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랍고 노글노글’ 메밀 100% ‘평냉’ 집 진짜 맛나요?

박미향 기자 2024. 8. 2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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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의 미향취향 ‘서령’과 ‘광평’
‘서령’의 평양냉면. 박미향 기자

‘슴슴하다‘는 본래 잊힌 단어였는데, 평양냉면이 살렸다. 2010년대 중반 식도락을 즐기는 미식 문화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고향이 북쪽인 이들이 주로 먹던 평양냉면이 급부상했다. 도무지 무슨 맛인지 평하기 어려운 평양냉면은 많은 이에게 반전 매력을 선사했다. 도전 정신도 불태우게 했다. 역사가 오래된 평양냉면 가게들은 ’명가‘란 칭송을 듣게 됐고, 시식법은 에스엔에스 토론 주제로 등장했다. 얘깃거리가 많아질수록 가게 앞 줄은 길어졌다. ‘평냉힙스터‘ ’면스플레인‘ ’평냉부심‘ 등의 신조어도 탄생했다.

스타로 등극한 평양냉면 맛을 한마디로 정의할 단어가 필요했다. 이때 백석(1912~1996)의 표현이 주요 언론을 통해 자주 소개되면서 ‘평양냉면 맛=슴슴하다’가 굳어졌다. 그의 시 ’국수‘를 보면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란 문장이 등장한다. 여기서 ’슴슴한 것‘은 평양냉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밍밍한 맛에 ‘슴슴하다’란 표현만큼 딱 맞는 옷도 없다.

우리 사전엔 ’슴슴하다‘는 ’심심하다‘의 잘못된 표기라고 되어 있지만, 엄연히 ’슴슴하다‘와 ’심심하다‘는 다른 ’맛‘이다. 평양냉면 육수 한모금만 마셔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서령’의 평양냉면. 박미향 기자
‘광평’의 평양냉면. 박미향 기자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인 평양냉면. 가격이 2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오르자 핀잔도 많이 들었지만,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냉면 집 문 앞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더구나 ’파스타는 2만원이 훌쩍 넘어도 타박 안 하면서, 평양냉면 가격엔 왜 시비냐, 평양냉면이 만들기 더 어렵고 재료비도 더 든다‘며 옹호에 나선 이가 많아, 가격 논쟁은 확전되지 않았다. 여기에 폭염까지 양념처럼 더해져 평양냉면 인기는 고기 불판처럼 식을 줄 몰랐다.

이런 상황만 보면, 평양냉면집이 이곳저곳에 많이 생길 법도 한데, 그렇게 되진 않았다. 밍밍하면서도 감칠맛 도는 육수는 내기 어렵고, 끊길 듯 끊어지지 않는 면을 만드는 일도 여간해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명가에서 일한 이들이 나와 차린 집들이 한둘 생겨나는 게 고작이었다. 이런 이유로 미식가들 기준에 합격점을 받은 ‘신상 평양냉면 맛집’은 늘 화젯거리가 됐다. 올해도 서울에 미식가들이 열광하는 평양냉면집이 몇 개 생겼다. 그중에서 강북의 한곳과 강남 한곳이 유독 주목받았다. 이 둘의 공통점은 한가지, 순메밀 100%로 면을 만든다는 점이다. 통상 메밀이 8할이라면 2할 정도는 고구마전분 등을 섞어 면을 뽑는다.

남대문시장 인근 숭례문 앞 단암빌딩에 지난 5월1일 문 연 평양냉면 집 ‘서령’은 오픈 첫날부터 줄을 설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령을 연 정종문(59)·이경희(56)씨 부부는 2000년대 초반 강원도 홍천에서 맛 좋기로 유명했던 ‘장원막국수’ 창업자들이다. 메밀 연구만 20년 넘게 한 베테랑들이다. 당시 홍천에 막국수 집을 연 이유는 이씨 고향이 홍천인데다가 정씨가 워낙 막국수 마니아였기 때문이었다. 2019년 강화도로 이주해 평양냉면 전문점을 열어 하루 200그릇 정도만 팔던 이들이 5년 만에 서울로 진출했다. 강화도 평양냉면 집이 문 닫았을 때 아쉬워했던 푸디(맛 보기 위해 여행하는 이들)이 많았다. 행방을 찾아 나선 이도 있었다.

