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하는 시골마을에 생긴 '문화 앞마당' [컬처노믹스: 문화잇다]

최아름 기자 2024. 8. 29. 12:4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대한민국 문화혈관 복구 프로젝트 9편
현장 탐방 3편 문화잇다의 다가치
인구 4만명도 안 되는 충북 괴산
마을 골목길에 자리한 문화잇다
원주민과 귀촌한 사람들 모두 모여
문화공간 가꾸고 잡지 발행까지

모두가 서울로 가는 시대에 시골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영상으로 정보를 얻는 시대에 여전히 책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남에게 보여주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 두 집단이 겹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충북 괴산에 있는 서점 '문화잇다'가 바로 그 예시다

충북 괴산의 서점 문화잇다는 전통적인 마을 골목길에 자리잡았다.[사진=더스쿠프]

충북 괴산에는 유독 귀촌한 사람들이 많다. 서울 등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괴산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지만 괴산 역시 인구감소지역이란 운명을 피하지는 못했다. 귀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긍정적인 일이지만 그 사람들이 와서 머무르지 않는다면 인구소멸의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2024년 7월 기준 괴산의 인구는 3만6095명으로 65세 이상 인구를 의미하는 고령화율은 40%가 넘고 14세 이하의 유소년 비율은 5%대다. 괴산 주민 10명 중 4명은 노인이고, 어린이를 찾으려면 100명까지 범위를 넓혀야 겨우 다섯명을 만날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도 괴산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17살 자녀를 키우고 있는 천정한 대표는 그중 한명이다. 몇년 전, 그는 '작은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괴산으로 왔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에서는 시골의 빈집을 저렴하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인구 늘리기'를 꾀한다. 괴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 대표는 괴산 주택 제공 사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이 사업의 조건이 '자녀의 초등학교 졸업'까지라는 데 있었다. 괴산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는 서울 중학교와 괴산 중학교 진학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다시 한번 괴산을 골랐다.

저렴한 집값에 괴산에 머무를 수 있었던 천정한 대표는 서울에서의 출판사 운영 경험과 작은 도서관장 경험을 살려 2년 전 서점을 만들었다. 이제는 '텍스트'가 아닌 '영상'의 시대라지만 그래도 책에 있는 가치를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그런 소망에서 탄생한 '문화잇다'란 이름의 서점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이름만 '잇다'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문화잇다'는 작은 공간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문화 활동과 사람을 연결해왔다.

주로 에세이집이 차지한 독립서점들과 다르게 '문화잇다'에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서적이 가득하다. 주민들의 호응도 좋았다. 독립서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책에 관심을 보여 수십만원어치를 결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문화잇다'가 서점으로서의 가치만 있던 건 아니다. 괴산의 한적한 전통 마을 골목길 안에서 복합문화공간이란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도시와 달리 지방에서, 특히 인구감소지역에서 연극을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잇다의 앞마당에서는 다르다. 관객의 한발짝 앞에서 배우가 연기하고 호흡까지 관객과 함께한다. 처음 '문화잇다'가 문을 열 때만 해도 "이 시골에 무슨 책방이 생기는 것이냐"며 생소해했던 마을 주민들은 이제 문화잇다의 앞마당에서 함께 연극을 즐기고 다락방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이 됐다.

그렇다고 서울의 문화 인프라를 대신하는 수준에 머문 건 아니다. 천 대표는 서점을 키워내면서 '괴산다움'에 집중했다. 귀촌을 선택한 다른 괴산 주민 중에는 출판사 편집자, 영화 마케터 등으로 일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출판과 연이 깊은 사람들이었고 그렇게 '괴산 책문화 네트워크'가 생겼다.

그래서 '책'을 또다시 만들기로 했다. 1년에 한 번씩 나오는 잡지다. 괴산 책문화 네트워크가 매년 함께 만든 이 연간지의 이름은 '툭(toook)'이다. 잊히는 괴산 지역의 장소, 사람, 물건 등을 담아냈다.

놀랍게도 괴산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외부 사람들까지 잡지를 읽고 싶어 했다. 괴산만의 것을 담아내려는 시도가 괴산 밖까지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천 대표는 "지금까지 2권의 잡지가 나왔는데 인기가 좋았다"며 "1500부, 2000부씩 찍었는데 완판해 2쇄를 찍자는 이야기도 나왔었다"고 설명했다.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책문화 축제도 만들어냈다. 귀촌한 사람뿐만 아니라 괴산에 원래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도 '문화잇다'로 책과 깊게 연결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사람, 회사마저 모두 서울로 수도권으로 간다는 시대. 그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고 지방에서의 삶을 꿈꾼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만든 책과 문화를 다시 외부에서 주목한다. 문화로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고 경제적 활동까지 해낸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lmw@news-paper.co.kr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