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보고 맛보고 ‘군침도는 食行’[박경일기자의 여행]

■ 박경일기자의 여행
‘종이의 영웅’ 특별초대전 허영만이 꼽은 광양맛집
돼지생갈비 이름난 ‘별미정’… 간판도 없어
직접 키운 채소로 밥상 차려주는 ‘선암식당’
광양불고기 ‘경도식당’ 재첩국은 ‘해돋이식당’
서대회무침·쏙 된장국 ‘동서식당’ 꼭 맛봐야
전남도립미술관서 원화·스케치 등 전시
1층 카페는 ‘허영만 만화방’으로 꾸며
바로 옆 다문화 가치 다룬 ‘몽상블라주’ 展
내달 8일엔 베트남 이민자 가든 파티

허영만 작가가 식당 다섯 곳을 추천하고 그중 몇 곳의 음식을 만화로 그렸다. 위 큰 그림은 전남 순천 선암사 입구 ‘선암식당’의 산채정식. 가운데는 순천 ‘별미정’의 돼지생갈비. 아래 사진 왼쪽부터 전남 여수 ‘동서식당’의 서대회무침, 광양 ‘해돋이식당’의 재첩국, (아래) 광양 ‘경도식당’의 광양불고기, 허 작가의 ‘만화일기’. 열아홉 살 때 만화를 그리겠다고 상경한 자신의 막막한 시간을 그렸다.

순천·광양·여수=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여행자의 시선으로 미술을 보다

전남 광양의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만화가 허영만 특별초대전 ‘종이의 영웅, 칸□의 서사’전(展)이 열리고 있다. 허 작가의 만화인생 50년을 되짚어보는 전시다. 20년 전쯤이라면 아마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까. ‘진지한 미술관에서 경박하게 만화라니….’ 거기서 2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만화는 사회악 취급을 받았다. 서울 남산에서 불법 성인용 비디오테이프와 함께 만화책을 쌓아놓고 화형식을 하기도 했다. 그때 만화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만화를 그렸을까. 전시회에 전시한 만화 중에는 그 무렵 허 작가가 그렸던 것도 있다.

미술관도, 전시회도, 그리고 이제 만화도 미술의 영역이지만, 그걸 ‘여행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자. 광양의 전남도립미술관은 순천이나 여수, 하동, 광양으로 동선을 확장하거나, 이들 지역을 돌아보고 들르기에 딱 좋다.

‘놀러 가서 웬 미술관’이냐고 생각한다면 여행지 카페를 떠올려보자. 근사한 카페에서 잠깐의 휴식은 ‘여행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근래 새로 지어진 미술관은 하나같이 세련되고 감각적인 분위기와 쾌적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미술이 주는 여유와 위안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렴 공적 공간에서 미술이 만들어낸 공간감과 위로가, 상업적인 카페의 그것보다야 못할까. 그렇다면 카페보다 미술관이다.

# 쉬면서 즐기는 편안한 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은 순천과 부산을 잇는 옛 경전선 폐선부지에 들어섰다. 1966년 지어진 옛 광양역 자리다. 미술관은 전면의 외벽 전체가 유리다. 유리는 공간을 구분하는 동시에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광양의 풍경을 투사하고 반사한다.

‘전남도립’ 미술관이니까 남도의 수묵화로 가득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전남도립미술관의 영역은 ‘현대미술’이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의 다양한 예술을 관람하고 경험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현대미술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편견 때문일까. 미술관은 넉넉한 공간과 편안한 분위기 조성에 특히 신경을 썼다. 부담 없이 편하게 와서 쉬고 대화하면서 미술을 즐겨달라는 뜻이다.

미술관 전시실은 지하 1층에 있다. 지하 공간이라지만 외벽의 통창으로 환한 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층고가 6m에 달하는 전시실도 개방감이 압권이다. 1층에는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한적한 카페도 있다. 카페는 허영만 특별초대전에 맞춰 만화방으로 꾸며졌다. 카페 외벽을 만화로 단장하고, 가운데에는 허 작가가 그린 만화책을 쌓아놓아 누구든 가져다 읽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 개인사 넘어 만화의 역사를 담다

허영만 특별초대전은 도립미술관의 한 인턴직원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미술관의 ‘다음 전시’를 논의하던 회의에 인턴직원이 슬쩍 끼어들어 ‘만화가 허영만’의 이름을 말했다.

