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밖 한 시간, 당신의 근처에서 만나는 현대미술의 거장들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조쉬 스펄링展
K&L뮤지엄 클라우디아 콤테展
대전 헤레디움 마르쿠스 뤼페르츠展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과 함께 대한민국은 '미술 천국'이 된다. 전국 곳곳에서 대형 전시들이 줄이어 당신을 기다린다. 서울 밖 1시간,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신비한 예술 세계를 함께 탐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수도권에서 펼쳐지는 전시 '베스트 3'를 모아봤다.
색과 형태에 대한 치열한 연구,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조쉬 스펄링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는 오브제와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유영하는 작가가 등장했다. 그 주인공은 1984년생 조쉬 스펄링.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는 그는 화려한 색감을 사용한 작업을 펼치는 작가다. 먼저 복잡한 합판 지지대를 제작한 후 그 위에 캔버스를 펼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모두 회화이지만 입체적이다. 회화와 조각 그 어딘가에 놓인 듯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디자인부터 미술사까지, 다양한 자료에서 영감을 얻는다.
9월 3일, 조쉬 스펄링이 개인전 '원더'를 열고 인천에서 자신의 화려한 세계를 펼쳐놓는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춤을 추는 듯한 기하학적 형태 표현, 대담한 색채의 사용을 눈앞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신작을 포함해 63점의 작품이 나오는 대규모 전시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큰 전시를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구불거리는 선을 표현한 나선형 작품 '스파이럴' 연작 30점이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 처음으로 공개된다. 서로 다른 색과 질감이 다양한 형태로 조화를 이루는 '컴포지트' 시리즈도 함께 선보인다. 그가 회화를 넘어 가구 디자인까지 손을 뻗은 '스퀴글' 벤치 26점도 관람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스펄링이 형태와 색을 연구해 온 과정을 되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먼저 밑작업을 하지 않은 '생 캔버스'로 만든 무채색 아크릴 작품이 가장 처음 관객을 만난다. '생'이라는 뜻을 가진 '로(Raw)' 시리즈다. 캔버스로 감싼 둥근 형상들이 사슬처럼 엮인 이 작업은 마치 물결치는 바다를 연상시킨다. 필기체로 글씨를 쓴 듯 곡선이 넘실거리는 패턴의 작품 '스웁프'도 함께 선보인다. 형태를 끊임없이 연구해 온 스펄링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의 2층으로 올라서면 벤치 작품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이 벤치들은 모두 '마하람' 원단으로 제작됐는데, 이 원단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도 소장될 정도로 디자인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품이자 오브제가 되는 이 벤치에는 현장을 찾은 관람객 누구든 자유롭게 앉아 쉴 수 있다. 전시와 함께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스펄링의 작품을 담은 전작 도록도 함께 발간된다. 전시는 2025년 1월 31일까지다.
경기 과천에서 직관하는 거대 설치작의 진수, K&L뮤지엄 클라우디아 콤테 개인전
9월 2일, 경기 과천 K&L 뮤지엄에서는 '거대 설치작의 진수'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스위스에서 온 현대미술가 클라우디아 콤테의 국내 첫 기관 개인전 '재로부터의 부활: 재생의 이야기'에서다. 미술관의 모든 층을 털어 그의 신작들을 선보인다. 특히 대형 벽화와 바닥 그래픽으로 구성된 장소 특정적 설치작은 콤테가 오직 K&L뮤지엄만을 위해 만든 특별한 작품이다.
콤테는 예술과 생태계의 융합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 온 작가다. 환상적인 환경을 다룬 작품들을 선보이며 기후변화와 생태계 보존 등 현재 지구에 닥친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 전시에 나온 대형 작품들을 통해서도 콤테가 가진 사회와 환경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독일의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가 2016년도에 내놓은 다큐멘터리 ‘인투 디 인페르노’에서 영감을 얻어 출발했다. 이 작품은 저명한 화산학자 클라이브 오펜하이머가 활화산의 매력과 위력을 탐구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개봉 당시 아름다운 영상미로 찬사를 받았다.
