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받은 만큼 돌려주고자 읊는 양양 예찬
연고도 없고, 살아본 적도 없지만 나는 꽤 당당하게 강원 양양을 ‘내 구역’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면 “오! 서핑?” 하는 반응이 열에 열. 그럴 만도 하다. 양양은 제주 중문, 부산 송정과 함께 ‘국내 서핑 성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살고 있는 동네에서 200㎞ 남짓 떨어져 있는 양양을 좋아하고, 또 즐겨 찾는다는 이와 서핑을 연결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2017년 봄, 처음 양양 죽도해변에 간 날을 기억한다. 일에 대한 욕심, 그에 비례하는 업무 긴장도에 과부하가 걸린 시기였다. 쉬는 날만큼은 일에서 멀어져 보자고 다짐했다. 물리적으로 서울 도심,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이 양양행의 물꼬를 터주었다.
마을회에서 운영한다는 야영장에 자리를 잡았다. 키 큰 소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 해변, 반짝이는 바다,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함께 바다 위로 미끄러지는 서퍼들. 숨이 탁 트이는 동시에 노곤해져 까무룩 잠이 들었다. 한껏 텐션 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는 선잠이었는데도 깨고 나서 개운한 기분이 들었던 그날이 생생하다.
서핑도 해봤다. 두 번인가, 세 번인가. 그마저도 입문자 강습을 포함해서 꼽은 횟수긴 하지만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에 얼마나 생기가 도는지 그 기분이 궁금해져 시도나 해보자고 한 것. 그러나 끝내 몸에 딱 붙는 서핑슈트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럼 지난 7년간 양양을 드나들며 뭘 했냐고? 뭐 그리 특별난 것은 없다. 어느 날엔 종일 바닷가에서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깨어나면 양심상 책도 좀 보고. 캠핑이 귀찮은 날엔 숙소를 잡고 근처 포구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는 무리 곁에서 한나절 그네들 시선 따라 낚시찌만 바라보기도 했다. 단, 양양에서의 모든 시간은 고개 돌려 시선이 닿는 곳에 서퍼들이 있었기에 유의미했다. 한여름이고 한겨울이고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서퍼들은 특유의 활기찬 기운을 뿜어냈고, 이는 양양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내게 양양은 여유가 있을 때 가는 곳이 아니라 여유와 활력을 수혈하러 부러 찾아가는 로컬이 됐다.
내 감흥과 달리 요즘 양양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다. 올여름 ‘위기의 양양’ ‘양양이 어쩌다’와 같이 부정적이다 못해 눈으로 읽기에도 민망한 자극적인 키워드를 내세운 뉴스와 기사가 연이어 보도됐다. 여기에는 강원특별자치도에서 동해안 6개 시군을 대상으로 집계한 피서객 증감 결과치가 근거자료로 붙었다. 고성, 속초, 강릉, 동해, 삼척까지 5개 지역의 피서객은 전년보다 크게 늘고, 양양만 급감했다는 게 골자였다.
양양을 우려하는 말들 속에는 서핑의 성지로 입소문이 난 양양의 해변이 ‘핫플레이스’로 인식되면서 일종의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도드라진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있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 있는 무리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그들에게 서핑은 일종의 ‘패스트 패션’으로 소비되는 모양새다. 그사이 서퍼들이 오가던 양양 해변은 대도시 클럽가처럼 들썩이게 됐다.
다수의 지역이 ‘우리 지역은 이런 곳’이라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상징성을 갈망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 경쟁력을 갖추려 애를 쓴다. 그런 면에서 지난 십수년 서핑을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지역 경제에도 활기를 불어넣은 양양의 변화는 ‘지역소멸’이라는 화두 속에서 단연 주목받아왔다. 새삼 매력적인 ‘지역색’을 갖고,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되짚어 보게 되는 이유다.
나는 양양이, 양양 사람들이 근래의 소란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거라 믿는다. 파도를 읽고, 좋은 파도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니까. 수년간 체감한 바 서퍼들이 중심이 된 양양의 지역공동체는 그들만큼이나 건강했다. 서퍼는 아니지만 그들을 동경하고 그네들에 물든 나 역시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올여름은 바쁘다는 핑계로 건너뛰려 했는데 안 되겠다. 양양으로 달려가야지. 받은 만큼 돌려주러.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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