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치러낸 여름 이야기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8. 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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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탑동시민농장에서 고개 숙인 해바라기 위로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다. 연합뉴스

유지민 | 서울 문정고 2학년

매년 이례적인 폭염이 기록되는 여름이 찾아온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예민해지지만, 휠체어를 타는 이들에게는 더욱 살아남기 어려운 계절이다. 바로 여름에만 생기는 제 ‘앞가림’에 대한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 앞에 닥친 일을 제힘으로 해냄’, 앞가림의 사전적 정의다.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지만 무엇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일들이 있다.

여름이 되면 땀을 흘리는데도 다른 계절에 비해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된다. 하지의 감각이 둔해 배뇨감을 잘 느끼지 못하고, 만성 비뇨기질환을 앓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들은 더더욱 규칙적으로 화장실에 가야 한다. 그러나 더운 날씨에 정상적인 사고가 어려울 땐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진다. 땀에 젖은 옷을 벗고 다시 입는 것도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다. 지난 7월 외출했을 때, 무려 9시간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았던 적이 있을 만큼 말이다. 신호가 와도 장애인 화장실을 찾는 데서 또다시 난관에 봉착한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보는 곳은 근방의 장애인 화장실이고, 종종 힘겹게 일반 화장실을 가기도 한다. 평소에는 외출 시 액체를 최대한 덜 마시려고 하지만, 무자비한 더위 앞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장애인들 사이에선 ‘화장실권’이라는 단어가 생길 만큼 시설이 열악하다.

평소 긴 바지를 선호하지만, 기록적인 폭염엔 도저히 긴 옷을 입을 수 없었다. 반바지나 얇은 치마를 입고 외출하면 늘 하반신에 원인 모를 상처가 생긴다. 짧은 하의를 입으면 최대한 휠체어에서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이 자주 생기기 마련이다. 감각이 없어 크게 다쳐도 스스로 알기 힘들다. 비슷한 상황은 욕창 관리에서도 일어난다. 욕창이란 피부 한곳이 오랫동안 눌려 혈관의 압박 탓에 피가 통하지 않아 생기는 상처를 의미한다. 장시간 앉아 있는 탓에 엉덩이에 만성 욕창이 있는데, 여름엔 땀이 차 상처가 곪거나 염증이 생기기 쉽다. 그만큼 더욱 세심하게 다뤄야 하는데, 엉덩이는 스스로 발견하고 관리하기 힘든 위치다. 집에서 치료할 수 없을 만큼 증상이 심해져 급히 병원에 찾아간 적도 있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욕창에 균이 침투해 균혈증으로 발전할 때의 사망률은 60%에 이른다. 매 여름 ‘상처와의 전쟁’을 치르는 셈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기계도 날씨의 영향에 민감하다. 극단적인 더위나 추위에 놓이게 되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현재 사용하는 전동휠체어의 배터리가 그렇다. 바퀴를 밀어 수동휠체어로 이용할 수 있지만 오래, 멀리 이동하기 힘들다. 배터리 고장에 취약한 한여름과 한겨울엔 최대한 야외에 장시간 있는 걸 꺼린다. 그 가운데에서 더 꺼리는 계절은 여름이다. 발열은 배터리 고장은 물론 화재나 폭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장애인의 건강, 안전과 직결된 문제를 만든다. 급격히 뜨거워진 배터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전원이 꺼지는 경험을 여러번 했다. 건널목을 건너다, 오르막길을 가다 휠체어가 멈추는 일은 전혀 반갑지 않다. 더불어 잦은 발열은 배터리의 수명을 떨어트린다. 결코 저렴하지 않지만 생필품과 다름없기에 고장이 날 때마다 새로 구매해야 한다. 이렇게 장애인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을 통틀어 ‘장애비용’이라고 부른다. 일부는 국가가 지원해주는데도 개인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 건강, 안전, 경제와 같이 생존과 직결된 장애용품의 관리는 장애인에게는 평생의 숙제와도 같다.

늘 꾸준히 찾아오는 문제들이지만 타인에게 쉽사리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장애인들인데 가족과 지인들은 대부분 비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도 한정적인 정보만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글은 일종의 ‘주의사항’과도 같다. 장애인들이 사전에 문제가 될 가능성을 인지하고 예방해 더 편안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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