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트라우마 극복하려면 [정찬승 기고]
수치심, 가해자가 느껴야 할 감정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과 함께
자존감 회복 위한 모두의 지원을
대학교·고등학교·중학교에 이어 초등학교까지 전국에 걸쳐서 딥페이크(deep fake·AI로 만든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로 인한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연예인·정치인 등 유명 인사뿐만 아니라 학생·교사·군인 등 나이와 신분을 불문하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딥페이크를 악용한 온라인 성폭력에 잠재적으로 노출된 상태다.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자는 거짓으로 조작된 영상과 이미지에 등장한 자신의 나체와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을 보고 엄청난 트라우마를 받는다. 그 영상을 보았을지도 모를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직장·학교·거주지를 떠난다. 온라인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얼마나 그 영상이 퍼졌을지 짐작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회 활동을 포기하고 은둔하는 경우도 있다. 외출할 때 지나가는 사람과 우연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혹시 그 영상을 본 사람일까 봐 공포에 질려 시선을 피한다. 현실과 가상 세계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세상에 대한 안전감을 잃어버려 극심한 불안에 빠진다. 신고하고 관련자를 처벌해도 그 영상이 어딘가 남아서 나중에라도 누군가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막막하고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언제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해 사용하던 소셜 네트워크에 올려진 자기 사진을 모두 삭제하고 탈퇴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개인의 딥페이크 피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성의 사회 참여와 연결성, 자기표현을 위축시키는 심각한 악영향을 남긴다.
학교에서는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네 못생긴 얼굴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딥페이크 당할 리가 없어!’라고 조롱하는 말을 내뱉고, 남녀 간의 긴장과 다툼으로 번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폭력에 무감각하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트라우마는 모든 것을 갈라 놓는다. 직장도, 학교도, 친구도, 교사와 학생도, 딥페이크 트라우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트라우마에서 회복하려면 ‘안전 확보’ ‘기억 회복’ ‘연결하기’의 3단계가 중요하다. 세상에 대한 안전감이 무너진 피해자에게 안전을 확보해 주려면 딥페이크를 제작하고 유포하고 소비한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함께, 딥페이크 피해자의 보호와 정신 건강 지원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어른은 물론이고, 초·중·고 학생에게 딥페이크 음란물이 얼마나 나쁜지, 그리고 그 피해자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큰지 가르쳐야 한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느껴야 할 감정이다.
상담과 치료, 주위 사람들의 지지를 통해 피해자는 가짜 영상과 자신의 진짜 모습을 구별해 원래의 자기 자신과 자존감을 기억하고 회복할 수 있다. 따뜻한 위로는 피해자가 고립된 상태를 벗어나서 가족·친구·학교·직장 등 단절된 것들과 다시 연결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이 끊이지 않는 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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