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Y와 XX 사이, 성별 이분법에 날린 ‘그녀’의 주먹

주하은 기자 2024. 8. 29.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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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켈리프의 금메달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국제복싱협회가 부적격 선수로 지적하면서다. 통상적인 관념과 달리 성별은 남녀로 분명히 구별되는 매끄러운 영역이 아니다.
8월9일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66kg급 결승전에서 이만 켈리프가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AFP PHOTO

알제리 복싱 선수 이만 켈리프가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여성 선수로서, 여성 복싱 66㎏급 경기에서.

총 329개 금메달 중 하나에 불과한 이 메달 획득 소식을 세계적 이슈로 키운 것은 국제복싱협회(IBA)다. IBA는 이만 켈리프가 여자부 경기 참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부적격 선수”라고 지적했다. 여성 복싱 57㎏급 금메달을 딴 타이완의 린위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판단을 내렸다. 이 두 선수를 ‘여성’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IBA는 지배구조 등의 문제로 2016년 리우 올림픽 이후 올림픽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상실한 상태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논쟁을 이어가며 두 선수의 자격 논란을 키웠다. “경기 중 잠재적으로 심각한 부상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복싱 선수들을 노출시키는 것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라며 IOC를 비판하기도 했다.

IBA는 공식 성명에서 이 두 선수를 ‘여성’으로 보지 않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개정된 IBA 규칙과 우마르 크렘레프 IBA 회장의 발언을 통해 추정할 뿐이다. IBA는 ‘남성’을 XY 염색체를 가진 개인으로, ‘여성’을 XX 염색체를 가진 개인으로 정의했다. 이 기준을 통해 유추해본다면, 두 선수는 여성으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XY 염색체를 가진 DSD(성발달 차이, Differences in Sex Development) 선수로 추정된다. 물론 두 선수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는 없다.

8월14일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 김결희 교수가 <시사IN>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DSD란 무엇일까. 한림의대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 김결희 교수(성형외과)는 DSD를 이렇게 설명한다. “염색체, 호르몬, 외부 생식기, 내부 생식기 등이 성별 이분법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과거엔 인터섹스(간성)라고 부르기도 했고, ‘성발달 장애’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만 이걸 하나의 단일한 상태로 지칭할 수는 없다. 성별 스펙트럼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연구에 따라선 전 세계 인구 1.7%가 DSD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한다.”

통상적인 관념과 달리, 성별은 남녀로 분명히 구별되는 매끄러운 영역이 아니다. 다층적인 성발달 단계에서 개인은 각기 다른 양상을 겪는다. 외부 생식기와 다른 염색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남녀 생식기가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당사자 역시 DSD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기도 한다. 외부 생식기에서 별다른 특징이 없다면, 특별한 검사를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DSD라는 사실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스포츠 영역에서 논란 된 ‘DSD 규정’

그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다수일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던 DSD가 유독 논란이 된 것은 스포츠 영역이다. DSD를 겪고 있는 여성 선수가, 그렇지 않은 여성 선수보다 지나친 이점(advantage)을 가지고 있다는 공정 이슈로 번지면서다. 사춘기가 지나며 사람은 성별에 따라 다른 신체적 발달을 겪게 되는데, 특히 ‘남성’이 비교적 이점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종목에서 DSD가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다만 DSD 선수를 향한 공정성 논쟁과, 이만 켈리프를 둘러싼 논란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우선 켈리프 실격 조치는 절차적 문제가 있다. IBA는 2022년 5월17일과 지난해 3월17일 두 차례 모종의 검사를 한 뒤, 지난해 3월24일 두 선수(켈리프와 린위팅)를 실격시켰다. 그러나 실격 결정은 표결로 이루어진 것일 뿐, IBA 규칙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염색체에 따라 성별을 구분한다는 규칙은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인 지난해 5월12일에서야 신설됐다. 실격 결정에 대해 IOC가 “갑작스럽고 자의적이다”라고 비판한 이유다.

이만 켈리프가 압도적 경기력으로 처음부터 돌풍을 일으킨 것도 아니다. 그는 2018~2019년 IBA가 주관한 여자 세계복싱선수권 대회에서 모두 1라운드 탈락했다. 이후 점차 실력이 향상돼 좋은 성적을 거둔 켈리프에 대해, IBA는 2022년 10월 이러한 평가를 내놓았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인상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노력과 끈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당시 IBA는 이미 첫 번째 검사로 켈리프가 “여자 종목의 자격 기준과 일치하지 않는 결과”를 받았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였다.

