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게임에 나오는 선수인데…" 21세 마무리 감격, 150km에 30홈런 거포도 꼼짝 못했다
[스포티비뉴스=잠실, 윤욱재 기자] KT와 LG가 만났던 28일 잠실구장. KT는 8회초 오윤석의 솔로포와 황재균의 투런포가 터지면서 4-4 동점을 이뤘다. 그런데 곧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8회말 2사 만루 위기에 몰린 것.
KT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였다. 바로 마무리투수 박영현을 투입하는 것이었다. 박영현이 마주한 상대는 30홈런 외국인타자 오스틴 딘. 박영현은 상대가 오스틴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구 일변도의 승부를 했다. 1구, 2구, 3구에 이어 4구째도 직구를 던졌다. 시속 150km 직구를 던진 박영현은 오스틴을 1루수 파울 플라이 아웃으로 잡고 만루 위기의 '해결사' 역할을 해냈다.
박영현의 활약은 9회에도 계속됐다. 선두타자 문보경을 삼진 아웃으로 잡는 등 삼자범퇴로 간단하게 이닝을 마치며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가는데 성공했다. 결국 KT는 연장 10회초 공격에서만 대거 4득점을 챙겼고 8-4 승리를 따냈다.
승리투수는 박영현의 몫이었다. 1⅓이닝 동안 삼진 2개를 잡으면서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았다. 이로써 박영현은 시즌 10승째를 수확했고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이미 21세이브를 기록한 박영현은 KBO 리그 역대 11번째로 한 시즌에 10승과 20세이브를 동시에 달성한 선수로 역사에 남았다.
KBO 리그에서 역대 최초로 단일시즌 10승-20세이브를 해낸 선수는 1984년 OB(현 두산) 윤석환으로 12승 25세이브를 기록했다. 이어 1990년 빙그레(현 한화) 송진우가 11승 27세이브, 1993년 해태(현 KIA) 선동열이 10승 31세이브, 1996년 한화 구대성이 18승 24세이브, 1997년 LG 이상훈이 10승 37세이브, 1997년 해태 임창용이 14승 26세이브, 1999년 두산 진필중이 16승 36세이브, 1999년 삼성 임창용이 13승 38세이브, 2002년 삼성 노장진이 11승 23세이브 1홀드, 2004년 현대 조용준이 10승 34세이브를 각각 기록했다.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전설적인 선수들이 해낸 기록이었다.
무려 20년 만에 바통을 이어 받은 박영현은 "20년 만에 나오는 기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장 10회에 팀이 역전하자마자 형들이 다 그 이야기를 해서 마지막에 조금 기대를 했다"라면서 "마무리투수이기 때문에 세이브에 더 욕심을 갖기는 했지만 중요한 상황을 막고 팀이 이기는 것도 짜릿하더라. 이렇게 10승까지 올 줄 몰랐다. 막상 10승을 하니까 기분이 좋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과연 박영현은 20년 전에 이 기록을 달성한 조용준이라는 선수를 알고 있을까. 1979년생인 조용준과 2003년생인 박영현의 나이는 무려 24살 차이. "알고 있다"는 박영현은 "사실 야구 게임을 하면서 알고 있었다. 게임에서 정말 좋은 선수로 나온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역시 승부의 백미는 바로 2사 만루에서 마주한 오스틴과의 승부였다. "이걸 막아야 팀이 이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무조건 정면승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박영현은 오스틴에게 줄곧 직구로만 승부한 것에 대해서는 "아마 승부가 길어졌어도 계속 직구를 던졌을 것"이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박영현은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 홀드왕, 한국시리즈 출전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쑥쑥 성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 해에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나서 특급 불펜 역할을 해내며 금메달의 주역이 됐고 리그에서는 홀드 32개를 따내며 역대 최연소 홀드왕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여기에 생애 첫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기도 했다.
박영현은 "작년에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금메달을 땄지만 포스트시즌에서 LG를 상대로 맞은 것은 아쉬웠다"라면서 "그래도 지난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다 좋은 추억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올해도 바쁜 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KT는 최하위에서 5위까지 치고 오르며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또한 올 겨울에는 프리미어12라는 국제 대회도 열린다. 지금의 컨디션이라면 대표팀에 승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박영현은 후반기에만 19경기에 나와 23⅔이닝을 던지면서 4승 10세이브 평균자책점 0.38로 특급 활약을 펼치고 있다.
우선 박영현은 먼 미래를 보는 것보다 남은 정규시즌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아프지 않으면서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포스트시즌과 대표팀은 그 다음 일이다. 일단 정규시즌에 남은 20경기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라는 것이 박영현의 말이다.
2022년 1차지명으로 KT에 입단한 박영현은 입단 첫 시즌부터 52경기에 나와 51⅔이닝을 투구하면서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3.66을 기록하며 빠르게 프로 무대 적응을 마쳤다. 지난 해 68경기에 나와 75⅓이닝을 던져 3승 3패 4세이브 32홀드 평균자책점 2.75를 기록하며 홀드왕 타이틀을 차지한 박영현은 올해 마무리투수로 새롭게 변신, 54경기에 나와 64⅔이닝을 소화하면서 10승 2패 21세이브 평균자책점 3.20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프로 3년차인데 10승, 20세이브, 30홀드를 모두 경험했다. 한마디로 리그 정상급 마무리투수로 성장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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