별 뜻 없이 꺼낸 얘기에 직원들은 무릎을 쳤다. 마침 허 작가의 데뷔가 올해로 50년째였고, 전남 여수 출신이니 전남도립미술관에서의 전시가 뜻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전남도립미술관은 현대미술을 앞세운 곳이니 다양한 장르를 포용하는 게 기본적 자세 아닌가.

전시회는 데뷔 50주년을 기념한 것이지만, 허 작가의 개인사(史)를 넘어 만화사(史) 얘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전시실에는 그의 만화가 시대별로 정리돼 있다. 불량식품 취급을 당했던 대본소 만화시대부터, 어린이 만화잡지의 시대와 애니메이션 시대,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의 원형 콘텐츠로 이어지는 지금까지…. 전시장에는 만화 주인공 캐릭터를 재현한 실물 크기 조형물도 있고, 당시의 스케치와 원화(原畵)도 전시돼 있다. 한쪽에는 허 작가가 그림을 그리던 책상 등으로 작업실도 재현해놓았다.

# 만화가 호명하는 오래된 추억

오래된 것은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그 시절의 만화도 그렇다. 똑같은 대중의 영역이긴 하지만, 만화가 길어 올리는 추억은 영화나 노래와는 또 다르다. 만화로 환기하는 기억은 어쩐지 더 작고 사소한 듯하면서 아련하다. 만화는 한때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다. 침 발라 책장을 넘기던 유년시절을, 만화는 소환한다. 전시된 만화책을 들춰보다가 어린 시절의 기억에 따스한 나트륨등이 켜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이런 이유다.

이번 허영만 특별초대전에 대한 미술관의 해설은 이렇다. “다양한 매체로 발전해 산업적 가치와 예술로 인정받은 만화예술이, 대중예술의 한 장르로 굳건히 자리매김해서 향후 만화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취지는 그럴지언정 관람객들의 시선은 좀 다르다. 관람객들은 허 작가의 미술관에 전시된 만화작품과 만화책 앞에서 그 만화를 보았던 오래전의 추억과 만난다.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혹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미술관을 찾는 발걸음이 이어지는 이유다.

전남도립미술관의 허영만 특별초대전 전시장에서 관람객이 1988년 출간한 ‘오 한강’의 원화를 감상하고 있다. 이 만화는 8·15 해방부터 6·29 선언까지 한국 현대사를 다뤘다.

전시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허 작가가 2012년에 시작해 지금까지도 꾸준히 그리고, 쓰고 있다는 ‘만화일기’였다. 사소한 일상이나 생각을 한 컷 만화로 담았는데, 작가의 시선에 비친 하루의 짧은 순간이 유쾌하게 기록돼 있다. 순간을 포착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솜씨에 혀가 내둘러진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림에 덧붙이는 유머러스하고, 때로 감동적이고, 가끔은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글이 더 돋보인다.

그림일기 중에서 눈길을 붙잡았던 건, 고교 졸업 후 만화를 그리겠다고 서울로 올라온 지 딱 50년째 되던 날의 그림일기다. 서울 행당동의 바위산 위에 열아홉 살의 그가 앉아 있다. 다니던 화실이 6개월 만에 문을 닫고 막막한 심정으로 바위에 오른 그때, 그는 오로지 ‘과연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했다고 했다. 허 작가는 그림에 ‘이렇게 큰 게 운이 좋아서인지도 모르지만, 피를 말리는 순간들이 없었으면 아무리 운이 좋았던들 살아남았을 리 없다’고 적었다.