일각에서는 이만 켈리프가 IBA로부터 실격을 당한 시점에 주목한다. 이만 켈리프는 2023년 3월24일 뉴델리 여자 세계복싱선수권 대회 기간 중 실격 처분을 받았다. 3월21일 당시까지 무패를 기록 중이었던 러시아의 아잘리아 아미네바를 꺾은 지 3일 만이다. 이를 두고 러시아 자본을 최대 스폰서로 두고, 러시아인 회장이 이끄는 IBA가 아미네바의 기록에 ‘흠결’을 남기지 않기 위해 켈리프를 실격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만 켈리프 이전에도 성별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은 꾸준히 존재했다. 최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거리 육상 선수 캐스터 세메냐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세계육상연맹(WA)은 세메냐가 DSD를 겪고 있고, 이로 인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지나치게 높다며 세메냐가 주 종목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다만 경구피임약 복용 등을 통해 최소 6개월간 지속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추면 국제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세메냐는 이를 거부했고, 국제 대회 참가가 제한됐다.

2018년 4월10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여성 1500m 육상 경기에서 캐스터 세메냐가 달리고 있다. ⓒAP Photo

세메냐와 남아프리카육상협회는 세계육상연맹을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지나치게 높으면 주 종목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DSD 규정’이 차별적이고, 불필요하며,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스포츠중재재판소는 세메냐의 중재 요청을 기각했다. 스포츠중재재판소는 DSD 규정이 차별인 것은 맞지만 “여성 육상의 완전성을 유지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합리적이고 비례적인 수단”이라고 판단했다. 스포츠중재재판소가 위치한 스위스 연방대법원 역시 WA의 손을 들어주며 세메냐는 영영 국제 대회에서 제외되는 듯했다.

상위 기관인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판단은 달랐다. 우선 ECHR는 호르몬 치료를 요하는 DSD 규정이 “개인적 정체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세메냐가 경구피임약을 복용하지 않을 “실질적인 선택의 여지가 없다”라고 판시했다. DSD 규정이 차별적이고, 차별에 대한 효과적인 구제책도 미비하다는 판단이다.

해당 재판은 현재 ECHR 대재판부로 넘어가 심리가 진행되고 있기에, 세메냐의 복귀는 아직 달성되지 못했다. 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온다 하더라도 33세가 된 세메냐는 육상 선수로서 복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세메냐는 “더 이상 경쟁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무엇이 옳은지 가리기 위한 싸움이다”라며 다음 세대를 위해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특정한 선수를 둘러싼 논란과 별개로, DSD를 겪는 선수가 불공정한 이점을 지녔는지 여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현재까지 DSD 선수가 이점을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관련한 연구가 진행된 바 있지만, 과학적 사실을 가리기 위한 증거는 부족한 상황이다. 더욱이 같은 DSD 선수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발현 양태가 제각기 다르다는 점에서 단정적인 결론을 내긴 더욱 어렵다. 예컨대 XY 염색체를 가지고 테스토스테론을 많이 만들어내는 선수라 하더라도, 수용체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그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현재 나와 있는 연구들은 케이스 수가 적고, 장기간의 연구도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문제가 있다. 논문들이 굉장히 상반된 결론을 내기도 한다.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김결희 교수는 말했다.

캐스터 세메냐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린 스포츠중재재판소도 DSD 선수들의 ‘이점’에 대해선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스포츠중재재판소는 DSD 규칙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지만 동시에 판결문에 “심각한 우려”를 병기했다. 수많은 전문가와 함께 심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수의 DSD 선수들이 (이론과 달리) 실제로 유의미한 운동능력 우위를 보였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스포츠중재재판소는 “더 많은 증거가 확보될 때까지” DSD 규정을 연기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제 상대는 뛰어난 경쟁자였다”

‘이점’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불공정’한지는 또 다른 쟁점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각 스포츠 선수들이 가지는 여러 신체적 이점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예컨대 농구 선수가 큰 키를 가지고, 수영 선수가 긴 팔을 가졌을 때 해당 종목에서 유리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캐스터 세메냐 역시 자신의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단순히 유전적 재능으로 간주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파리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DSD 선수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만 켈리프를 향한 강한 혐오 발화만큼이나,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결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DSD 선수를 향한 성급한 배제도, 무조건적 옹호도 현재로서는 섣부른 측면이 있다. IOC는 여권에 기재된 성별을 기준으로 참가 자격을 나누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 역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것이 아니긴 마찬가지다.

금메달 결정전에서 이만 켈리프가 승리하고 난 뒤, 은메달을 차지한 중국의 양리우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이만 켈리프에 밀려 금메달을 놓친, 어찌 보면 ‘최대 피해자’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리우는 성별 논란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르겠다”라며 “제 상대는 뛰어난 경쟁자이고 아주 좋은 경기를 펼쳤다. 그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라고 말했다.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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