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미래를 보려면 박물관으로 가라[기고]
박물관이 '과학·예술·첨단기술'을 입히는 이유
[서울=뉴시스] "그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고, 현재를 보려면 시장에,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보라."
흔히 도서관의 중요성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격언이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이 말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이 틀을 깨고 싶다. 박물관은 과거만 담는 곳이 아니다.
박물관을 뜻하는 '뮤지엄(Museum)'이란 단어는 기원전 3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왕실 부속 학술원인 '무세이온(Museion)'에서 유래됐다. 무세이온은 각종의 수집품과 도서를 통해 문학·철학·과학·미술의 진흥을 꾀했고,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여 학문적 호기심과 예술적 상상력을 충족시키던 장소였다.
'유레카!'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 지동설을 최초로 주장한 아리스타르코스, 기하학자인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 등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무세이온은 그 시대의 과학과 첨단기술, 그리고 예술을 전시하고 연구해 미래를 통찰하는 곳이었다. 일종의 '종합 싱크탱크(think tank)' 였던 것이다.
지난해 6월 인천 송도에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문자로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만나고, 인류·역사와 소통하는 열린 박물관'을 박물관의 비전으로 설정하고, 실현 전략으로 'S.A.T.'를 이야기한다. 'S.A.T.'는 'Science(과학)·Art(예술)·Technology(첨단기술)'의 약자로 과학과 예술, 첨단기술이 융합된 박물관을 말한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제체시온(분리파 전시관) 건물 정면에는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그 예술에는 그 예술의 자유를'이란 문구가 쓰여있다. '유디트'(1901), '키스'(1907~1908) 등으로 유명한 빈 분리파의 수장 '구스타프 클림트'가 남긴 구호다.
클림트는 기존 전통적인 미술에 대항해 '빈 분리파'를 결성하며 시대에 맞는 사고의 예술을 지향했다. 클림트의 말처럼 박물관은 이 시대의 박물관이 돼야 하고, 이 시대의 전략이 필요하다.
'S.A.T.'는 이 시대를 반영한 전략이자 철학이다. 최근 박물관들의 가장 큰 화두는 관람객들과의 '소통'과 '교감'이다. 관람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관람객들의 눈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짧은 시간 동안 과학과 기술이 발전했고,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예술·문화 분야도 그렇다. 미술관을 가지 않아도 방에서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1666)나 고흐의 '해바라기'(1888)를 고해상도로 볼 수 있는 시대다.
박물관의 전시 환경이 바뀌고 관람객의 역할이 중요시되면서 그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박물관 전시 공간 자체에 대한 개념 변화를 불러왔다. 시대적 흐름에 따른 전시 환경의 변화로 인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박물관은 이제 단순히 유물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관람객들에게 고차원적인 예술적 경험을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는 10월 8일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S.A.T.'의 철학을 담아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출입구와 로비에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미디어 작품이 세워지고, 상설 전시장 일부도 개편돼 박물관 곳곳의 전시물, 설치물에 'S.A.T.'를 녹일 것이다.
문자 유물 중 가장 중요한 유물로 평가되는 '로제타스톤'이 국내의 최첨단 기술로 원본에 가깝게 복제돼 전시되고, 훈민정음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보국 이야기도 추가된다. 새롭게 선보일 작품과 공간은 화려함보다, 편안함과 깊이를 추구한다. 전시와 연구, 교육을 통해 학문적 호기심과 예술적 상상력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궁극적 목표는 'S.A.T.'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전시, 교육 등을 통해 새로운 사고(思考, thinking)를 만들고, 인간의 고귀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박물관은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고 관람객 스스로 새로운 감성을 창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런 바람을 담아 전시 관람 후 사색할 수 있는 에필로그 공간도 마련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그 시대의 과학과 첨단기술, 그리고 예술을 전시하고 연구해 미래를 통찰했던 무세이온처럼, 지금 시대의 전시, 이 시대의 정신을 담고자 한다. 끝으로 서두에 소개했던 격언을 이렇게 수정하고 싶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려면 박물관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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