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정면돌파 택한 한동훈…‘기회냐 위기냐’ 여론에 달렸다
한, 갈등 불사 ‘명분 있다’ 판단…제안 무위 땐 리더십 타격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둘러싼 당정 갈등이 확산하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정치력 시험대에 섰다. 일단은 의대 증원 유예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정면돌파를 택했다. 여론이 한 대표 쪽으로 기울면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정책 조율·갈등 조정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한 대표는 28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정 갈등이 당정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을 두고 “국가의 임무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라며 “거기에 대한 논의, 어떤 게 정답인지만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의대 증원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이슈”라며 “당이 민심에 맞는 의견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대통령실이 한 대표 제안을 재차 일축한 이후에도 증원 유예 입장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원내사령탑’인 추경호 원내대표 역시 대통령실 입장에 힘을 실으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추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의료개혁은 한 치도 흔들림 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데에서 정부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당도 함께할 생각”이라고 했다. 친윤석열계 의원들은 한 대표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대통령실 출신 한 의원은 “본인이 정말 (유예안을) 관철하려고 했다면 대통령을 여러 차례 만나서라도 설득했어야지 고위당정 때 국무총리한테 몇분 만에 툭 통보하는 게 어딨냐”고 했다.
갈등은 가팔라지고 있다. 친한동훈(친한)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통화에서 “(대통령실이)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지 않냐”며 “당과 대통령 잘되자고 하자는 건데 내부총질은 대통령실이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한 대표 제안을 사실상 즉각 거절하고 “폄하하자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반응을 보인 것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면충돌 양상에도 한 대표가 뜻을 굽히지 않는 데는 이번 사안에 갈등을 불사할 명분이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의·정 갈등은 전체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한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당정 갈등으로 비치는 건 부담스럽지만 사람이 죽어나가는 게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냐”고 말했다. 한 대표 제안에 따라 의·정 갈등 문제가 풀린다면 윤 대통령으로부터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 대표 측은 시간이 흐르면 한 대표 측으로 여론이 기울 것이라고 기대한다. 코로나19 재확산에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친한계 인사는 통화에서 “추석 연휴 지나면서 (의·정 갈등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는) 국민들의 압력이 엄청 세질 것이라고 본다”며 “시간은 한 대표 편”이라고 말했다. 친한계 핵심 인사는 “결국 국민 여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확고한 반대 입장을 돌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한 갈등이 길어지고 한 대표 제안도 무위에 그칠 경우 리더십 타격은 불가피하다. 당대표 출마 당시 공약이었던 제3자 특검법 발의가 당내 반발에 부딪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의대 증원 문제마저 돌파하지 못한다면 한 대표 정치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 있다.
유설희·이보라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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