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향토기업’ 선양소주는 어쩌다 거리 읍소까지 하게 됐나

이종섭 기자 2024. 8. 2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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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주류업체인 선양소주 임직원들이 지난 28일 대전시청 인근 거리에서 ‘지역소주 사랑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선양소주 제공

충청권 주류업체인 선양소주 임직원들이 지난 28일 대전시청 앞 네거리에 섰다. 이들의 손에는 ‘대기업 폭탄공세 지역기업 죽어난다’, ‘맛과 품질로 승부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절실합니다’라고 적힌 피켓과 현수막이 들렸다.

선양소주는 1973년 충청권 소주회사 33곳이 모여 설립한 금관주조를 전신으로 51년 동안 지역에서 소주를 생산·판매해 온 향토기업이다. 전라도 보해, 경상도 무학·대선·금복주 등 향토 소주회사들의 ‘군웅할거 시대’에는 선양소주의 충청권 소주시장 점유율이 60%를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주류시장 침체와 대기업의 공격적인 광고·마케팅으로 시장 점유율이 급락하고 경영 위기에 봉착하자 직원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서 “지역 소주를 마셔달라”고 읍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9일 선양소주에 따르면 각 지역 향토 소주회사들이 처한 경영 위기 상황은 심각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40%를 넘었던 선양, 보해, 무학, 대선, 금복주 등 지역 7개 향토 소주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20% 아래로 떨어졌다. 대면 마케팅이 제한된 상황에서 대기업 소주회사들이 유명 연예인 등을 내세운 공격적인 광고와 마케팅으로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인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2곳의 전체 소주 시장 점유율은 팬데믹 이전 58%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82% 이상으로 올라간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토업체들의 지역 내 시장 점유율도 급감했다. 선양소주는 현재 지역 시장 점유율이 30% 정도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점유율이 절반으로 줄어 매출이 급감하면서 경영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선양은 올해 14.9도의 국내 최저 도수 소주를 개발·출시하는 등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에는 노사 협상을 통해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직원들의 임금도 동결했다.

선양소주 관계자는 “그동안 향토기업으로서 다양한 지역사회 환원과 상생·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지역 소주회사들이 대기업의 광고·마케팅과 물량공세로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며 “임직원이 위기 극복과 고통 분담을 위해 임금을 동결하는 등 다각적으로 힘을 모으고 있지만 역부족일 수 밖에 없어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지역소주 사랑 캠페인’에까지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섭 기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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