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가창신공] 전홍민, 트로트 전문 작곡가‧'골드문퍼블리싱' 대표

조성진 기자 2024. 8. 2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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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현 ‘천태만상’ 편곡, 이찬원 ‘망원동부르스’ 작곡
‘천태만상’ 편곡은 50차례 수정끝에 완성
트로트 작곡 듀오 ‘마벤져스’ 활동
부모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트로트 들으며 성장
전 ‘아리랑 싱어즈’ 안영희가 이모
작곡 속도 매우 빠른 스타일
학생 때부터 컴퓨터 다루는 솜씨 비범
탁월한 녹음작업 스킬에 주영훈도 감탄
작곡 롤모델 박현진, 편곡은 정경천
“이찬원, 모든 곡 자기화시키는 능력 대단”
“송가인, 노래잘하는데 인성까지 최고”
“평생 트로트 헌신, 전통 트로트 지킴이 되고파”
사진=조성진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성인가요는 음악의 끝판왕입니다. 이 장르도 할 줄 알고 저 장르도 할 줄 알아야 만들 수 있는 음악이기 때문이죠. 다른 장르를 하다가 잘 풀리지 않아 트로트(성인가요)나 해볼까 하고 뛰어들면 대부분 실패합니다. 그만큼 오랜 시간 음악을 듣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성인가요입니다."

전홍민(46)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저 유명한 '천태만상'(윤수현)의 편곡자이자 이찬원 '망원동 부르스'의 작곡가다. 그 외 홍지윤이 오프닝 곡으로 즐겨 부르는 '왔지윤', 정다경 '하늬바람', 문초희 '사랑이 왔어요' 등 귀에 익숙한 여러 곡을 작곡했다.

트로트 장르를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국악 풍 발라드, 슬로우록, 블루스 발라드, 디스코 등 다양한 스타일을 모두 녹여내 가수나 소속사로부터 "장르에 대한 제한 없이 어떠한 걸 요구해도 다 잘 만들어 주는 작곡가"란 평을 듣고 있다.

이처럼 전홍민이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역량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타고난 역량도 있지만 마아성과 함께 '마벤져스'라는 트로트 작곡듀오를 하면서부터다.

전홍민은 '자연인' 윤택(임윤택)이 최근 발표한 EDM 스타일의 '분당'이란 곡을 썼고, 28일 발매한 홍자 미니앨범 '빠라삐리뽀'에도 참여했다. 수록곡 중 '자야자야 홍자야' 작곡편곡을 마벤져스가 했고 작사는 홍자가 했다.

9월 초엔 윤서령, 강예슬 신곡 녹음에 돌입한다. 그리고 9월 중순 발매 예정인 트로트계의 여성 빅스타인 모 가수의 새 앨범에도 참여해 멋진 노래를 선보일 예정이다. 공식 보도자료 배포 전까지 이름을 공개하는 걸 원치 않아 실명을 밝히지 않는 점 양해 바란다.

2021년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성인가요 작곡상을 받았다. 2022년 '고복수 가요제' 심사위원 및 그 외 소규모 지방 경연 심사 등 장외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그는 "'천태만상' 편곡자 전홍민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여러 히트곡을 함께 하며 자신의 이름 앞에 형용사를 붙일 필요가 없어졌다.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은 작곡가로서 존재감을 더욱 뚜렷하게 다지며 본격적으로 '골든 크로스' 구간에 진입한 전홍민을 만났다.

트로트 작곡듀오 '마벤져스'. 왼쪽부터 전홍민, 마아성.

전홍민은 '마벤져스' 활동과 함께 '골드문퍼블리싱'이란 회사 대표로 있다. 골드문퍼블리싱은 회사가 없는 (트로트)가수들 또는 성장 가능성 있는 가수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다. 사명은 이정재 주연의 영화 '신세계'에 등장하는 '골드문'에서 힌트를 얻었다. '황금달'이란 이름이 너무 좋아서 회사명으로 지은 것.

"정통 트로트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손을 내밀면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도움을 주고 싶어서 설립했습니다."

마아성과 함께 하는 '마벤져스'는 그간 40여 곡 넘는 곡을 작업했다. 이찬원도 그중 하나다. 마벤져스란 이름은 전홍민이 작명했다.

파트너 마아성에 대해 전홍민은 "어릴 때부터 성인가요를 열심히 들었고 곡을 너무 잘 쓴다"며 특히 "멜로디에 대한 센스가 남다르고 많은 가수와 두루두루 친분이 두텁다"고 평했다.

작곡가 전홍민은 곡을 빨리 쓰는 편이다. '휘리릭'하고 쓰지 않으면 잘 써지지 않는다고. 이찬원 '망원동 부르스'도 마아성과 같이 앉아서 멜로디와 가사까지 불과 3분 만에 완성했다.

