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의료대란 위기에도… 尹-韓, 해법 없이 갈등만

조권형 기자 2024. 8.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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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의대 증원 유예땐 혼란”
韓 “어떤게 정답인지만 생각해야”
30일 예정 만찬, 추석이후로 연기
‘PA간호사 합법화’ 간호법 국회 통과
6개월 넘은 의료공백, 현장 남은 의료진의 ‘사투’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신생아가 들어 있는 인큐베이터를 끌며 이동하고 있다. 의료공백이 6개월 이상 이어지며 현장에 남은 의료진이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지만 의정 모두 해법의 실마리를 못 찾는 모습이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일반 병원이 쉬는 추석 연휴에 경증 환자까지 응급실로 몰리면서 ‘의료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도 대통령실과 여당이 실질적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제안한 ‘2026학년 의대 정원 증원 보류’ 중재안을 둘러싸고 대통령실과 한 대표 측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30일로 예정됐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 등 당 지도부 간 만찬을 돌연 추석 연휴 이후로 연기했다. 국민 건강 및 민생과 직결되는 의료공백 사태가 최대 고비를 맞았음에도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여권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28일 한 대표의 중재안과 관련해 “대안이라기보다는 의사 수 증원을 하지 말자는 얘기 같다”며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2026학년도 정원은 4월 말 공표됐고 현재 고2에 해당하는 학생 수험생 학부모들이 그걸 함께 목표로 해서 준비하고 있다”며 “잉크도 마르기 전에 다시 유예한다면 입시 현장 혼란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 증원 규모에 대해서도 “합리적 근거로 추론하고 예측, 조정해서 양성하는 것은 국가의 권한이기보단 책임”이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날 여당 지도부에서도 한 대표와 달리 “의료 개혁은 한 치도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며 대통령실에 힘을 싣는 입장이 나왔다. 친윤(친윤석열)계인 추경호 원내대표는 “정부 추진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당도 함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대표는 “국가 임무는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라며 “어떤 게 정답인지만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당이 민심에 맞는 의견을 전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 대표는 의료공백 장기화의 심각한 상황을 대통령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반드시 대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한(친한동훈)계 지도부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당정 갈등 프레임으로 ‘내가 내린 결정에 의견을 내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단세포적으로 반응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의대 교수들의 모임인 전국의대교수협의회는 “집권 여당이 의료 붕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2025학년도 증원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여야는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르면 내년 6월부터 의사 업무를 일부 담당해 온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의료 행위가 합법화된다.

‘의대 증원 유지’ 고수하는 尹, 여당은 ‘증원 유예’ 불쑥 제시

[6개월 넘어선 의료공백]
여권 의료공백 해법 못찾고 갈등만
대통령실 “추석 응급대란 없을 것”… 韓 중재안엔 전공의協도 반대 의사
의료계 원로들 “대통령실 양보 필요”… “원점 재검토 요구 의료계 문제” 지적도

의료공백이 장기화되고 추석 연휴 응급의료 대란이 목전에 닥친 가운데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여당 대표가 ‘2026학년도 증원 보류’를 중재안으로 제시했다가 대통령실이 거절하고 ‘의정 갈등’이 ‘당정 갈등’으로 번지면서 조속한 의료공백 해소를 바라던 국민들의 우려가 더 커지는 모습이다.

동아일보 취재에 응한 의료계 원로 및 전문가들은 “사태가 이렇게 된 건 대통령실과 정부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시에 대안을 내고 갈등을 조정할 책임을 방기해 온 정치권과 환자 불편을 외면한 채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해 온 의료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 ‘2000명 증원’ 한 발도 양보 안 한 정부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태가 반년 넘게 이어지는 동안 “비상진료 체계를 유지하며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하며 의사들에게 증원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태 초반 이어갔던 의사단체와의 물밑 접촉도 사라진 상태다.

대형병원 응급실은 물론 필수의료과 상당수가 차질을 빚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일부 언론이 의료계 목소리나 특정 사례를 부각해 국민 불안을 조장한다”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8일에도 “국민 생명과 직결된 사안에 굴복하면 정상적 나라가 아니다”라며 원칙론을 되풀이했다. 또 “추석 응급의료 대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추석 응급의료 대책을 통해 현장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대통령실과 정부가 사안을 정확하게 보지 못한다는 분위기다. 왕규창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은 “의료 현장에서 여러 지표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조만간 의료대란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사들 사이에선 특히 응급실 내원 환자가 평상시의 2배로 늘어나는 추석 연휴가 고비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또 정부 일각에서 이번 고비를 넘으면 전공의와 의대생이 버티지 못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오지만 의료계의 시각은 다르다. 정지태 전 대한의학회장은 “전공의들을 만나보면 내년에도 복귀하지 않겠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 방침대로 증원되더라도 지방·필수의료 살리기란 정책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계 원로들은 눈앞에 닥친 의료대란을 막으려면 대통령실이 한발 물러서 협상의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왕 원장은 “2026학년도 증원을 보류해도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와 의대생 복귀 여부가 불확실한데 이마저 거부하는 대통령실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꼈다”며 “정면돌파를 하겠다는 태도는 더 큰 (국민의) 희생을 불러올 뿐”이라고 했다.

● 뒤늦게 중재 나선 정치권

여당에 대해선 대통령실 눈치만 보느라 중재에 나설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년 넘게 의료공백이 이어졌지만 4월 총선 직전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의사 단체와 접촉한 것 외에는 사태 해결을 위해 이렇다 할 노력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에선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의대 정원 400명 증원을 추진해 의사단체가 반발했을 때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9·4 의정 합의를 이끌어낸 것과 대조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동훈 대표
한 대표가 불쑥 제시한 ‘2026학년도 증원 보류’ 중재안 역시 대통령실과 의료계 양쪽 모두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힘을 잃은 상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8일에도 “2026년도 증원 유예는 의사 수 증원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실현 가능성 없는 대안”이라고 일축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관계자도 “내년도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라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앞서 한 대표는 20일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중재안을 언급했지만 동의를 못 얻었다고 한다. 여당 관계자는 “일단 용산 대통령실과 협의해 중재 가능성을 만들어 놓고 다시 의료계와 협의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한 대표가 중재안을 내는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는 분위기다. 왕 원장은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해선 결국 국회가 나서야 하는데 6개월간 정치권이 사안을 너무 가볍게 본 것 같다”고 지적했다.

● ‘원점 재검토’ 버티기만 하는 의료계

의료계 역시 환자 불편을 외면한 채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하며 의료공백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의료공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과 박 위원장이 주도권 다툼만 벌이면서 타협안을 논의하는 테이블에 앉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단체 내부에서도 “이미 입시 절차가 시작된 만큼 내년도 증원을 뒤집긴 어려운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지만 ‘내년도 증원 원점 재검토’를 외치는 강경파에 밀려 소수 목소리에 그치고 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사단체도 정부에 요구만 하고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려 해선 안 된다. 더 이상의 환자 피해를 막기 위해 타협도 생각해 볼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조권형 기자 buzz@donga.com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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