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간호조무사 학력 기준’ 문제로 본 한국 사회의 집단이기주의
여야(與野)가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을 통과시키자,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법은 간호사가 진단하고, 투약 지시하고, 수술하게 만들어주는 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간호사 불법 진료 신고 센터를 운영해 피해 신고를 받고, 의사 10만명 정당 가입 운동을 통해 의사의 정치 세력화를 꾀하겠다고도 했다.
다른 한쪽에선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간호법의 핵심 쟁점인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 학력 제한 폐지’가 빠졌다”며 “국회가 90만 간호조무사를 외면하고 배신했다”고 비판했다.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은 PA(진료 지원) 간호사 법제화와 함께 간호법의 양대 쟁점이었다. 현행 의료법엔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이 ‘특성화고 간호학과 졸업자’와 ‘간호 학원 교육 이수자’로 제한돼 있다. 국민의힘은 ‘그 밖에 상응하는 교육 수준을 갖췄다고 인정된 사람’이란 항목이 추가된 간호법안을 내놨다. 학력 제한은 불합리한 차별인 만큼 향후 전문대 간호조무과 신설 시 졸업생에게도 응시 자격을 주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반대로 무산된 것이다.
PA 간호사 법제화를 놓고 의사(반대)와 간호사(찬성)가 맞섰다면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 문제는 간호조무사(완화)와 간호사(현행 유지)가 대립해 온 사안이다. 대한간호협회는 전문대 간호조무과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조무사=고졸 또는 학원 출신’이란 인식을 깨고 처우를 개선하려면 간호조무과 신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간호조무사들은 “의료계 카스트 제도 아래 간호사들이 대졸 간호조무사 수가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한다.
간호법 통과 결과만 놓고 보면 세 그룹 중 승자는 간호사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법안 통과 과정을 지켜본 환자와 국민 눈에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병원이라는 한 공간에서 일하는 이들 간 감정의 골과 불신만 보였다. 한 환자 단체 대표는 “의사들이 PA 간호사 숫자가 늘고 역할이 확대되는 것을 반대한 것처럼 똑같이 간호사들도 간호조무사들에겐 그랬던 것 아니냐”고 했다.
정부는 전공의 빈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PA 간호사 등의 역할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간호사들에게 가중될 업무 부담을 감안하면 그 일부라도 나눠 짊어질 숙련된 간호조무사가 더 필요하다는 게 국민 입장에선 상식적이다. 그런데 관련 논의는 없었다. 보건 의료 직종 중 유독 간호조무사만 전문대 내 관련 학과 설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 등 많은 의료계 단체는 간호법 통과 국면에서 저마다 수많은 입장문을 쏟아냈다. 입장문엔 자기주장의 근거로 ‘의료의 질’ ‘국민 건강’이란 단어를 매번 등장시켰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그 단어 뒤에 ‘우리 이익은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는 집단 이기주의를 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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