‘서령’의 ’들기름 순면’. 박미향 기자
‘광평’의 ‘비비작작 골동면’. 박미향 기자

단아한 사기에 소담하게 담긴 이 집 평양냉면(1만6천원)은 보기만 해도 ‘슴슴하다’란 말이 튀어나온다. 육수가 일품인데,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진한 육향이 미각 세포에 빠르게 스며든다. 육수만으로 보양이 되고도 남을 판이다, 메밀 면은 말할 것도 없다. 보드랍고 노글노글하다. 한우 암소로 육수 맛을 낸다고 한다. 메밀은 내몽고산이다. 맛에선 ‘쟁이’를 추구를 하는 정씨가 긴 세월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비결이 새겨져 있다. 메밀 수분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길렀다고 한다. ‘들기름 순면’(1만6천원)도 판다. 푸짐한 막국수에 들기름이 자작자작 뿌려진 맛이 일품이다.

강북의 신흥 강자가 ‘서령’이라면 강남엔 ‘김인복의광평 강남직영점’(이하 ‘광평’)이 있다. 서초구에 있는 ‘광평’은 지난 3월에 문 열었다. 2년 전 문 연 삼성동 본점의 경험을 자양분 삼았다. 평양냉면집치곤 이름이 별나다. 이유가 있다. ‘광평’을 검색하면 지역명부터 역사적 인물까지 검색되어 오히려 식당 ‘광평’ 정보는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실제 광평은 이 집에서 사용하는 메밀이 나는 제주도 광평리에서 딴 이름이다. 이름에 달린 ‘김인복’도 특이하다. 통상 평양냉면집에 ‘옥’자는 들어가도 사람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 또한 이유가 있다. 이 집 대표는 김인복(54)씨다. 1992년부터 외식업에 발 디딘 그는 ‘서관면옥’ ‘더함’ 등 20여개가 넘는 식당을 기획하고 경영한 바 있는 외식 전문가다. 맛을 내는 데도 이름난 요리사에 견줘 손색이 없는 그다. “(외식) 경영자는 운영뿐만 아니라 (조리) 기술이나 최상의 맛을 내는 방법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방법은 하나. 직접 해보고 맛보는 것이다.

‘서령’의 ‘냉수반’. 박미향 기자
‘광평’의 ‘난축맛돈 구이’. 박미향 기자

그도 그런 과정을 걸쳐 지금의 광평을 만들었다. 평양냉면집을 내게 된 이유도 기획자이자 경영자답다. “한식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에 늘 관심이 많았는데, 세계화하기 좋은 게 뭔가 고민해보니 한국의 면류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고, 면류 중에 한국에만 있는 면 음식이 평양냉면이라서 골랐다”고 말한다.

이 집 평양냉면(1만6천원)은 밑그림처럼 밴 육향에 은근한 구수한 맛이 도드라져 일품이다. 남극을 옮겨놓은 것처럼 더위가 단박에 가신다. 젓가락을 갖다 댈수록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에 말려 올라온다. 이 집의 다른 메뉴 ‘비비작작 골동면’(1만8천원)도 일품이다. 표고버섯, 백김치, 배, 파, 참깨, 들깨, 들기름 등 각종 재료가 보드라운 면과 한데 엉켜 극강의 감칠맛을 선사한다.

말과 글은 정신의 틀을 만든다. 말 한마디가 중요한 이유다. 지옥 같은 폭염이 지나고 코스모스 살랑거리는 가을을 목적에 둔 지금, 평양냉면이 복원시킨 한마디 ‘슴슴하다’가 아로새겨진다. 슴슴한 맛이 평양냉면에만 있겠는가. ‘슴슴한 맛’ 찾아 떠나기 좋은 계절, 가을이 왔다.

추신) ‘서령’ 창업자들이 홍천에서 강화도로, 강화도에서 서울로 오게 된 사연과 맛 비결 등 소담한 이야기가 오는 9월7일치 한겨레를 통해 찾아갑니다.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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