# 돼지생갈비 맛이 이랬다니

광양은 멀어서 웬만해서는 여행할 엄두를 내기 쉽잖다. 미술관 관람만으로 모자란다면 이런 여행은 어떨까. 미술관이 있는 광양 인근의 남도에서 허 작가가 꼽아주는 식당을 찾아간다면 말이다. 미술관 여행에다 ‘미식’의 테마를 곁들인 여행이다. 허 작가에게 특별전 관람객에게 광양 주변이나 오가는 길의 추천할 만한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허 작가는 흔쾌히 식당 다섯 곳을 추천해줬다. 광양과 순천의 식당 두 곳씩과 여수의 식당 한 곳이다. 그곳 얘기를 해보자. 허영만이 직접 뽑은, 허영만 특별초대전 보러 광양을 오가는 길에 꼭 들러야 할 식당 5곳이다.

보성강을 끼고 있는 순천 주암면 광천리 외광마을은 특별하달 게 하나도 없는 시골 마을이다. 이 마을에 허 작가가 첫 번째로 꼽아준 식당 ‘별미정’이 있다. 별미정은 외견만 봐서는 식당인지 알 수 없다. 붉은색 페인트로 건물 벽에다 ‘별미정’ 글씨를 쓰고 화살표를 그려 놓았지만, 미리 알고 찾아가는 게 아니라면 화살표가 가리키는 문을 열기 전까지는 거기가 식당이라 예상할 수 없다.사실 별미정은 간판이 필요 없다. 식당이 외딴 마을의 가장 깊숙한 자리에 숨듯이 있어서, 오다가다 간판 보고 들를 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판이 없어도 되는 더 결정적 이유는, 손님 대부분이 ‘동네 사람’이라는 것. 동네 사람들이야 간판을 걸어놓지 않아도 거기가 식당인지 다 안다.

# 허영만 사인, ‘미식의 증명’

평일 이른 점심시간이었는데도, 식당 안은 얼추 자리가 절반쯤 찼다. 다들 ‘집에서 밥 먹는’ 시골에서 식당은점심시간이 헐겁다. 외딴 시골 마을의 식당이 점심시간에 이 정도로 성업하는 건 드문 일이다. 게다가 가게 안 모든 손님이 대낮부터 고기를 굽고 있다. 별미정의 메인 메뉴는 돼지생갈비다. 돼지생갈비는낯설다. 양념하지 않는 생갈비는 소고기가 보통이다. 돼지갈비는 대부분 양념한 걸 먹는다. 생돼지고기를 먹는다면, 갈비보다는 삼겹살이나 목살이다. 그런데 훈연향이 슬쩍 밴 돼지갈비 맛이 뜻밖에 훌륭하다. 기름지지 않으면서도 맛이 진하다. 인상적인 건 ‘탐스러운’ 숯이다. 베트남산 리치나무로 만든 숯이라는데, 참나무 숯을 빼닮았다. 고기도 고기지만, 숯의 불맛이 한몫하는 듯했다.

식당에는 허 작가의 사인이 걸려 있다. 허 작가는 식당에 가면 사인을 적고 덕담을 써준다. 얼결에 그의 사인이 ‘미식의 증명’처럼 돼버려서다. 주인이 종이와 펜을 내밀고 사인을 요청한다. 그러니 짐작하건대 보통 사람처럼 식당을 ‘아무 데나’ 가기가 좀 그럴 거다. 그는 사인에 인색하지 않다. 사인과 글에 성의를 다한다. 보통 연예인들이 사인만 남기거나 사인 뒤에다 ‘대박 나세요’ 식의 덕담 한 줄을 얹지만, 허 작가는 다르다. 음식이나 식당을 관통하는 얘기를 편안하고 유연한 문장으로 적어주는데, 마치 ‘현실판 만화일기’를 보는 듯하다.

별미정에 남겨놓은 허 작가의 사인이 이랬다. “제 맛집 노트에 올리겠습니다. 주암에 이런 맛이 있었다니. 오늘 하루 시작이 좋습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주암에 이런 식당이 있었다니…. 허 작가는 이곳을 추천하며 ‘후식으로 다슬기 수제비를 꼭 맛보라’는 조언을 빼놓지 않았다.