그는 작곡을 빨리하는 스타일일 뿐 아니라 스튜디오 작업도 초 집중력으로 단시간에 끝내는 걸 좋아한다. 이유가 있다.

"가수들은 녹음실에서 1~2시간 이상 작업하다 보면 목소리가 좀 탁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제 경우엔 1시간 이내에 나오는 소스(소리)를 가지고 녹음 작업을 선호하는 편이죠."

전홍민의 트로트 사랑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됐다.

20대 시절의 전홍민. 아이돌 부럽지 않은 미남이고 지금도 여전히 잘 생겼다. [사진제공=전홍민]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난 전홍민은 주현미 '쌍쌍파티' 등 고속도로 음반 메들리를 제작하는 부모 밑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트로트를 끼고 살았다. 부모는 또한 최영주, 모정애, 나현재 등 가수 음반도 제작했다. 현철, 나훈아, 주현미 등은 전홍민이 어릴 때부터 즐겨 듣던 음악이며 이후 그의 음악세계 모태가 됐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진정한 1호 한류 가수 '아리랑 싱어즈' 멤버였던 안영희가 전홍민의 이모다. 아리랑 싱어즈의 최대 히트곡인 'I Love You, You Love Me'와 'Dark Eyes'(번안곡)는 당시 안영희의 남편이던 홍신윤이 썼다. 안영희는 스위스에서 꽤 큰 규모의 패션사업을 한 바 있다. 아리랑 싱어즈(이후 '코리아나'로 그룹명 변경)에서 베이스와 보컬을 병행한 안영희는 뮤지션 출신답게 전홍민에게 가끔 음악적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전홍민은 매년 이모 안영희가 있는 스위스를 찾을 정도로 돈독한 가족애를 유지하고 있다.

전홍민이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또 하나의 음악이 J-팝이다. 이어 중국 무협영화 OST 등으로 이어지며 관심을 넓혀갔다. 특히 중국 무협영화의 오케스트라 작법은 그의 작곡과 편곡 세계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국악 및 동양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대금 해금 등 몇몇 국악 악기도 배웠다. 그는 기타와 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연주할 수 있으며, 가끔 자신이 쓴 곡에 기타와 피아노 세션을 하기도 한다. '현인가요제' 대상곡인 문초희 '사랑이 왔어요'가 대표적이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한 그는 1996년 미디(MIDI)를 처음 접하며 음악 작업에 눈을 떴다. 20살 무렵부터 장충동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몇 년간 레코딩을 공부했다. 이 녹음실은 플라워 고성진을 비롯한 유명 뮤지션들도 자주 찾았다. 플라워 'Yesterday'도 이곳에서 녹음했다. 고성진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이후 한참 시간이 흘러 고성진과의 인연으로 이찬원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장충동에 있다가 23살 때 망원동 부근으로 와서 20년 정도 살았던 만큼 전홍민에게 망원동은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그러한 정서를 직장인의 퇴근길로 담아낸 게 '망원동 부르스'다.

"이찬원은 할 얘기가 없을 만큼 노래를 너무 잘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부를 것 같다고 상상하며 곡을 쓰는데, 이전에 노래해온걸 들어보면 그 가수가 어떻게 노래할지 대략 예측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이찬원은 상상한대로 딱 그렇게 노래했어요. 정말 너무 잘 불렀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을 만큼."

"이찬원은 모든 곡을 자기화시키는 능력이 대단합니다. 작업하다 보면 제가 요구하지 않아도 노래에서 원하는 기술을 알아서 다 나오게 합니다. 이찬원이 대표적이죠. 젊은 트로트 가수 중에선 단연 TOP입니다. 감정이나 그 외 모든 면에서 당분간 이찬원을 이길 수(능가하는) 있는 가수가 나오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전홍민은 최지훈의 '가지마세요'로 작사‧작곡 및 편곡자로 데뷔했다. 그러나 2014년 '천태만상'으로 뜨기 전까지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쳐야 했다.

음악을 위해 대학도 포기했다. 당시 선배들이 "지금 네가 알고 있는 게 대학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다"며 대학의 불필요성을 역설했다.

중학 시절부터 컴퓨터 솜씨가 남달랐는데, 이후 미디와 레코딩 전반을 익힐 때도 이러한 게 장점으로 작용했다.

국악 악기도 여러대 보유하고 있으며 직접 연주하기도 한다. 

그의 재능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

전홍민이 21살 때인 1999년의 일이다. 당시 그는 ADAT, 야마하 디지털 콘솔 등 레코딩 스튜디오 못지않은 기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어느 날 스타 작곡가 주영훈이 전홍민의 이러한 장비를 보고 놀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다루는 전홍민의 빠른 손놀림에도 감탄했다.

