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 겪는 150조 ETF 시장...‘변경상장’ 문턱 낮춰야

2024. 8. 2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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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유행에 나왔다가 외면 당한 ETF 다수
업계, 민원 부담에...ETF 솎아내기도 소극적
“변경상장 문턱 완화, 새기회 주는 논의 필요”
거래소, 10월 연구용역 결과 토대 대안 검토

국내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이 150조원 규모로 커졌지만 ‘좀비 ETF’에 유사 상품까지 쏟아지면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올 들어 ETF는 주식처럼 사고 팔 수 있는 편의성을 앞세워 ‘대세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투자자들은 이름만 다르고 구성 종목은 비슷한 상품들로 채워지는 선택지에 ‘풍요 속 빈곤’을 느낀다. 운용업계는 일부 대형사 위주로 거래가 몰리는 ‘빈익빈 부익부’ 후유증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미국 등 해외 ETF를 사들여 노후를 준비하려는 연금 개미들의 투자 수요까지 급증하면서 ETF가 ‘국장 탈출’의 통로가 됐다는 말 못할 고민까지 추가됐다.

▶160조 돌파 초읽기=2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ETF 순자산 규모는 157조3705억원(27일 기준)으로 작년 말 121조672억원으로 31.1% 증가했다. 2002년 3552억원으로 출발한 ETF 시장은 2011년 11월 순자산 10조원을 돌파, 2019년 말 5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100조원을 돌파하며 급격히 몸집을 불렸는데, 올해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신규 상장한 ETF는 99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95개)보다 많다. 이달에만 10개 신상품이 출시됐다.

투자 ‘메뉴’가 다양해진 것도 ETF의 급성장을 이끄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몇 년 전만 해도 S&P500이나 코스피200과 같은 주요 주가지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는 패시브(인덱스)형 ETF가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특정 산업 섹터의 지수, 채권과 금리 상품 등으로 선택지가 넓어졌다. AI 전력 인프라, 반도체 공급망, 비만 치료제, K-뷰티 등 최근 떠오르는 분야는 대부분 ETF가 출시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글로벌 증시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오르면서 각국 유망 산업 분야의 핵심 기업을 골라담은 테마형 ETF도 눈길을 끌었다. 국내 최초 인도 테마형 ETF인 삼성자산운용의 ‘KODEX 인도타타그룹’이 대표적이다. 그간 국내 투자자들은 사실상 인도 주식 직접 투자가 불가능해 ETF에 의존해왔는데, 지수 외에도 핵심 그룹주이나 소비섹터로도 선택지가 넓어진 것이다.

지난 20일 KB자산운용은 기존 일본 지수나 반도체 산업이 아닌 증시 주도주에 집중 투자하는 ‘RISE 일본섹터TOP4Plus ETF’를 새로 출시했다.

또 올해는 미국 배당성장주 ETF를 사 모아 노후를 준비하려는 연금 자금도 몰려 시장이 커졌다. 국내 상장된 월 배당 ETF는 총 77개로, 순자산총액은 12조7446억원에 달한다. 지난 5월 말만 해도 8조5000억원대 수준이었지만 불과 3개월 사이 4조원가량 불어났다. 특히 옵션을 매도해 분배금 재원으로 활용하는 커버드콜 ETF가 인기몰이 중이다. 일각에선 ETF를 통해 국내 투자금이 해외 증시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만큼, 장기적으론 국내 증시를 지탱해줬던 유동성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보낸다.

▶“그땐 ‘특별’했다만 지금은 글쎄”...시장 외면 ETF 수두룩=문제는 투자 유행을 타고 유사한 상품들이 쏟아지면서 좀비처럼 거래가 말라버린 ETF도 우후죽순 생겼다는 점이다. 충분한 자금을 채우지 못해 상장 기본 요건(순자산 50억원에 미달하는 상품도 10개 중 한 개꼴(0.8%)이다. 운용사끼리 서로 베끼는 ‘카피캣 상품’도 난립하고 있다. 이에 저렴한 수수료를 앞세운 대형 자산운용사로 거래가 쏠리면서 ETF 거래도 ‘양극화’ 현상도 강해진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선택지는 많아졌는데 막상 고를 게 없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또 이 같은 좀비 ETF는 테마형 ETF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진단도 나온다. 해당 분야에 대한 인기가 절정일 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 ETF 매수 시점이 ‘끝물 시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골프 붐을 타고 상장한 HANARO Fn골프테마는 순자산 32억원에 3개월 동안 평균 656주 거래되는 데 그쳤고, 메타버스 열풍이 불었던 코로나 팬데믹 당시 출시된 KODEX 차이나메타버스액티브도 순자산 49억원에 3개월간 평균 473주 정도 거래됐다.

ETF 퇴출에 소극적인 시장 분위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아무리 좀비 ETF라도 ‘투자자 보호’ 잣대를 들이밀면 자진 상폐는 부담된다. 개인들의 입장과 요구가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차라리 상폐 요건 갖출 때까지 손 놓다가 거래소의 (상폐) 결정을 기다리는 게 덜 부담된다”고 했다. 통상 거래소는 좀비 ETF를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호전되지 않으면 강제 상장폐지시킨다. 종목 자체가 퇴출당하는 게 아니라서 ETF가 상장 폐지되더라도 투자자는 상품에 담긴 종목의 주가만큼 자산운용사로부터 돌려받는다.

▶“ETF ‘구조조정’ 문턱 낮춰야”=운용업계에선 좀비 ETF들을 솎아내는 것 만큼이나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현재 거래소는 기존 ETF의 주된 섹터를 변경하는 건 제한한다. 다만, 시장 상황에 맞게 일부 구성 종목만 교체하거나 배당 주기를 바꾸는 등 일부 운영 전략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한 ‘변경 상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ETF 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변경상장을 하려면 실무상 굉장히 까다롭고 여러 조건들이 많아 ‘그냥 상폐하자’로 가기 쉽다”고 말한다.

이에 업계 의견을 수렴해 변경 상장의 기준을 완화하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ETF가 상장되기까지 많은 비용이 들어간 만큼, 운용사뿐만 아니라 상품 하나하나가 거래소나 투자자들 입장에서 시장 자원”이라며 “기존 투자 전략을 일부 수정할 수 있는 ‘변경 상장’의 길을 넓혀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거래소 논의는 ETF 시장 관련 연구 용역이 끝나는 오는 10월께 본격화될 전망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현재 ETF 상폐와 퇴출과 관련한 연구 용역이 진행 중”이라며 “변경상장 완화에 대한 논의도 함께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유혜림 기자

fores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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