# 허영만의 사인을 걸지 않는 식당

허 작가가 광양에서 추천해준 식당은 부자가 대를 이어 운영하는 광양읍 읍내리의 광양불고기집 ‘경도식당’이다. 이 식당에는 허 작가의 사인이 없다. 사인을 받고도 그걸 걸어놓지 않은 것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아들 이대연(51) 씨가 사인을 걸어놓지 않자, 허 작가는 아버지 용길(80) 씨에게 “아자씨, 꼭 부쳐 노시오. 잉∼”이라 적은 사인까지 한 장 더 해줬는데도 그것도 걸지 않았다. 식당 입구에 허 작가의 방문을 자랑하는 배너를 세워둔 걸 보면, ‘높은 자존감’이 이유는 아닌 듯했다.

다른 식당은 없어서 못 붙이는데 왜 그럴까. 아들 이 씨에게 물었더니 말끝을 흐린다. 짚이는 이유가 두 개쯤이다. 하나는 식당 벽에 못질을 하거나 뭔가를 붙이는 게 싫다는 것. 또 하나는 안 붙인 다른 유명인의 사인도 있는데, 허 작가의 사인만 붙이기가 면구하다는 것. 이 씨는 “둘 다 맞는 얘기”라며 웃었다. 그러곤 “작가님이 뭐 그리 ‘좋게’ 써준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가 꺼내놓은 사인지에 남긴 허 작가가 쓴 글이 이랬다. “건강하세요. 그래야 우리가 맛볼 수 있으니까요.” 이보다 더한 칭찬이 어디 있을까. 광양에서 먹는 광양불고기는 다 그런 칭찬을 들을 만하다. 그러니까 모두 건강하시길.

허 작가가 세 번째로 꼽은 순천의 ‘선암식당’은 선암사 초입에 있다. 산채정식이나 산채비빔밥을 내는 전형적인 사찰 앞 식당이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직접 재배한 채소들로 요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상다리가 휠 정도로 차려지는 밥상의 푸짐함도 좋지만, 반찬 하나하나에 들어간 정성이 느껴져 감탄하게 된다. 허 작가가 꼽아준 곳 중에서 여수의 식당은 ‘동서식당’ 딱 한 곳이었다. 서대회와 꼬막을 무침으로 내는 소박한 식당이다. 막걸리 식초로 무쳐낸 서대회무침에다 게와 쏙을 넣어 끓인 된장국까지 곁들인 백반상 1인분이 1만3000원이다. 새콤달콤한 서대회무침은, 막걸리와 최상의 조합이다.

허 작가가 마지막으로 추천한 곳은 광양의 ‘해돋이식당’이다. 허 작가는 “해돋이식당의 재첩국에 재첩 회덮밥을 같이 먹으면 별미”라며 “처음에는 밍밍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맛이 깊다”고 설명했다. 아쉽게도 지금 해돋이 식당은 문을 닫았다. 섬진강의 특산이 재첩이지만, 정작 거기 사는 사람들은 재첩 음식을 잘 안 사 먹는다. 그나마 하동은 좀 나은데, 해돋이식당이 있는 광양 쪽은 매화 필 때를 빼고는 재첩 음식을 찾는 손님이 없다. ‘해돋이식당’이 봄에만 문을 여는 이유다. 해돋이식당 재첩국은 봄에만 맛볼 수 있지만, 봄이 아니더라도 괄괄하고 손 크기로 유명한 해돋이식당 안주인의 손맛을 하동읍에서 맛볼 수 있다. 해돋이식당 주인이 두 달 전쯤 하동읍의 ‘사거리포차’를 인수해 식당을 연 것. 술집이었던 상호와 간판은 그대로 걸어둔 채 고등어조림과 갈치조림, 백반 등을 내며 ‘동네장사’에 나섰는데, 벌써부터 손맛 좋다는 소문이 퍼졌다.

# 이해와 공존의 전시

지금부터는 덧붙이는 얘기. 전남도립미술관에서는 더불어 다른 전시도 감상할 수 있다. 오는 9월 3일부터 허 작가의 특별초대전 옆 전시관에서는 ‘몽상블라주’ 전시가 개막한다. 몽상블라주란 ‘몽상(夢想)’과 집합을 의미하는 ‘아상블라주(Assemblage)’를 조합해 만든 신조어. 뜻을 풀면 ‘꿈들의 집합체’쯤 되겠다. 전시는 ‘이주’와 ‘다문화’의 가치를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다문화가정 비율이 높은 전남 지역의 이슈에서 출발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이주민들이 뒤섞여 사는 공존의 사회상을 그려 보여준다. 그렇다면 몽상블라주에서 몽상, 즉 ‘꿈’은 이해와 공존의 세상으로 해석된다.