주영훈이 작업하는 곡 중에 1절과 2절이 같은 노래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엔 디지털 레코딩 시스템이 아닌 릴테입(테이프)으로 녹음 작업을 하던 때였다. 따라서 1절을 그대로 2절에 갖다 붙이는 작업도 쉬운 게 아니었다. 디지틀 시대엔 이런 게 음향엔지니어에겐 누워서 떡 먹기일 수 있겠지만 릴 테이프 시절엔 이렇게 '핑퐁' 작업을 한다 해도 많은 시간과 기술이 필요했다. 그런데 전홍민은 이걸 할 수 있다고 하자 주영훈은 놀라며 "그러면 해달라"고 했다. 전홍민은 단시간에 이 작업을 끝냈고 이걸 본 주영훈은 너무 놀랐다.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전홍민에게 명함을 주며 "무조건 꼭 전화하라"며 "내 사무실(스튜디오)로 나와 일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전홍민은 문하생 개념으로 주영훈의 스튜디오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주영훈은 "너는 뒤에서 내가 하는 걸 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당대의 빅스타들을 작업하던 당시 주영훈의 스튜디오에서 배울 게 얼마나 많았을까. 어깨너머 배우는 거였지만 전홍민에겐 너무 많은 공부가 됐다. 프로들은 이렇게 작업하는구나란 것도 체감했고, 말로만 듣던 SSL 콘솔도 처음 만져봤다. 주영훈은 "같이 스튜디오를 만들어볼까"라고 제의할 정도로 전홍민을 높이 샀다.

전홍민의 빠른 손놀림은 H.O.T 장우혁 등 여러 스타 오퍼레이터 일을 하며 빛을 발했다. 이처럼 그는 이미 20대 초반부터 그 나이와 경력으론 만져보기 힘든 고가의 기기들을 다루며 자신을 업그레이드했다.

전홍민이 애용하는 스튜디오로직 SL881 마스터건반

그의 이러한 면모는 작업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전홍민 작곡가 작업실엔 마치 K팝 아이돌 음악을 만드는 젊은 작곡가들 못지않게 다양한 기기가 배치돼 있었다. 트로트를 쉽게 보다간 큰코다친다는 말이 작업실의 기자재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는 '아폴로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3년째 애용하고 있다. 소리가 깨끗하고 탄탄한 사운드를 연출하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TC일렉트로닉 리버브도 섬세한 리버브가 가능해 선호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 서밍 믹서는 믹서를 작은 크기로 만들어 아날로그적으로 소리를 내주는 기기입니다. 대형 스튜디오의 SSL 콘솔과 비슷한 소리를 만들어 주죠. 4년째 애용하고 있습니다."

"G콤프는 믹스 컴프레서로 홈레코딩에 사용하기 좋은 가격대와 성능을 지녔어요. 유니버설 콘트롤 서페이스는 오토메이션 볼륨 밸런스 조절을 해주는 기기입니다. 마스터건반은 스튜디오로직 SL881을 사용하고 있는데, 피아노 건반 터치와 같아서 무리 없이 잘 쓰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기기를 보유하고 있다.

베링거 X-TOUCH ONE 미디 컨트롤러
크레딧 사운드 CS-82H 큐박스

윤수현이 2014년 발표한 '천태만상'은 전홍민의 음악 활동에 분기점이 된 곡이다. 노상곤 작사‧작곡의 '천태만상'은 편곡 작업만 무려 6개월이 걸렸다. 전주 부분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도 그렇지만 성인가요는 특히 전주부터 임팩트있게 시작해야 대중에게 강하게 각인될 수 있기에.

"노상곤 작곡가님은 제가 한 편곡이 밋밋하다 좀 약하다며 계속 다시 해와라 또다시 해오라며 수정에 수정을 요구하셨습니다. 그 와중에 너무 힘들어서 '이걸 왜 했을까'라고 후회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오기가 더 강하게 생기더군요. '그래, 무조건 이건 반드시 완성할 것'이라는."

결국 50여 차례 수정 끝에 '천태만상'이 완성됐다.

전홍민은 이 곡이 나온 후에야 윤수현의 정규앨범 마지막 곡에 실려 있는 걸 알았다. 그렇게 고생해서 작업한 것인데, 맨 끝에 수록돼 있어 아쉬움도 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틀곡 이상으로 크게 히트했고 결국 윤수현의 대표작으로 자리했다. 곡이 히트하면서 그때서야 실감이 났고 고생한 보람 이상으로 희열도 컸다.

'천태만상' 편곡을 맡게 된 사연도 극적이다. 광흥창역 부근의 막걸릿집에서 우연히 노상곤 작곡가를 만나게 되면서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노상곤 작곡가의 작업실(스튜디오)이 광흥창역 부근에 있었다. 그래서 노상곤은 작업 후 이 술집을 자주 찾곤 했다.

