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업 올스톱됐는데… 정치 혼란 이어지는 프랑스
지난 6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7년 만에 의회를 해산한 이후 정부 사업들이 중단된 가운데,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파리올림픽이 끝났는데도 마크롱 대통령이 새 총리 임명을 하지 않자, 일각에서는 ‘탄핵안’ 카드도 나오고 있다.
지난 26일(현지 시각) 마크롱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지난달 조기 총선에서 1당에 오른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이 내세운 후보를 총리로 임명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마크롱은 “NFP로 구성된 정부는 의회에서 다른 세력들에 의한 불신임 투표로 즉시 무너질 것”이라며 “국가의 제도적 안정성을 위해 이 선택지를 따라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파리올림픽 이후 총리 임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프랑스 정국의 혼란은 더 심해진 셈이다.
문제는 의회 해산 이후 올스톱된 정부 사업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지난달 총선 이후 정부 사업이 상당 부분 중단됐으며 국가 기관은 단순히 기본적인 업무만 처리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예산 결정이나 정책 방향 설정과 같은 중요한 결정들이 늦어지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긴급 대응이 필요한 첫 번째 분야는 주택이다. 르몽드는 프랑스 공증인 협회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기존 주택 매매 건수가 여름 이후 75만건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2021년 가을 120만건 이상의 거래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급감한 수준이다. 르몽드는 “신규 주택 시장도 1년 만에 36% 감소했으며 기업들의 부도도 증가하고 있다”라며 건설 업계가 전례 없는 위험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6월까지만 하더라도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저렴한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법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의회가 해산되면서 법안 논의가 중단됐고, 에어비앤비와 같은 단기 임대의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도 위원회에서 논의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병원의 예산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프랑스 병원들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르몽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의료 시스템은 17억 유로(약 2조5300억원)의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에 따라 병원들은 의료 서비스 제공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응급실 폐쇄나 대기 시간 증가 같은 문제를 낳았다. 병원 시스템의 구조적 개혁과 더불어 긴급한 예산 투입이 필요하지만, 정치적 공백으로 인해 문제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르몽드는 전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총리 선출 과제를 푸는 것이 급선무다. 프랑스 정부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이원집정부제로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눠 가진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총리 임명이 대통령 권한이긴 하나 내각 불신임권을 가진 의회 다수당이 반대하는 총리를 임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통상 총리는 다수당 대표가 차지한다. 그러나 지난달 진행된 총선에서 어떤 정당도 단독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헝 의회(Hung Parliament)’ 상태가 되면서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총리 임명을 하지 않았다. 아탈 총리는 7월 총선에서 집권당이 참패한 뒤 사임을 표명했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당분간 아탈 총리가 임시로 정부를 이끌도록 요청한 상태다.
앞서 지난 6월 유럽 의회 선거에서 소속당이 참패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밝혔다. 의회 해산은 국회의원 전체에 대해 임기가 만료되기 전에 의원 자격을 박탈하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 헌법 제12조 규정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의회 해산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1997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7년 만에 의회를 해산한 대통령이 됐다.
지난달 7일 치러진 프랑스 총선 결선 투표에서는 좌파 연합인 NFP가 전체 577석 중 182석을 차지하면서 1당 자리를 차지했고,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 연대인 앙상블은 168석으로 2위에 올랐다. 1차 투표에서 선두를 달리며 돌풍을 일으켰던 RN과 연대 세력은 143석 확보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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