이번 전시에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현대예술가 투안 마미, 태국 영화감독이자 설치미술가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남아공의 피카소’로 불리는 윌리엄 켄트리지 등 뿌리 뽑힌 삶에 천착해온 외국 작가들과 전남 출신 작가들이 참여한다. 이 중 주목할 만한 작가가 ‘이민정원’ 시리즈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베트남 작가 투안 마미다. 투안 마미는 예명이다. 투안은 ‘미남’이란 뜻이고, 마미는 ‘사려 깊음’이란 의미란다. 마침 전시 작업을 위해 한 달쯤의 일정으로 광양읍에 머물며 베트남 이주자들을 만나고 있는 그를, 광양시 진동의 베트남 카페 ‘뛰엣’에서 만났다.

투안 마미는 대만과 독일, 미국, 일본 등에서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 이야기를 수집해 ‘이민정원’이란 주제로 영상과 작품으로 만들어왔다. ‘정원’이란 개념은, 다른 나라로 이주했지만 고향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고국에서 가져온 나무나 식물을 심어 가꾼 곳을 말한다. 정원에는 전통 음식의 재료가 되는 향신채 등을 재배하는 텃밭도 포함된다. 해외로 간 한국 이민자들이 김장을 위해 마당이나 텃밭에서 배추며 고추 등을 심어 기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에 온 베트남 사람들은 어쩌다 망고를 먹게 되면 그 씨를 심는단다.

# 이해와 공존의 세상을 꿈꾸다

아무리 국적을 바꾼대도, 입맛은 유전자 같아서 쉽사리 바꿀 수 없는 일. 작가는 정원을 통해 뿌리 뽑혀 타국에서 사는 이주자들의 삶을 포착해 영상과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가 이민정원 시리즈를 처음 기획한 건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 대만의 한 섬에 갇힌 적이 있는데, 거기서 우연히 베트남 이주근로자들이 고국에서 가져온 나무를 심어 20년째 가꾸는 정원을 보고서 감동받은 게 계기였다고 했다.

그는 작품 제작을 위해 광양에서 한 달 넘게 머물며 베트남 다문화가정을 부지런히 방문했다. 베트남 신부가 경제적 이유로 국제결혼을 택한 사례가 적잖았을 텐데, 그런 걸 보는 자국민 입장에서는 좀 불편하지 않았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각자의 선택은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로 이해합니다. 다만 몰이해로 인한 차별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양쪽 모두 배우고 치유받아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베트남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시야를 확장하고자 하는 데 제 작업의 목적이 있어요. 저마다 ‘아름다운 삶’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전시회 개막 첫 일요일인 9월 8일에는 전남도립미술관에서는 베트남 이주 여성의 가족을 초청해서 고향의 음식을 먹고 마시는 ‘베트남 이민자 가든 파티’를 연다. 미술관에 다양한 베트남 전통요리가 차려지고, 이주민들이 가지고 나온 전통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서 나눠 먹는다. 이주자들의 노래자랑이나 공연 등도 펼쳐진다. 아 참, 가든파티 하루 전인 9월 7일에는 허 작가의 ‘아티스트 토크’도 예정돼 있다. 허영만 특별초대전은 10월 20일까지, 몽상블라주 전은 12월 8일까지다.

■ 추천식당, 이렇게 즐겨라

허영만 작가는 민감하게 맛을 감별하거나, 음식을 비판하지 않는다. 소박한 음식도 늘 맛있게 먹고, 맛있는 음식에 감사한다. 그가 광양 일대의 식당을 추천하며 적어준 팁이 더 있다. 추천식당에 갈 때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되겠다. 광양 불고기를 내는 ‘경도식당’에 대한 허 작가의 팁은 ‘파김치와 곁들여서 먹으면 더 맛있다’는 것. 여수 ‘동서식당’을 놓고는 ‘촌에서 만든 그 맛’이라며 ‘막걸리 식초의 신선한 맛을 느껴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