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집게손' 수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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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넘쳐나는 온라인 명예훼손·모욕 사건에 이미 적잖은 수사력을 쏟고 있는 경찰에게 이런 안도감은 혐오 범죄 확산, 고소·고발 업무 폭증 같은 실질적 문제로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좀체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세상의 혐오 딱지를 떼어내는 데 엄정한 수사가 혁혁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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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세상 곳곳에 덕지덕지 빨간 딱지가 붙었다. 안아달라는 아이에게 조금만 더 걸어 보자고 할 때 쓰는 그 흔한 손짓에도 혐오 경고가 얹히는 형국이라니. 진짜 '그 뜻'을 담았는지 검증할 수도 없는 손모양 하나에 결국 홍보물을 내리는 기업과 기관이 한둘이 아닌 걸 보고선, 나는 절반쯤 항복하고 말았다. '집게손'이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기로 한 거다.
'고소인 또한 페미니스트를 동조하는 듯한 내용의 트위터 글을 게시한 사실이 있는 바, 피의자들이 고소인을 대상으로 비판하는 것은 그 논리적 귀결이 인정된다고 보인다.'
집게손 애니메이터로 허위 지목된 여성 측에 경찰이 보낸 불송치 통지서를 본 후엔 나머지 절반의 관심까지 모두 끌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페미니즘은 좇아서는 안 되는 철학이란 시선, 그에 '동조했다'며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결론까지 어느 하나 고개를 끄덕일 구석이 없었다. 페미니스트라면 '메갈' '니애미니애비' 같은 단어가 들어간 명예훼손과 모욕을 응당 삼켜야 한다는 결론이 되는데, 경찰은 '트위터의 공조가 필요한데 회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무책임한 설명으로 그 실체조차 접근할 수 없게 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서초경찰서 이름으로 불쑥 한 장짜리 입장문이 나왔다. '판단이 미흡했으니 재수사하겠다'는 일종의 사과문이다. 사건 기자로 꽤 오래 지낸 편인데도 경찰서가 특정 사건을 두고 수사가 부족했다고 인정하는 공식 자료를 내는 건 처음 보는 일이다. 경찰 고위관계자가 300여 건의 고소 사건 중 일부는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직접 판단한 뒤의 전개다.
어물쩍 사안을 넘기지 않았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이 사건으로 경찰에 남겨진 흉의 크기를 봐선 크게 위로가 되진 못할 것 같다. 1차 수사 종결권을 쥔 경찰은 어느 정부 기관보다도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서는 곳이다. 경찰에게 부당한 일상 침범을 털어놔야 하는 국민 입장에서 이 사안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엄격한 법 기준을 적용한 결론이라도, 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서 혹은 누군가 함께 문제 제기해 주지 않아서 부당한 수사가 이뤄졌다고 의심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범죄자들의 무대가 점차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추세를 고려해도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이 사건의 가해자들은 물론 다수 누리꾼들에게 '이 정도 비판이나 모욕은 해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생긴 탓이다. 경찰 스스로도 강력범죄가 아니면 해외기업 공조를 받기 어렵다며 '수사 계속의 실익이 없다'고 결론 내리는 상황에서, 누리꾼들의 경각심이 살아 있을 리 없다. 넘쳐나는 온라인 명예훼손·모욕 사건에 이미 적잖은 수사력을 쏟고 있는 경찰에게 이런 안도감은 혐오 범죄 확산, 고소·고발 업무 폭증 같은 실질적 문제로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좀체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세상의 혐오 딱지를 떼어내는 데 엄정한 수사가 혁혁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다시 소매를 걷어붙인 서초서 수사를, "당당한 법 집행을 하겠다"는 새 서울경찰청장의 다짐을 어느 때보다 응원한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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