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기관 ‘빚더미’… 2025년 예산 다 쏟아부어도 못 갚는다 [심층기획-尹정부 재정건전성 확보 ‘빨간불’]
전년대비 38조 불어나 또 역대최고치
부채비율도 2022년 이후 가파른 상승
한전 543% … 가스공사도 482% 달해
공공요금 관련 기관 부채 급증세 심각
전문가 “요금통제 등 영업이익에 타격”
LH 등 향후 지출 증가 요인 많아 부담
건전재정 고삐 쥐고 혁신 박차 가해야
이런 흐름을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정부 시절과 비교해도 부채비율 오름세가 너무 가파르다. 문재인정부 집권 2년 차인 2018년 당시 공공기관(336개) 기준 부채비율은 154.8%로, 취임 직전 해인 2016년(167.1%)과 비교해 12.3%포인트 줄었다.
이와 달리 이번 정부는 취임 전인 2021년 154.8%에서 지난해 183.0%로 28.2%포인트 뛰었다. 매년 공공기관을 지정·해제하는 탓에 수치 자체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변동 폭만 놓고 봤을 때 이번 정부에서 공공기관 건전성 악화가 심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 분석 결과 한전, 가스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주요 공공요금 관련 5개 기관의 지난해 기준 부채 총액은 320조2671억원으로, 공공기관 총부채의 45.2%를 차지한다. 이들 기관의 최근 4년 새 부채비율 상승 폭(117.0%포인트)은 전체 공공기관(21.5%포인트)의 5배를 뛰어넘는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한전 등 시장형 공기업들은) 장기적 자금 조달이 필수적이고,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기업의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요금 통제 등으로 영업이익이 문제가 되면 공기업의 지속적 발전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첩첩산중 공기관 부채…재무건전성 악화일로
갈수록 지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기관들이 잇따르는 점도 공공기관 재무건전성 악화 우려 요인이다. 대표적인 곳이 LH다. LH의 지난해 말 기준 부채 규모는 152조8473억원으로, 전년 대비 6조2301억원 늘었다. LH는 이미 사업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기획재정부의 ‘재무위험기관’으로 분류돼 있는데, 최근 정부의 ‘8·8 주택공급 확대 방안’의 주요 추진 기관 역할을 떠맡으면서 부담이 더 커졌다.
LH 측은 “보상 등의 과정에서 선(先) 재정 투입을 하고, 신도시와 건물이 조성된 후에 회수하는 사업구조에 따른 것으로, 재무 또는 사업상의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세계일보에 전했다.
◆요금 올리더라도 장기 건전성 확보가 관건
정부 역시 공공기관의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중장기 관리계획을 마련한 상태다. 이날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는 공공기관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수정된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안을 ‘2024∼2028 국가재정운용 계획’의 세부 항목으로 다음 달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2022년 6월 ‘공공기관 재무건전성 강화방안’을 내놓으면서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작성 기관 27곳 중 LH를 포함한 14곳을 ‘재무위험기관’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들 기관의 재무상태가 전체 공공기관의 부채비율 상승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특별 관리’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따라 재무위험기관은 비핵심 자산의 매각, 투자·사업 정비, 경영 효율화 등을 벌여 2026년까지 42조4000억원의 재정 건전화를 이루는 내용이 골자인 ‘건전화 계획’을 시행 중이다.
도로공사의 경우 내년 부채비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2028년엔 부채 총액이 50조원(부채비율 100%)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세종고속도로 등 준공이 임박한 사업에 대한 투자 규모 증가 탓이다. 도로공사는 영종·인천대교를 포함한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등 현 정부 정책 이행에 따른 적자 확대라 정부 예산 지원을 바라고 있다. 성사되지 않을 경우 30년 이상 노후 고속도로 교량 등 구조물에 대한 성능향상 작업도 차질을 빚을 수 있어 보인다. 이에 도로공사는 자산매각 등을 통해 향후 5년간 2조5840억원 규모의 자구노력 목표를 제시했다.
전체적으로도 공공기관의 재정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히 한전의 2023년 부채 규모(별도 기준)는 전년 대비 11조2183억원 늘어난 120조1813억원으로, 1년 새 증가 규모가 가장 컸다. 한전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실상 전기요금 인상밖에 답이 없지만 물가 부담을 고려하면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나빠질수록 공공기관의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특성상 현 정부의 재무관리 어려움에 대해선 인정하면서도 미래 세대를 위해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요금 인상은 원래 법대로라면 물가 관리 기관과 협의하면 되는데, 언제부터인지 정치권의 당정협의가 더 큰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며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이 공공요금 가격 결정에 개입하면 요금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공기업들이 부채를 많이 지고 있고, 그 부채의 이자를 갚기 위해서 또 채권을 발행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공기업 부채 문제는 앞으로 갈수록 더 심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경제학)는 “현재 윤석열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라며 “나는 건전성이 제일 우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려야 할 가스, 전기요금은 올리고, (요금 인상으로) 어려운 사람이 생기면 바우처를 지급하는 식으로 기존 예산에서 처리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강진 기자, 재계팀 종합, 세종=안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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