콤테는 활화산 지대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공동체 문화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통해 전시의 영감을 얻었다. 화산 현상의 장엄함과 복잡성에 감명을 받으면서다. 이후 콤테는 화산이 자연경관과 인류, 그리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연구를 이어왔다. 그리고 이번 한국 전시를 통해 화산에서 얻은 자연 속 파괴와 창조의 순환적 본질, 지질학적인 힘과 생태학적 회복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시의 주축인 대형 바닥 그래픽은 맹렬하게 흐르는 용암의 모습을 극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3D 시뮬레이션 기술을 이용하여 실현된 작업인데, 미술관의 1층부터 3층 공간을 메우는 용암의 물리적인 힘과 역동성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마치 활화산의 장관을 실내공간에서 재현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바닥 그래픽은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콤테가 재활용 어망을 이용하여 제작했다. 용암을 연상케 하는 강렬한 빨강과 주황으로 뒤덮인 바닥. 이를 둘러싼 미술관 벽면에는 흙을 이용해 만든 벽화가 자리잡았다. 강렬한 바닥과 상반되는 평온한 이미지를 위해 벽에는 일정한 곡선을 반복해 그려넣었다. 콤테는 벽화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산과 물결을 상상하게끔 의도했다.
불과 산, 물결이 만든 환경 곳곳에는 화산 지대에 자생하는 나무와 생물들을 정교하게 묘사한 신작 조각 연작 5점이 자리했다. 콤테가 스위스 바젤 자연사 박물관에 보존된 박제 표본을 3D 스캔한 후 검은색 대리석으로 제작했다.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유지되는 생명의 강인한 회복력을 전하기 위한 작업이다.
각각의 조각들은 불타버린 나무 위의 이구아나, 죽은 물고기, 멸종된 황금두꺼비, 그리고 땅에서 솟아오르는 매머드를 묘사한다. 모두 인간의 사냥과 기후변화 등으로 지구에서 멸종됐거나 위협을 받는 동물들이다. 콤테는 이 상징물들을 통해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를 전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지질학적 순환과 파괴를 직관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전시는 12월 28일까지 이어진다.
대전 헤레디움 마르쿠스 뤼페르츠
서울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대전에는 독일 표현주의의 거장이 찾아왔다. 9월 1일부터 관객을 찾아오는 건 전후 독일미술의 3대 거장 중 하나로 꼽히는 마르쿠스 뤼페르츠. 뤼페르츠가 대전의 복합문화공간 헤레디움에서 개인전 '신화, 그리고 다른 질문들'을 열고 관객을 만난다.
뤼페르츠는 오늘날 독일 젊은 세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로 알려졌다. 그는 회화의 참된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 작가로 통한다. '회화의 힘을 갱신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유다. 추상미술과 개념미술이 주류였던 1980년대에 '회화를 위한 회화, 열광적인 회화'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뤼페르츠는 회화 속 내용적 측면보다 색과 형태의 상호작용 등 그림 그 자체에 집중했다.
그렇게 그가 탄생시킨 신개념은 ‘디티람브’. 고대 그리스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찬가를 지칭했던 디티람브는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구상적인 것'을 의미하는 모순적인 용어다. 그는 이 개념을 통해 회화의 이분법적 규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뤼페르츠가 내놓은 회화 그 자체, 디티람브 개념을 관통하는 작품들이 나온다. 1980년대 후기 작품부터 최신작까지 회화 33점과 조각 8점을 선보인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동독에서 서독으로 망명한 뤼페르츠는 베를린으로 이주해 본격적 작품활동을 시작한 1963년부터 구상과 추상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회화를 그리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이미지의 형태를 단순화하기도 하고, 어떤 대상은 그 세부 묘사를 확대하며 조형적 실험을 지속했다.
1980년대 이후 그는 활동 무대를 넓혔다. 조각부터 무대 디자인, 시인, 심지어 재즈 피아니스트로까지 범위를 넓혀 예술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003년부터는 직접 <프라우 운드 훈드>라는 제목의 저널을 집필하고 편집하고 있다. 그의 예술 세계를 총망라하는 전시이기에 경험할 가치가 있다. 전시는 2025년 2월 28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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