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로봇, 박물관으로 들어오다
어린 시절 로봇은 만화영화의 단골 주제였다. '과학입국'이 지상명제였던, 남자어린이 절반은 과학자가 장래희망이던 시절이다. 은하계 저 끝에서 외계 생명체가 우리를 위협하지 않아서일까. 아직 초합금과 원자력 에너지로 움직이는 초거대 로봇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잘 모를 뿐이지 로봇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암약한다.
IFR(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ics)의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노동인구 1만명당 1012대의 로봇을 사용, 노동인구 대비 산업용 로봇 사용 1위 국가에 올랐다. 싱가포르(730대) 독일(415대) 일본(397대)이 뒤를 잇고 있다. 로봇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분야는 전기·전자제품 제조 및 자동차공업이다. 그러나 산업용 로봇에 비해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서비스 로봇은 다른 나라에 못 미친다.
서비스 로봇은 물건 제조에 사용되지 않는 로봇을 의미한다. 판매량을 기준으로 보면 운송·물류, 접객, 의료, 전문청소(방역 등 포함), 농업 순이다(IFR 2022년 통계). 그러나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역시나 가정용 청소로봇이나 식당의 서빙로봇이 아닐까 싶다.
박물관에 종사하며 가장 예상치 못한 일이 로봇 도입이다. 흔히 박물관이라고 하면 오래된 물건을 보관·전시한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모두 비슷하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옛 물건에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가지 최첨단 기술이 구현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로봇이 박물관을 활보하고 다닐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2018년 12월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국문화정보원은 전시안내 로봇을 개발, 박물관 '역사의 길'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큐아이'란 이름의 이 로봇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는 걱정이 많았다. 특히 이보다 몇 달 앞서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이 일본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상용 로봇 '페퍼'(pepper)를 기증받아 시범운용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로봇이 안내 키오스크와 다른 이유는 자율주행과 대화기능일 텐데 공간을 인지하고 장애물을 피해 이동하며 또 전력이 부족하면 충전기로 돌아오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관람객이 가장 호기심을 느낄 대화기능은 원활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데다 천장이 높아 센서를 민감하게 설정하면 잡음이 섞여 알아듣지 못하고 반대로 하면 이용자의 목소리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관람객의 질문을 예측하지 못한 까닭에 충분한 답변을 학습시키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한계였다.
그 뒤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담인력을 배치, 로봇이 알아듣지 못하는 질문을 확인해 답변을 학습시키고 한국문화정보원은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개선방안을 찾았다. 또 원하는 장소로 직접 안내하는 동행인솔 기능을 추가했다. 아직 연속된 대화를 할 수 없고 가끔 실수도 하지만 이제 박물관의 새로운 직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번째로 관람객, 특히 박물관이 친숙하지 않을 수 있는 어린이나 외국인 관람객에게 호기심을 유발한다. 두 번째로는 답변하지 못한 것까지 모든 질문을 기록함으로써 박물관에 관람객의 니즈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인포메이션 데스크의 직원은 관람객의 질문에 더 친절하고 정확한 안내를 제공하지만 대화내용을 모두 기록하거나 통계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이제 로봇도 다섯 살이 됐다. 아이가 성장하듯 로봇도 이처럼 성장했다. 혹자는 인공지능을 일컬어 '사람의 피와 땀, 뼈와 살을 갈아 만든 두뇌'라고 한다. 그만큼 그 기술이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여러 사람의 헌신과 노력이 담겼다는 뜻일 것이다. 로봇 덕분에 박물관 관람이 즐거웠다는 한 가족의 메모를 보며 태권브이가 아닌 현실 속의 수많은 '김 박사' '윤 박사'를 생각한다.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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