전홍민은 일행과 막걸리 한잔하러 이곳을 찾았다가 말로만 듣던 노상곤 작곡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노상곤 작곡가에게 인사를 했고 노 작곡가는 전홍민에게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아따, 좋은 곡이 있는디 자네가 한번 맡아볼랑가?"라고 말했다. 전홍민은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당시 노상곤은 젊은 피 수혈의 개념, 즉 무명에 가까웠던 전홍민이 타성에 젖지 않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거로 여겨 맡겼던 것이다.

'천태만상'이 편곡자로서 전홍민의 시그니처로 자리했다면 2023년 이찬원의 '망원동 부르스'는 작곡가로서의 시그니처가 된 노래다.

녹음작업 마치고 이찬원과 함께. [사진제공=전홍민]

전홍민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트로트 가수로 현철, 나훈아, 주현미를 꼽았다.

"故 현철 님의 노래는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마성의 매력이 있습니다. 지금도 어디 놀러 갈 때 '봉선화 연정'을 틀고 운전할 정도로 애청하고 있죠."

작곡가 롤모델도 '봉선화 연정'을 쓴 박현진이다. 편곡 롤모델은 정경천.

작곡이나 편곡 방식으로 볼 때 최근 자극받거나 크게 감동한 곡이 어떤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정경천이란 답이 왔다.

"진성 '못난 놈'(김도일 작곡)을 처음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통 트로트가 이렇게도 갈 수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편곡자가 정경천 님이었습니다.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스타일로 편곡했어요. 비슷한 폼의 편곡 작법이 아닌, 흔히 듣기 힘든 공격적인 편곡이랄까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방식(작법)이었죠. 한마디로 귀를 솔깃하게 하는 편곡, 약간 록이 가미됐고 편곡도 세련됐고, 듣는 순간 너무 신선했습니다."

송가인은 그가 좋아하고 높게 평가하는 가수 중 하나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전홍민은 국악 등 소리 쪽에 많은 관심이 있다 보니 이런 소리에 기반한 가수들의 애정도 많은 것이다.

"송가인에 관해선 착하다, 예의 바르다 등 좋은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는데 그게 모두 사실이었어요.  노래도 잘하는데 정말 인성까지 좋은 가수입니다. '미스트롯' 이후 인기를 많이 얻고 있던 당시 송가인 인스타그램에 DM을 보낸 적이 있어요. 저를 소개하며 '데모를 보내고 싶은데 혹시 어디로 보내면 될까요'라고. 다음날 송가인으로부터 바로 답장이 왔어요. 'OOO 이사님 전화번호와 메일주소로 보내주세요'라며. 이때 많이 놀랐어요. 가수들이 '뜨면' 어깨가 올라가는 법인데, 본인이 직접 답장하며 깍듯하게 대하는 태도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업 마치고 홍지윤과 함께한 마벤져스. [사진제공=전홍민]

전홍민은 습작을 포함해 아직 사용하지 않은 곡이 500여 곡이나 된다고 했다. 많은 곡을 보유하고 있는 게 작곡가에겐 가장 큰 무기라는 말도 있듯이 언젠가는 이 작품들이 상황에 맞게 또 다른 형태로 빛을 발하리라 기대해 본다.

취미는 '캠핑'과 '화초 가꾸기'다. 주량은 소주 2~3병 정도이며 담배는 끊은 지 17년이 넘었다. 인생영화는 '포레스트 검프', 지금도 다시 보기로 감상할 만큼 좋아하는 영화다.

전홍민은 옛날 트로트(전통 트로트) 느낌을 가진 가수들에게 관심이 많다 보니 안성훈, 박지현, 진해성, 배아현, 전유진 등과 작업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찬원과도 꼭 다시 하고 싶다고.

"전통이란 것은 누군가는 해야만 그게 이어질 수 있는 겁니다. 어느 순간부터 전통 트로트는 줄어들고 세미 트로트 형태가 많아지고 있어요. 60~80대 세대들이 어릴 때부터 들었던 음악(전통 트로트)들, 그런 그들이 지금 들어도 이질감 없이 즐길 수 있는 그러한 트로트를 쓰고 싶습니다. 젊은 가수들이 트로트를 좋아하고 공부도 많이 하는 데에 반해 전통 트르트 음반은 너무 적게 발매되고 있는 게 현실이죠. 근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젊은 가수들 대부분이 전통 트로트를 잘 부르는 것 같아요. 다만 앨범이 발매될 때 전통 트로트가 아닌 형태로 나오기 때문에 이들의 매력이 숨겨지는 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저는 평생을 트로트에 헌신한, '전통 트로트 지킴이'로 남고 싶어요. 그리고 이 분야에서만큼은 국내에서 TOP이 되고 싶습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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