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부진→강등에 ‘특급 경쟁자’까지 마주하게 된 배지환, 위기 이겨낼 수 있을까[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배지환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이제는 한 번의 강등이 문제가 아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8월 28일(한국시간) 배지환을 트리플A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언스로 강등시켰다. 지난 4월 마이너리그 옵션을 발동해 배지환을 트리플A로 보냈던 피츠버그는 올해 총 5차례 배지환을 빅리그 등록 후 마이너리그로 돌려보낼 수 있다. 4월과 6월 트리플A로 향했던 배지환은 올시즌 3번째로 강등의 아픔을 겪게 됐다.
피츠버그는 이날 두 명의 주축 투수를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시켰다. 2001년생 신인으로 전반기 16경기 5승 6패, 평균자책점 3.56으로 맹활약한 우완 선발 자레드 존스, 지난해 10홀드를 기록한 필승조 불펜투수인 1999년생 우완 카르멘 모진스키가 이날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했다. 빅리그 로스터 두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피츠버그는 좌완 브래디 페이글을 DFA(Designated for assignment, 지명할당)하고 배지환을 트리플A로 보냈다.
억울하다고 할 수도 없는 결정이었다. 배지환은 올시즌 29경기에서 .189/.247/.216 6타점 6도루를 기록했다. OPS 0.463은 올시즌 피츠버그에서 10타석 이상을 소화한 모든 야수 중 가장 낮은 기록이었다. 배지환은 사실상 올해 피츠버그에서 가장 부진한 야수였다. 성적이 최악이면서 마이너리그 강등에 대해 구단이 감수해야 할 패널티도 없으니 피츠버그가 배지환의 이름을 빅리그 26인 로스터에서 지우는 것은 냉정히 당연한 선택이었다.
사실 지난 오프시즌까지만 해도 배지환의 입지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1999년생 배지환은 'TOP 100' 유망주는 아니었지만 피츠버그 팀 내에서 상당히 기대를 받는 선수였다. 장타력은 부족하지만 준수한 정교함과 빠른 발을 바탕으로 공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로 평가를 받았다.
2022시즌 빅리그에 데뷔한 배지환은 데뷔시즌 빅리그 10경기에 출전해 333/.405/.424 6타점 3도루로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지난해 개막 로스터에 합류해서 빅리그에서 111경기를 소화했다. 확실한 주전 선수는 아니었지만 준주전급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371타석을 소화하며 .231/.296/.311 2홈런 32타점 24도루를 기록했다. 물론 타격 생산성은 아쉬웠지만 2루수와 중견수를 소화하는 '센터라인' 야수로서 빠른 발과 준수한 수비 능력을 선보였다. 부상 이탈 기간을 제외하면 빅리그 로스터에서 제외되지도 않았다.
지난해 풀타임 시즌을 경험한 만큼 올시즌에는 한층 더 발전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확실한 주전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더 증명해야 할 것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빅리그 로스터를 지키며 유틸리티 플레이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스프링캠프에서 엉덩이 부상을 당했고 시즌을 부상자 명단에서 시작했다. 스프링캠프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배지환은 개막 약 2주 후 부상에서는 회복됐지만 빅리그 로스터로 돌아오지 못했다. 피츠버그는 부상에서 회복한 배지환을 그대로 트리플A로 보내 시즌을 다시 준비하게 했다.
이미 빅리그를 경험한 베지환에게 마이너리그 무대는 좁았다. 배지환은 트리플A에서 맹타를 휘둘렀고 5월 중순 빅리그의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빅리그에서는 들쭉날쭉한 출전 속에 좀처럼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결국 8경기 .208/.269/.208 2타점 2도루의 성적을 기록한 뒤 6월 초 트리플A로 돌아갔다.
트리플A에서 다시 맹활약을 펼친 배지환은 7월 말 다시 빅리그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반등은 없었다. 빅리그 복귀 후 21경기에서 .180/.236/.220 4타점 4도루를 기록했고 결국 다시 강등 통보를 받았다. 기대주가 부침을 겪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문제는 배지환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배지환은 빅리그에서 중견수로 504.2이닝, 2루수로 501.1이닝을 수비했다. 우익수(62.2이닝), 유격수(24이닝), 좌익수(8이닝) 수비 경험도 있지만 주 포지션은 결국 중견수와 2루수다.
피츠버그는 배지환과 동갑내기이자 팀이 2020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7순위)에서 지명한 내야수 닉 곤잘레스를 주전 2루수로 이미 낙점했다. 배지환은 빠른 발을 바탕으로 중견수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이제는 중견수 자리에도 확실한 주전 선수가 생겼다. 바로 피츠버그 야수 최대의 기대주인 오닐 크루즈다.
1998년생 크루즈는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가진 선수로 팀 주전 유격수였다. 하지만 중앙 내야수로는 지나치게 큰 체격(201cm 97kg), 어깨는 강하지만 불안한 수비 능력이 늘 문제가 됐다. 피츠버그는 최근 크루즈를 외야로 이동시켜 주전 중견수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크루즈는 곤잘레스보다도 더 팀의 기대를 받는 선수. 배지환이 크루즈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크루즈가 떠난 유격수 자리에도 주인이 있다. 바로 여름 이적 시장에서 영입한 베테랑 유틸리티 요원인 아이재아 카이너-팔레파다. 카이너-팔레파는 골드글러브 출신의 안정적인 수비력을 가진 선수로 올시즌을 앞두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2년 계약을 맺은 뒤 트레이드 돼 내년까지 계약이 이어지는 선수다.
크루즈가 외야로 향한 가운데 팀 최고 스타인 브라이언 레이놀즈가 외야 한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피츠버그가 올여름 시장에서 마이애미 말린스에 심준석을 내주고 영입한 중장거리 타자 브라이언 데 라 크루즈도 외야수다. 주력과 수비력만으로 경쟁에서 물리치기는 쉽지 않은 선수들이고 빅리그에서 보여준 것도 배지환보다 많은 선수들이다.
배지환이 빅리그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올시즌은 물론 지난해보다도 훨씬 뛰어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수비와 주루에서 확실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타격에서도 어느정도 생산성을 보일 수 있어야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생존할 수가 있다.
배지환은 이제 막 25세가 됐다. 아직 젊고 연봉조정신청 자격도 2025시즌이 끝나야 얻을 수 있다. 마이너리그 옵션도 남아있는 만큼 다음시즌까지는 그래도 피츠버그 입장에서도 큰 부담 없이 기회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연봉조정신청 자격을 얻어 연봉이 상승하게 되면 스몰마켓 구단인 피츠버그는 얼마든지 배지환을 포기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의미있는 시즌을 치른 뒤 남다른 각오를 다졌지만 부상으로 추락한 배지환은 힘겨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성적 하락에 넘어서기 어려운 포지션 경쟁자까지 등장했다. 과연 배지환이 이 위기를 이겨내고 다시 빅리그로 돌아와 날아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자료사진=배지환)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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