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 사태 놓고 또 충돌, 尹·韓은 ‘협의’는 안 하기로 작정했나
대통령실은 오는 30일 예정됐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추석 이후로 연기한다고 했다. 당정 화합과 소통의 자리를 갖겠다고 한 지 이틀 만이다. 한 대표가 제안한 의대 증원 유예에 대한 이견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주요 현안마다 정면 충돌하는 것이 몇 번째인지 모를 지경이다.
국민의힘은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해 내년 의대 정원을 1497명 늘리는 기존 정책은 유지하되 이듬해 증원은 유예하자는 뜻을 정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즉각 “정부 방침에 변화 없다”고 거부했다. 한 대표는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게 국가의 임무이며 당은 민심에 맞는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고 했고, 대통령실은 “증원은 불변”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내부도 ‘증원 보류’와 ‘정부 방침 지지’로 갈라졌다.
주요 현안에 대해 정부와 여당 사이엔 당연히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의사 증원 문제처럼 갈등이 첨예한 사태에 대해선 더 그럴 것이다. 정부 여당이 책임을 다 하려면 사전에 심도 있는 논의와 조율을 거쳐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국정 혼란이 없고 국민도 안심한다. 한 대표는 고위 당정에서 한덕수 총리에게 ‘증원 유예’ 제안을 했지만 한 총리는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방적으로 발표할 게 아니라 추가 논의를 거쳤어야 했다. 대통령실도 여당이 고심 끝에 낸 제안이라면 바로 거부하기보다 더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곧바로 감정 싸움으로 들어간다.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그동안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현안마다 이견을 표출하며 충돌했다.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문제에 대해 “국민 눈높이”를 얘기하자 대통령실은 곧바로 사퇴를 요구했다. 총선 때는 이종섭 전 국방장관,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 문제와 비례대표 공천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채 상병 특검법 수정안,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 문제로도 충돌했다. 오래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한 대표는 당대표 선출 뒤 “내 목표는 윤 정부의 성공”이라고 했고, 윤 대통령은 “우리는 운명 공동체”라고 했다. 하지만 소통과 협의 없이 자기 목소리만 낸다. 정치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조정해 합의를 이뤄내는 일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아닌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마치 ‘협의’와 ‘타협’ ‘존중’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한다. 이래서 2년 9개월 남은 임기가 어떻게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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