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의 피해자는 국민, 방치하는 국가는 가해자

한겨레 2024. 8. 2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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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헌법소원 연속기고 ⑤기후위기와 시민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907기후정의행진 선포식에서 참석자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올해로 3년째인 기후정의행진은 오는 9월7일 서울 강남대로에서 열린다. 노동자와 농민, 여성, 청소년 등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대규모 기후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실로 위기의 시대다. 한 달을 넘긴 열대야는 예상대로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가을 맞을 채비를 한다는 처서도 지났건만 30도를 훨씬 웃도는 폭염은 아직 그 성미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기세다. 온열질환자는 3천명을 넘어서고 사망자도 30명에 다다랐다. 맥없이 목숨줄을 놓친 농장동물과 양식어류만도 수천만을 헤아린다.

펄펄 끓는 찜통 노동, 짜디 짠 체액을 쏟아내며 기어코 버텨내는 노동은 재난이 아닐 수 없다. 온몸에 찬물을 들이 부어대도 식지 않는 몸, 그를 달래 잠을 청해보지만 밤새 뒤척이는 고통스러운 쪽방의 여름밤은 그저 재난이다. 갈라진 땅에 말라 비틀어진 농작물과 뙤약볕 아래 노동은 너무 닮아서 참담하다. 이 힘겨운 일상은 파괴적 이상기후로 인한 ‘폭염재난’이기만 할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로켓배송’ 시스템 탓에 배달을 강요당했던 노동, ‘폭염에 죽겠구나’ 싶어도 일을 중지하면 그만큼 구멍이 나는 생활비에 체온이 40도를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어갔던 노동, 수입농산물에 치이고 산업화 농정에 치여 생산비 보전에 시름하며 나갔던 밭일, 극한의 날씨에도 내 한 몸조차 보호받을 수 없어 집이 무덤이 돼버린 가난한 이들의 주거. 이 속에서 마주했던 모든 죽음들은 치열한 경쟁사회 속 더 가열찬 이윤축적을 위해, 사람을 쥐어짜는 폭력적이고 부정의한 구조가 낳은 참사들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그 책무를 다하지 않은 탓에 불거진 재앙들이다. 그러니 이 죽음들은 ‘폭염살인’이 아닌 ‘구조적 살인’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기후위기는 이처럼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 내 한 몸 누일 적정한 주거에 살 권리 등의 기본권 위기와 연결돼 있다. 이런 위기는 지구 가열상태가 심화될수록 구조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고통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중첩되고 깊어지는 재난은 개인이 각자 헤쳐나가야 할 몫이 되고 있다. 생명이 집값에 밀리고, 생산량과 돈에 밀린다. 자본의 시간에 압도되어 영위되는 삶. 지배질서가 구축한 시침과 분침을 따라 내 삶도 끊임없이 쪼개진다. 재난성 기후는 해가 다르게 파괴적 위력을 더해가는데 각자도생의 경쟁사회에서 울타리 없는 개인에게 떠넘겨진 삶은 그저 위태롭기만 하다.

국가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대한민국 헌법 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모름지기 국가는 그래야 한다. 기후위기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일상적 재난시대 속에서, 생명권, 생존권뿐 아니라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차별받지 않을 자유, 주거의 자유 등등 그 위협받는 권리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기후위기로 폭염·열대야가 유난했던 해로 기억될 전망이다.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지난달 3일 대구 중구 동성로. 장맛비로 생긴 웅덩이 옆으로 시민들이 양산을 쓰고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 계획이 충분치 않아 지구온도를 더 빠르게 상승시키는데 일조한다면, 그래서 헌법에서 정한 기본권을 지킬 수 없다면, 과연 무엇을 해야할까? 이런 질문에 답하고자 4년 전 청소년을 시작으로 시민, 어린이 등이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미흡해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기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안정된 기후에서 살 권리’를 포함하는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해야 할 마땅한 책임을 저버림으로써 가중되는 시민의 피해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다. 피해자가 있다는 것은 가해자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받는 명백한 현실 앞에서 국가가 헌법의 책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방관자를 넘어 가해자라 불릴 수 있다.

온실가스 농도는 기후위기의 결과물이지 본질이 아니다. 위기의 본질은 자본의 이윤을 위해 무한성장의 프레임 속에서 자연과 생명을 무분별하게 이용하고 착취해온 구조에 있다. 이런 뒷배에는 국가가 작동하고 있으니, 국가는 이 위기의 유발자이자 책임자다. 이미 세계는 기후위기 대응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정부에 대해 인권침해나 약속 불이행을 이유로 유죄를 판결하고 있다. 그 책임을 무겁게 묻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로 더 이상 아까운 삶들이 스러지지 않게 하는, 존엄한 삶이 가능하게 하는, 박제된 선언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가 구체적으로 감각되고 우리 삶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그런 기후 헌법소원 판결이 간절히 필요하다. 그 판결은 기후재난을 마주한 모든 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커다란 한걸음이 될 것이다.

김은정(시민소송 청구인,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

현재 우리나라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과 그 시행령으로 규정했다. 한데 당장 기후재난에 직면한 이들과 미래세대에게, 이 목표가 충분할까. 헌법재판소에선 정부의 목표가 이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소원심판이 진행 중으로, 헌재는 오늘(29일) 인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2019년 네덜란드, 2020년 독일에서 정부의 목표가 불충분하다는 판결이 있었다. 지난 4월엔 유럽인권재판소가 스위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인권 침해’로 보기도 했다. 우리나라 헌재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한겨레는 이번 ‘기후소송’의 당사자이기도 한 ‘기후위기비상행동’과 함께 기후재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연속 기고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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