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팅하우스의 ‘몽니’, 韓美 원자력협정으로 돌파해야[핫이슈]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8. 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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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전 업체 웨스팅하우스가 자사 원천 기술을 내세워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출 본계약 체결을 막으려는 행태는 ‘몽니’의 전형이다. 자기들은 입찰에서 일찌감치 탈락했을 정도로 능력이 안되면서 다른 경쟁사의 잘 되는 꼴은 못보겠다는 것이다. 웨스팅하우스가 얼마 전 “한수원의 APR1000 및 APR1400 발전소 설계는 웨스팅하우스가 특허를 보유한 ‘2세대 시스템80’ 기술을 활용했다”며 특허 침해로 몰아가려 하지만 업계는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이다. 한 원자력학과 교수는 “지적재산권 침해를 입증하려면 특정 제품의 구체적 피해 사실과 범위 등이 특정돼야 하는데 웨스팅하우스 주장은 그냥 자사 특허에 기반한 기술이라는 두루뭉술한 얘기”라며 “법원에 가면 인용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원자로 구성 요소가 증기발생기, 냉각재펌프 등 비슷한 만큼 웨스팅하우스가 더 이상 원천 기술을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동차마다 엔진 구조가 비슷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다.

웨스팅하우스가 체코 당국에 진정(appeal)을 냈지만 체코전력공사(CEZ)가 즉각 “입찰에서 떨어진 참가자는 우선협상자 선정 과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답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CEZ가 웨스팅하우스와 한수원 간 저간의 사정을 모를 리 없지만 그럼에도 한수원을 선정한 것이 포인트다. 웨스팅하우스는 2년 전 원전 수주전을 앞두고 한수원의 수주 참가를 막으려 미국 법원에 소송까지 냈지만 당사자 적격이 없다는 결론을 받았다.

브리핑하는 황주호 한수원 사장 (세종=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체코 신규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안세진 원전산업정책국장. 2024.7.18 scoo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핵무기 기술과 물질 등의 이전을 통제하는 목적의 핵공급그룹(NSG) 회원국들은 취득한 원전 기술을 제3국에 이전할 때 그 기술을 가진 해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국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09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라카 원전 사업 시 그 나라에 이전되는 원전 기술에 대한 신고와 평가 승인작업을 했다. 미국도 에너지부(DOE)가 자국의 원전 기술 이전시 수출통제 및 승인을 하게 되는데 신청 주체를 미국인과 법인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한수원이 직접 신청할 수는 없고, 2009년에는 웨스팅하우스를 통해 이뤄졌다. 당시엔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에 발전기 터빈 등을 공급하며 컨소시엄 형태가 돼서 문제없이 절차가 진행됐다.

이번에도 우리가 체코에 수출하는 제품이 웨스팅하우스 주장대로 미국 원천 기술을 활용한 것이라면 승인을 받아야 해서 웨스팅하우스의 협조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체코 원전은 100% 국산화된 제품으로 구성될 수 있어 미국 수출통제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국산 기술이라면 미국이 아니라 체코로 납품되는 물품에 대해 국내 원자력위원회 승인을 받으면 된다.

더욱이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 신설된 원전 수출 증진을 위한 한미 협력 규정을 원용하면 수출 제한은 터무니없다는 지적도 있다. 협정은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접근은 계속해서 막되 한국의 원전 수출을 위해 몇가지를 규정해놓았다. 당시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부처 합동 보도자료를 보면 “한미 양국과 원자력 협정을 체결한 제3국에 대해서는 우리 원자력 수출업계가 미국산 핵물질, 원자력 장비 및 부품 등을 자유롭게 재이전 할 수 있도록 포괄절 장기 동의를 확보했다. 이로써 미국산 원자력 기자재를 제3국에 수출하는 것이 보다 원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수출입 인허가를 신속화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인허가로 인해 상대방의 교역이 제한되거나 부당한 비용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시했다”고도 했다. 미국산 원전 장비와 기술을 제3국에 수출할 때에도 미국 정부가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을 것을 약속한 것이다. 하물며 그러한 기술이 한국산이라면 미국 측이 간섭하거나 개입할 여지는 더욱 없을 것이다.

웨스팅하우스가 이미 한국의 수주가 결정된 일에 엇박자를 놓는 것은 상도에 어긋난 일이다. 한미는 1973년에 원자력 협정을 체결했을 정도로 군사 동맹 만큼이나 뿌리깊은 ‘원전 동맹’이다. 캐나다 사모펀드가 대주주가 되면서 웨스팅하우스 시공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고 기술력도 예전만큼 못하는 소문이 자자하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 수주를 방해하지 말고 정식 요청을 해서 일부 참여할 방법을 찾아야지 미국 내 일자리 감소까지 거론하며 감정적 접근을 해선 안된다.

웨스팅하우스는 현재 해외에서 폴란드 원전 6기, 불가리아 2기를 수주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후에는 그 곳 원전 수수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 견해로는 웨스팅하우스 현 능력으로는 기존에 따놓은 사업 공기를 맞추기도 버겁다. 다만 사모펀드식 몸값 높이기를 위해 세계 원전에 독점적 지위권이 건재하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할 뿐이다.

한국 정부는 원전 동맹 당사국으로서 미국 정부에 K원전 수출에 열린 자세를 촉구해야 한다.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한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우라늄 20% 미만 저농축에 대해서만, 그것도 양국 합의를 거쳐 재처리가 가능할 뿐이다. 탁월한 원전 기술을 가진 우리가 이처럼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적극 협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도 한국의 원전 수출에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나와야 한다. 미국 정부도 웨스팅하우스 몽니에 제어가 필요하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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