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은주]문제를 지적하는 이가 문제가 돼버리는 조직이라면…
선수 이의 제기에 힐난하는 스포츠 협회
개선 가능성 없다고 판단 땐 조직원 이탈
‘항의’ 누르는 폭력 없어야 조직에 희망
우리나라에서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이 1970년 출간한 저서의 원제는 ‘이탈, 항의, 그리고 충성: 쇠락해 가는 회사,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Exit, Voice, and Loyalty: Responses to Decline in Firms, Organizations and States)’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조직에서나 합리성, 효율성, 기능성의 감소는 불가피하고, 따라서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이러한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이다.
갈수록 후져지는, 서서히 망해가는 조직에 불만이 쌓일 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①고통스럽지만 과감하게 떠나거나(이탈) ②문제를 제기하고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키려고 애쓰거나(항의) ③누군가에 의해 혹은 어떤 계기로 인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 묵묵히 견디는 것(충성) 중 하나일 터다. 댄 패럴은 1983년 경영학회저널(Academy of Management Journal)에 게재한 논문에서 여기에 ④‘(수수)방관’이라는 선택지를 명시적으로 추가한다. 업무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태만한 상태로 늑장을 부리거나 심지어 꾀병치레를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데, 요샛말로는 ‘월급 루팡’쯤이 되겠다.
조직 내 갈등이 불거질 때 흔히 듣게 되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격언은 ‘항의’ 대신 ‘이탈’을 권하는 것이다. 일견 세속을 초탈한 듯 현명해 보이는 이 조언은 실상 매우 무책임하고 파괴적인 것일 수 있다. 절이 싫어진 이유가 이웃 사찰에서 제공하는 절밥이 더 맛있어 보인다거나 문득 머리를 길러보고 싶어져서가 아니라, 염불 욀 시간에 시주를 더 받아 오길 강요하는 주지스님 혹은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승려들이 절에 넘쳐나기 때문이라면, 이런 상황에 회의를 느낀 승려들이 모두 이탈한 후의 절은 더 이상 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패럴의 유형 분류에서 ‘이탈’이 능동적이면서 파괴적인 반응 양식으로 정의된 이유다.
문제는 용기를 내어 문제를 드러내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 즉 능동적이면서 건설적인 반응인 ‘항의’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유무형의 폭력이다. 조직을 좀먹는 잘못된 관행, 규정 또는 관리 공백, 이를 약삭빠르게 이용하여 사익을 취하는 사람들을 짚어내 쇠락해 가는 조직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싸잡아 “내부 총질”로 단죄하고,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배신자” “수박” 등으로 매도하는 것이 일상화된 현실은 지극히 한탄스럽다. 조직의 화합과 단결이라는 이름으로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고, ‘이탈’을 강요하는 조직에서는 자정 노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느 조직이든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비전과 목표가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 협회라면 응당 해당 종목의 대중화를 통해 국민 체력 향상 및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한편, 우수 선수를 발굴하고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국가대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체계적인 선수 육성 및 관리’는 대한배드민턴협회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핵심 목표 중 하나다. 그런데 만일 해당 시스템을 수년간 겪어 온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선수가 현행 제도와 운영 방식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형평성 운운하며 입을 틀어막아서는 안 될 일이다. ‘항의’는 조직에 애정을 가지고 조직의 목표 달성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취하는 반응이기 때문이다. 너만 비즈니스석 태워 줄 순 없다고 힐난하는 대신 나라를 대표해서 중요한 경기에 출전하는 다른 선수들도 비즈니스 클래스를 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혹자는 왜 하필 외국에서 “누워서 침 뱉기”식 폭로를 했는지 문제 삼는 모양이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항의’를 면밀히 살피고 이를 엄중하게 받아들여 개선을 도모하는 내부 시스템이 아예 부재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외부에 알려서라도 해결해야 할 절박한 문제도 있을 법하지 않은가.
언제 조직을 떠날지 결정하는 것은 현재 겪는 고통의 크기가 아닌 미래의 개선 가능성에 대한 예측이다. 문제를 지적하는 순간 내가 오히려 문제가 되어 버리는 조직이라면 그런 회사, 학교, 정당, 협회, 국가가 앞으로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기는 어렵다.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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