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 기수로 한국 이끈 최용범, 못다 이룬 올림픽 꿈 향한 노젓기

파리|김현세 기자 2024. 8. 2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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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선수들한테 지기도 했는데,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죠."

그는 "다치고 난 뒤 중학교 선수들과 대결했다가 지기도 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재활만 하던 내가 패럴림픽에 출전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며 "도와주신 많은 분에게 감사한 마음이 커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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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파리패럴림픽 카누 종목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단의 기수 최용범.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중학교 선수들한테 지기도 했는데,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죠.”

최용범(28)에게 2024파리패럴림픽은 꿈의 무대다. 비장애인 카누 선수로 실업팀에 소속돼 뛰던 그는 올림픽 출전을 꿈꾸던 중 2022년 교통사고로 왼 다리를 잃었다. 재활에만 1년이 필요했다. 어두운 터널 같던 지난해를 떠올리면 패럴림피언이 된 지금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다치고 난 뒤 중학교 선수들과 대결했다가 지기도 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재활만 하던 내가 패럴림픽에 출전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며 “도와주신 많은 분에게 감사한 마음이 커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고 밝혔다.

재활을 마친 뒤 국내대회를 휩쓴 최용범은 세계무대에서도 곧장 경쟁력을 보였다. 아무리 비장애인 선수였어도 장애인 종목에 바로 적응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경기정에 앉는 것부터 모든 게 비장애인 선수로 뛸 때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최용범은 장애인카누를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그는 “균형을 잡지 못해 물에도 몇 번 빠졌다”며 “다행히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 있어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7위에 오른 카누월드챔피언십에선 선두그룹과도 불과 30㎝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더라”며 놀라워했다.

최용범(왼쪽 끝)이 29일(한국시간) 콩코르드 광장에서 열린 2024파리패럴림픽 개회식에서 한국 선수단의 기수로 나섰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29일(한국시간) 콩코르드 광장에서 열린 개회식에선 기수로 한국 선수단의 선두를 이끌었다. 최용범은 선수단복을 후원한 스파오가 제작한 기수복 감색 상의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곤룡포에 새겨진 오조룡을 재창조한 금박 자수, 조선시대 문무 고위 관리가 외교사절 또는 왕의 행차 때 착용하던 붉은 갓인 주립을 쓰고 등장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던 선수가 장애를 얻게 된 뒤 패럴림픽 무대에 서게 된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며 “패럴림픽은 장애를 갖게 된 뒤에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고 말했다.

목에 오륜기 문신을 새겼던 열망만큼이나 이번 패럴림픽을 앞두고 세운 목표도 크다. 최용범은 다음 달 6일 KL3 남자 카약 200m 예선을 시작으로 메달 사냥에 나선다. KL3는 몸통과 부분적 다리 기능을 사용하며 상체를 앞으로 구부린 채 패들링이 가능한 스포츠 등급이다.

그는 “비장애인 실업팀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실력이 많이 늘었다”며 “많이 준비했으니 좋은 성적이 나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어 “비장애인 선수로 뛸 때 늘 아쉽게 대표팀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나라를 대표할 수 있게 된 만큼 나 역시 금메달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파리|김현세 기자 kka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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