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에게 '한류스타' 떼고 '배우'란 타이틀 찾아준 '파친코'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2024. 8. 2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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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파친코' 이민호, 사진=애플TV+

"한국에서 제작된 작품이었다면 한수 역할에 이민호를 매칭시킬 수 있었을까요?"

애플TV+ '파친코' 시리즈에 참여한 배우 이민호의 이 한 마디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파친코' 시리즈는 191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삶을 살아온 한국인 이민자 4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위 말하는 '시대극'이라 할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시도하기조차 쉽지 않은 작품이다. 세트 및 의상 제작, 현대극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출연자도 투입되는 만큼 적잖은 제작비를 투입되는 프로젝트라 투자를 이끌어내기조차 어려운 소재다. 게다가 이런 묵직한 메시지를 가진 시대극에 참여할 이름값 높은 배우를 찾기도 험난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민호가 '파친코'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대중은 여러 번 놀랐다. 이민호에게 일제 치하 조선인 사업가 고한수 역을 맡기겠다는 발상이 놀라웠고, 이민호가 이 제안을 수락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리고 이 시리즈가 공개된 후 대중은 또 한번 놀랐다. 그 동안 '한류스타'라는 반짝이는 수식어의 대표주자였던 이민호가 완벽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며 '스타'가 아닌 '배우'의 영역에 한껏 다가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민호는 이 작품을 위해 기꺼이 오디션에 참여했다. 그는 "13년 만이었다"고 말했다. 이민호의 출세작은 2009년 방송된 '꽃보다 남자'다. 이 드라마를 통해 신드롬이라 불릴 만한 인기를 누렸고, 더 이상 그는 오디션을 볼 필요가 없었다. 쏟아지는 러브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르면 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파친코'에 참여하며 그는 낮은 자세로 임했다. 

사진=애플TV+

"배우로서의 커리어 이전에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고 좀 자유롭고 싶다는 욕망이 커져 있을 때 '파친코' 대본을 만나게 됐다. 한국에 있으면 '내가 굳이 오디션을 봐야 하나' 생각하게 되는데 완벽한 작품을 위해서는 오디션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다. 오디션 과정도 디테일해서 좋았다. 선택을 받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시간을 쏟고 태우는 과정이 소중했다."

연기를 대하는 이민호의 태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선배 배우 이정재였다. 그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통해 글로벌 스타로 거듭났다. 하지만 그는 '스타워즈' 시리즈인 '애콜라이트'에 참여하기 전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 그가 촬영을 위해 런던으로 가기 전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도 몰랐다. 좋은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면 기꺼이 어떤 배역도 받아들이겠다는 열린 자세다. 요즘 이민호는 그런 이정재와 자주 만나며 긍정 에너지를 공유하고 있다.

"이정재 선배와 술 마실 때마다 혼난다. 늘 제게 '너 재능있다. 작품 쉬지 마라'라고 충고한다. 그런 얘기들이 제게 스스로 동기 부여도 많이 된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들이 '너 연기 좋아, 그래서 쉬면 안 돼'라고 얘기해줄 때마다 더 열심히 하고 싶은 힘이 생긴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좋은 작품이라면 나라나 배역을 가리지 않고 응할 생각이 있다."

이민호가 맡은 고한수는 선과 악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은 일제의 수탈에 시름한다. 하지만 고한수는 일본인 권력자의 사위가 된 후 일본인 위에 군림한다. 조선인 출신이라는 그의 신분을 은근히 비꼬는 일본인도 있지만 고한수는 흔들리지 않는다. 간도 대지진을 겪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고한수에게 '살아 남아야 한다'는 의지보다 강한 것은 없다. 그 결연함은 이민호의 표정을 통해 온전히 드러난다. 이민호에게 '파친코'는, 그리고 고한수라는 인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책임져야 할 사명과도 같았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선조들의 희생 덕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늘 그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파친코'를 통해 각 역사적 순간마다 소외받고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고한수는 욕망 앞에 순수하고 솔직하다. 비도덕적이지만 합리적 선택을 하는 인물이다. 더 많은 것을 가질수록 정체성이 희미해져가는 고한수라는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사진=애플Tv+

'파친코'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각광받는 작품이다. 미국 매체 콜라이더(Collider)는 "현대 최고의 드라마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라고 호평했고,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는 "고난과 상실을 아름답게 그려낸 대서사시"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일본의 만행을 묘사하는 장면이 포함돼 몇몇 일본 매체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지명도가 높은 이민호 입장에서는 선택하기 다소 부담을 느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민호는 주저하지 않았다. 머리로 계산하기 보다는 가슴으로 선택한 작품이라 할 법하다. 그 결과 미국을 대표하는 방송 시상식인 '에미상'에도 노미네이트됐다. '파친코'는 이민호를 아시아 시장을 넘어 전 세계에 알린 작품으로 부족함이 없다.

"'꽃보다 남자' 이후 작품을 결정할 때 항상 심플했다. '상속자들' 할 때도 '교복을 언제 입겠냐' 하면서 선택했고, '더 킹'도 '왕자의 이미지가 생긴 것, 백마까지 타고 끝내자' 하며 결정했다. '파친코'도 새로운 이미지가 절실할 때 온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어떤 작품이든 사소한 것이라도 마음이 동하는 부분이 있으면 결정하는 데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류스타'도 내가 스스로 부르는 게 아니고 내 의도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거라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수식어라 생각한다."

인간은 나이 먹는다. 각 나잇대에 맞는 옷은 따로 있다. 배우도 나이 먹는다. 언제나 청춘 스타나 로맨틱 코미디의 왕에 머물 순 없다. 이를 고수한다면 결국 퇴보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나아가는데 혼자서 제자리 걸음을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민호는 과감한 전진을 택했다. 그리고 말한다. "20대 때 로맨틱코미디에 어울리는 면이 드러났다면, 앞으로는 꺼내놓을 게 더 많은 배우로서 40대 배우 인생이 찬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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