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예술가’ 아나돌 “데이터는 마르지 않는 물감…작품이 끊임없이 변화” [요즘 전시]
5억개 동식물 등 자연 이미지 재료
이전 작품과 비슷?…“AI 화풍으로 이해”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높이만 10.8m에 이르는 초대형 스크린 밖으로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시시각각 바뀌는 색의 입자가 물결처럼 출렁인다. 물리적 법칙에서 완전히 벗어난 비정형적인 파동 형태의 움직임이다. 이따금씩 선명한 색감을 지닌 산호, 꽃, 동물 등이 거대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웅장하면서도 편안하게 공명하는 소리가 귀를 감싸고, 나무 수액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가 코끝에 스며든다.
이 모든 것들은 인공지능(AI)이 5억 개가 넘는 방대한 자연 이미지, 400시간이 넘는 소리, 50만 개의 향기 분자 등 데이터를 학습해 만들어낸 AI 미디어 아트 선구자 레픽 아나돌(39)의 작품 ‘기계 환각’ 세계다. 그는 “데이터는 마르지 않는 물감”이라며 “그래서 제 작품은 멈추지 않는다. 색깔과 형태와 질감이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설명한다.
내달 5일 북촌에 새로 개관하는 푸투라 서울이 국내에 ‘대지의 메아리: 살아있는 아카이브’ 전시로 아나돌을 소환했다. AI를 활용해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믿었던 예술에 거침없이 도전장을 내는 그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올해 3월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소개된 전시의 ‘서울행’으로, 해당 전시에는 5주간 7만명이 다녀갔다.
그는 “현실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현실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있다”며 “AI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개념을 가리켜 작가는 ‘생성 현실’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
아나돌이 AI로 만들어낸 생성 현실에서 관람객은 AI가 꿈꾸는 자연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아나돌이 수집한 수 백만 장의 식물 이미지, 4억 개가 넘는 동물 이미지, 1억5500만 개의 자연 풍경 이미지 등이 작품의 시각적인 재료가 되면서다. 이를 위해 그는 고해상도 카메라와 라이다(LiDAR·3차원 레이저 측정 시스템) 장비를 챙겨 아마존 열대 우림에 한 달간 머물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영국 런던 자연사 박물관 등 기관이 소장한 데이터도 활용됐다.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작품의 뇌 역할을 하는 자신만의 AI 모델을 직접 개발하면서다. 오픈소스에 기반한 자연 특화 생성형 AI 모델로 아나돌은 ‘대규모 자연 모델’(Large Nature Model·LN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최근 수 년간 글로벌 빅테크가 저명한 학술지에 연구 성과를 게재하며 더욱 경쟁적으로 개발 중인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는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서 구글 클라우드와 엔비디아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아나돌은 “LNM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의 AI 모델”이라며 “알고리즘 개발에 2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시를 준비하는데 실질적으로 6억달러(8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었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크게 네 곳으로 구분된다. ▷10분간 작가의 AI 모델 개발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 ▷원천 데이터(Raw Data) 아카이브가 쉼없이 재생되는 몰입형 공간 ▷열대우림 나무의 수액의 흐름을 관찰해 이를 음악화한 물의 공간 ▷방대한 자연의 동식물 데이터를 수집해 만든 작가의 마스터피스인 ‘기계 환각’의 공간이다.
다만 이번 전시에서 AI가 꿈꾸는 자연의 모습이 작가가 이전에 보여준 작품(AI가 꿈꾸는 미술관·AI가 꿈꾸는 건물 등)과 완전히 다른 데이터를 활용했음에도 미학적으로는 유사했다. 이에 대해 그는 “고전 회화 작가가 자신만의 화풍을 갖듯 AI 작품이 갖는 고유의 화풍이라고 보면 된다”고 답했다. 앞서 그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2019), 63빌딩 로비(2023) 등 국내 곳곳에 있는 랜드마크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한편 푸투라 서울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 경험을 발굴하고 이를 전시와 프로그램으로 연결하는 공간을 목표로 문을 연다. 구다회 푸투라 서울 대표는 “이곳을 미술관이나 복합문화공간으로 지칭하지 않고 아트 스페이스(Art Space·예술 공간)라고 설명하는 이유”라며 “미술계를 넘어 광범위한 문화예술계 전체에 기여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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