ‘청소년기후소송’(2020년)과 ‘시민기후소송’(2021년), 뒤에 제기된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2023년) 등 네 건을 병합하여 29일 오후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과 그 시행령, 이에 근거한 국가 탄소중립 기본계획 등 정부 정책이 국민의 생명권과 환경권, 평등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가리게 된다.
한양에게 기후소송 참여 뒤 2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은 너무 길고 어려웠다. 한양은 “처음엔 결과가 빨리 나올 줄 알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도 밥을 먹거나 친구들과 놀다가도 ‘이제 조금 있으면 결론이 나는데, 어떡하지? 제발 이기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고 떨리는 심경을 전했다.
지난 2년이란 시간이 힘들었던 이유는 기후위기로 학교나 일상에서 느끼던 행복이 급격하게 사라지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갑자기 심해진 폭염이 대표적이다.
“체육 시간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제는 비가 너무 갑자기 많이 오거나 너무 더워서 밖에서 체육을 못하는 날이 너무 많아졌어요. 밖에 있으면 피구공이나 축구공은 너무 뜨거워서 만지지도 못할 정도에요.”
한양은 “이제는 축구도 야외가 아닌 강당에서 한다”며, “에어컨 네 대를 18도 온도로 틀어 놓아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너무 더워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심하게 난다”고 했다.
10대 청소년이 단 2년 사이에 느낀 변화가 이렇다. 한양은 “전에는 여름에 긴팔도 입고, 학교에서도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도 시원했는데, 이제는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너무 덥고 그래서 틀면 또 너무 춥다. 너무 추워서 손이 얼어 서술형 시험지를 풀기 어려울 정도인데, 요즘에는 어딜 가도 중간이 없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흘러 자신이 어른이 됐을 때 이런 변화가 더 심각해질 것이란 생각에 걱정이 더 커졌다. 한양은 “이제 두 살이 된 사촌동생과 아주 친한데, 동생은 키가 작아 열을 많이 받는 아스팔트 땅과 훨씬 더 가까이 있다 보니까 저보다 더위와 추위를 훨씬 더 많이 탄다.
여름에는 ‘엄마, 더위’ 이러고 겨울에는 ‘엄마, 너무 추워’라며 계속 칭얼거린다”고 했다. “어른들이 이런 지구를 만들어 놨는데, (자신뿐 아니라) 이 작은 동생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 너무 마음이 속상하고 화가 난다”는 것이다.
그래도 지난 2년이 슬프거나 힘들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다고 했다. 소송 결과를 기다리면서 여러 경험을 통해 오히려 스스로 더 강해지는 걸 느꼈다는 이야기다. 한양은 “원래 엄청 조용한 성격이고 발표도 잘 못했는데 헌법재판소에서도 발언하고, 티브이에도 나오고, 또 인터넷에 ‘악플’도 달리는 것 등을 경험하면서 점점 내가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며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나니까 상관없다.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거 같다”고 말했다.
한양은 지난 5월21일 ‘기후소송’ 관련해 헌재가 연 두 번째 공개변론에 진술자로 참석해 “2031년이 되면 저는 만 19살 성인이 됩니다. 그때까지 지구의 온도는 얼마나 올라갈까요. 저는 이 소송이 2030년 그리고 2050년까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어떤 악플러들은 ‘부모가 애기 내세워서 하는 짓’이라고만 말하지만, 권리는 나에게 있기 때문에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하는 것”이라며 “나에게는 미래에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양은 이제 학교에서 발표도 더 많이 하고, 목소리도 더 커지면서 여러 친구들하고 더 잘 지낸다고 말한다.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높아지면서 비판적인 시각도 생겼다. 한양은 “기후소송과 관련된 법을 찾아 보면서는 왜 ‘녹색성장기본법’ 같은 법에 ‘녹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며 “환경을 상징하는 게 왜 꼭 녹색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기업이 초록색 로고를 활용해 친환경 기업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처럼 (법도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들도 기후소송에 관해 한양에게 물어보는 등 주변에서도 환경 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 걸 느낀다고도 말했다. 학교에서는 기존에 있던 급식 도우미나 청소·칠판 당번 외에도 쓰레기를 줍고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는 일을 하는 ‘환경 당번’도 만들었는데, 예전보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하지 않는 게 보인다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한양은 기후소송의 결정이 나기 전날인 이날도 걱정이 담긴 표정으로 헌재 앞에 섰다. 종이상자를 재활용한 손팻말 위에 직접 꾹꾹 눌러 쓴, “권리는 나에게 있다”는 문구를 들어보였다.
그리고 한양은 되물었다. “당장 소송에 이기더라도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한다는) 약속을 안 지키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약속을 항상 지키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약속을 잘 지키기만 하면, 미래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속보] 한동훈-이재명 9월1일 회담…‘전체 생중계’ 안 한다
- [속보] 헌재, ‘처남 마약수사 무마 의혹’ 이정섭 검사 탄핵소추 기각
- 윤 “채상병 외압 실체 없음 드러나…국민들 이의 달기 어려울 것”
- 서울 연희동에 폭 6m 싱크홀…차 그대로 빠져 2명 중상
- “자매 아니고 부부입니다”…한국에서 레즈비언으로 사는 삶
- 윤, 41분 국정브리핑…자찬 나열하며 ‘국정기조는 옳다’ 고수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직 상실…‘해직교사 복직’ 유죄 확정
- 김건희 담당 ‘제2부속실’ 지연 이유 “청와대와 달리 용산엔…”
- 김한규 의원 “아버지 응급실 뺑뺑이에도, 병원에 화낼 순 없었다”
- [단독] 26년 ‘같은 자리’ 성매매 안마방…건물주는 전직 대기업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