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가을 꽃게가 돌아왔다…밥도둑 ‘게살비빔밥’ 한번 ‘맛보시게’
금어기 끝나 살 꽉 차오른 수꽃게
속 발라 고춧가루 넣고 ‘무침’으로
녹진한 식감에 매콤 양념 꿀 조합
키틴 성분, 콜레스테롤 수치 낮춰
타우린 풍부 피로해소에 효과적
아침 이슬이 맺히는 백로(9월7일)가 일주일 남짓하다. 이 무렵이 되면 어느 해보다 무더웠던 이번 여름이 저물고 한층 가을에 다가설 듯하다. 가을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오로지 선선한 날씨와 단풍 때문만은 아니다. 전남 목포엔 살을 가득 품은 수꽃게가 입안에도 가을이 찾아왔음을 알려서다. 맵싸한 양념에 버무린 꽃게살을 밥에 비빈 ‘꽃게살비빔밥’이 목포의 가을 별미다.
꽃게는 수심 20∼30m 모랫바닥이나 갯벌 속에 서식하는 갑각류로, 우리나라는 서·남해에서 주로 서식한다. 다른 게와 달리 헤엄을 잘 치는 게 특징인데, 배를 젓는 노처럼 납작하게 생긴 네번째 다리를 휘저으며 빠른 속도로 물속을 헤엄친다. 꽃게 산란기는 6∼7월이다. 따라서 산란 직전 살이 오른 암꽃게는 봄철에, 수꽃게는 금어기를 넘긴 8월말부터 11월말 사이에 많이 찾는다. 비빔밥에 넣는 꽃게살무침엔 수꽃게만 사용하는데, 살이 무르지 않고 탱글탱글해 무침에 잘 어울린다. 요즘은 배에서 바로 급랭해 1년 내내 수꽃게를 저장해서 먹을 수 있지만 생꽃게살로 만드는 음식인 만큼 제철에 활꽃게로 맛보는 게 좋다. 꽃게는 여름 더위로 고갈된 기력을 회복시켜줄 바다의 보약으로도 불린다. 단백질·칼슘·비타민 등 필수 영양소뿐만 아니라 타우린도 풍부해 피로 해소에 효과적이다. 또한 게 껍데기에 함유된 키틴 성분은 체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목포엔 민어·홍어·낙지·꽃게 등 서·남해의 풍부한 수산물에 남도의 손맛이 더해진 음식이 발달했다. 그 가운데 꽃게는 매운 양념에 버무려 무침으로 먹는다. 꽃게무침은 양념게장과 다르다. 양념게장은 물엿을 넣어 걸쭉한 양념에 꽃게를 숙성시켜 만들지만, 꽃게무침은 신선한 꽃게에 고춧가루를 버무려 곧바로 먹는 음식이다. 비유하자면 양념게장은 묵은지, 꽃게무침은 겉절이라고 할 수 있다. 양념이 묻은 꽃게를 껍데기째 씹으며 살을 발라 먹는 게 맛은 있지만 다소 불편하긴 하다. 40여년 전 뱃사람들의 단골집이었던 목포항 근처 주점에선 손님들이 꽃게살을 밥에 비벼 먹기 쉽게 발라서 양념해 내놓기 시작했고, 다른 식당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팔면서 꽃게살비빔밥이 목포의 대표적인 별미로 자리 잡게 됐다.
생꽃게살을 그대로 넣은 음식이라 신선도가 매우 중요해 바다가 있는 지역이 아니면 맛보기 어렵다. 목포로 가족과 함께 여행을 온 이대영씨(40·서울 강동구)는 “전남에 일이 있을 때 꼭 목포에 들러 꽃게살비빔밥을 먹고 간다”며 “꽃게살을 입안 가득 느낄 수 있어 아이들도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목포항 주변엔 꽃게살비빔밥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몇곳 있다. 꽃게무침·꽃게비빔밥·꽃게살비빔밥 등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꽃게살무침을 푸짐하게 내놓는다.
꽃게살무침을 만들려면 딱딱한 껍데기에서 꽃게살을 발라내는 것부터 해야 한다. 목포 상동에 있는 평화광장 근처에서 목포비빔밥전문점 ‘해빔’을 운영하는 김나영씨(52)는 “꽃게살을 바를 때 홍두깨로 밀면 껍데기가 들어가거나 살이 뭉개지기 때문에 일일이 다 손으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춧가루에 양파청·간장·액젓 등을 넣은 양념을 사용한다. 이어 곡물가루를 추가해 매운맛을 중화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이 식당에선 꽃게살무침에 목포 바다에서 얻은 꼬시래기·돌가사리·다시마 등 8가지 해초를 함께 비벼 오독오독한 식감을 더했다.
참기름과 흰쌀밥을 담은 넓은 그릇과 꽃게살무침이 상 위에 오른다. 빨간 양념 사이로 희고 투명한 꽃게살이 그대로 보인다. 꽃게살무침을 밥과 함께 비벼 먹기 전 숟가락으로 꽃게살을 한술 크게 떠서 먹어본다. 많이 달지 않은 매운 양념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이내 찰진 꽃게살이 혀에 뭉근하게 닿는다. 비린 맛 없이 녹진한 식감과 매콤한 양념이 조화롭다. 꽃게살무침을 밥에 비비면 게살과 내장이 밥알 사이로 스며들며 부드러워진다. 게살을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밥에 꽃게살을 따로 얹어 먹어도 좋다. 비빔밥이 느끼하게 느껴질 때쯤 김에 싸서 먹어보자.
산해진미의 맛이 깊어가는 가을 바다를 감상하며 제철 꽃게맛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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