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씨라면…저 같은 농사꾼은 곧 해고될지도

한겨레 2024. 8. 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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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헌법소원 연속기고 ④​기후위기와 농민
지난해 7월 집중호우로 전남 해남군 한 농경지가 침수돼 있다. 연합뉴스

곽동훈|청년농민(한살림생산자연합 경기권역협의회 청년위원회 지역위원장)

저는 경기도 여주 금당리라는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20대 청년 농업인입니다. 양파, 감자, 땅콩, 고구마, 생강 등 여러 작물을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저는 철마다 주어지는 농사일을 완수하며 누군가의 참견과 개입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일하는 유유자적한 삶을 꿈꿨습니다. 농사는 하늘이 반을 짓는다고는 하지만, 요즘같이 기술이 발전한 세상에서 똑똑하고 성실하게 일한다면 여러 안 좋은 조건들도 잘 극복해 기본적인 생산은 일궈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몇 년 전부터 봄철에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는 현상이 심해졌습니다. 그즈음 막 올라오고 있는 감자 싹을 얼어 죽게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과수 농가에서는 꽃이 냉해를 입어서 그해 농사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났다는 소식이 어김없이 들려오곤 합니다.

흠뻑 젖어 기진맥진했던 차원이 다른 더위

감자와 양파의 알이 한창 굵어질 6월 중순 즈음엔 점점 이르게 찾아오는 장마철 때문에 제대로 다 크기도 전에 서둘러 수확해야 합니다. 공들여 키워놓은 감자를 땅속에서 썩게 놔둘 수는 없기 때문이죠. 또 양파나 감자처럼 일찍 수확이 끝난 밭에는 콩이나 깨 같은 잡곡류를 심곤 했는데, 요즘은 밭이 마를 새가 없이 비가 계속 내리는 탓에 거름을 넣어 밭을 새로 만들지 못합니다.

특히 올여름은 지금까지 겪어왔던 더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년에는 한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침 네다섯시부터 시작해 오전동안 열심히 일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서너시까지 집안에서 쉬다가 다시 나와서 일을 하곤 했는데요. 올해는 오전 열시만 넘어가도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답답한 느낌에 당황스러웠던 적이 많습니다. 그리고 오후엔 거의 해가 저물어 가기 전까지 도통 기온이 내려가질 않아서 예전처럼 일을 나섰다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기진맥진했습니다. 제 농사일을 많이 도와주시는 저희 할머니께서는 올여름에만 세 번 넘게 몸에 이상을 느끼시고 쓰러질 뻔하셨습니다. 특별히 힘이 많이 드는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가장 뜨거운 때는 피해서 조심스럽게 피하셨다지만, 이 날씨가 기존의 경험과 상식에서 벗어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미쳐 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탓일 겁니다.

지난 4월 강원도 춘천시 서면의 한 감자 농장에서 농장주가 재배 예정인 수미 품종의 씨감자를 손에 들고 있다. 국내 대표 품종인 수미 감자는 지구 온난화와 길어진 장마 탓에 병충해 피해가 심해지고 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이러다 보니 하루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미친 듯이 자라나는 잡초들은 여기저기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간혹 제 키만 한 풀이 우뚝 솟아있는 꼴을 볼 때는 헛웃음도 납니다. 앞으로는 한여름에도 수확과 관리를 해줘야 하는 고추나 잡곡류 등은 재배를 포기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그나마 저 같은 경우엔 너무 뜨거워서 힘이 들 때 일을 멈추고 자의적으로 집에 들어가 쉴 수라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분들의 고통은 어떨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애초에 농사를 지어서 큰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 환경에도 이롭고 타인에게도 이로운 일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계절 따라 달라지는 온도와 습도, 냄새, 낮과 밤의 길이를 온몸으로 느끼고 제가 땀 흘려 키운 제철 채소들로 밥상을 차리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작 10년도 채 농사를 지어보지 못한 지금,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점점 예측하기 어렵고 이상해지는 날씨 때문에 작물을 기르기 위해 제가 들였던 공이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그에 따라 저의 소득도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은 고사하고 저와 가족들의 생명과 안전에도 위기감을 느끼면서 자연 앞에 무기력해지곤 합니다.

시원한 실내에서 ‘날씨가 맑다’ 생각할지도

농사꾼은 해고가 없습니다. 제가 계속 일을 하고자 한다면 누가 억지로 그만두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더 심해진다면 저는 머지않아 실업자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사일을 하다 보면 많이 쓰는 말 중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장 눈에 띄지 않고 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조금씩 미루다 보면 어느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 버리는 경우에 쓰는 말이죠. 우리 정부의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너무 우유부단하고 게으른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한여름에도 정장 재킷까지 입고 다니는 분들은 시원한 실내에서 햇볕이 쨍쨍한 바깥을 바라보며 그저 날씨가 맑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디 호미로, 아니면 가래로라도 막을 수 있을 때 지체 없이 서둘러야 합니다. 기후 헌법소원의 판결이 이들의 삶을 지키는 호미와 가래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과 그 시행령으로 규정했다. 한데 당장 기후재난에 직면한 이들과 미래세대에게, 이 목표가 충분할까. 헌법재판소에선 정부의 목표가 이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소원심판이 진행 중으로, 헌재는 29일 인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2019년 네덜란드, 2020년 독일에서 정부의 목표가 불충분하다는 판결이 있었다. 지난 4월엔 유럽인권재판소가 스위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인권 침해’로 보기도 했다. 우리나라 헌재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한겨레는 이번 ‘기후소송’의 당사자이기도 한 ‘기후위기비상행동’과 함께 기후재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연속 기고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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