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대통령의 자격, ‘미미미미’ 대 ‘유유유유’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 민주당과 공화당은 대규모 전당대회를 열어 자당 대선 후보를 공식 지명한다. 전당대회는 대체로 나흘간 진행된다. 찬조 연설자들이 분위기를 달구고, 사흘째 부통령 후보 연설에 이어, 마지막날 대통령 후보가 수락연설로 대미를 장식한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는 지난 19~22일(현지시간) 시카고에서 열렸는데, 셋째날 무대에 오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연설에 눈이 갔다.
클린턴은 “다음에 도널드 트럼프가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면 거짓말이 아니라 나(I)를 몇번 말하는지 세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무대에 오르기 전 ‘미(me·나), 미, 미, 미’라고 노래 부르며 시작하는 테너 가수 같다”고 했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해선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매일 ‘유(you·당신), 유, 유, 유’로 시작할 것”이라고 대비시켰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트럼프와 “모든 미국인이 꿈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줄” 해리스 중 누가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는 자명하다는 얘기일 게다.
클린턴의 말대로 해리스가 평소에도 ‘유유유유’하는지, 그런 대통령이 될 자질이 있는 후보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트럼프가 ‘미미미미’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에는 공감이 된다. 트럼프의 집권 4년을 지켜본바, 그는 자신만 옳다고 여겼고, 비판자들에겐 독설을 날렸다. 국제사회에선 ‘아메리카 퍼스트’만 있었다. 미국 사회는 극단으로 분열됐고, 세계질서는 뒤틀렸다. 최근 미국의 젊은층, 여성이 해리스에 대해서 힐러리 클린턴 때보다 적극적 지지를 나타낸다는데 트럼프 악몽에 대한 반작용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계 어느 나라든 대통령이 되려는 자는 ‘나’를 앞세우지 않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보수 대통령들이 대선 캐치프레이즈에 ‘미’ 대신 ‘유’를 더 많이 넣었다. 노태우는 ‘보통사람’, 이명박은 ‘국민성공시대’, 박근혜는 ‘국민이 행복한 나라’였다. 결국은 국민의 뜻을 거슬러 실패한 대통령이 됐지만, 말로는 국민이 우선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내걸었다.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는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뜻이었을 터다. 국민들은 이내 배반당했다. 대화·타협과 통합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정반대인 독선·불통으로 갔다. 어설프게 꺼낸 정책이 마음대로 안 되면 야당을 탓하고, 야당 주도 입법은 죄다 거부했다. 취임 2년3개월 동안 인사청문회 대상 공직자 60명 중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이는 29명으로, 절반도 안 된다. 국정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유화했다. 국정 지지도는 30%를 밑돌고, 부정 평가는 60%를 넘는다(한국갤럽 발표 기준). 윤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잃고 고립되고 있다.
이쯤되면 생각을 달리해 ‘나’보다 ‘국민’을 먼저 고려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요즘엔 사람을 써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같은 뉴라이트·극우를 골랐다. “윤 대통령은 뉴라이트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계실 정도”(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라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들만 찾았는지 기괴한 일이다. 윤 대통령이 그나마 ‘남’을 먼저 배려하는 대상이 있다면 일본이다. 우리 국민 속을 뒤집어놓으면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용인하고 과거사에는 면죄부를 주니 말이다.
윤 대통령은 자기 갈 길을 막으면 피아 구분도 없다. 한때 ‘정권 2인자’로 불렸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배신자 취급이다. 한 대표는 전대 때 약속한 채 상병 특검법을 대통령 눈치 보느라 요리조리 회피하고 있다. 민생을 위해 “지난 한 달간 많이 참았다”는 그가 의·정 갈등 중재 카드로 2026년도 의대 정원 증원 보류를 제안했는데,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일언지하에 거부됐다. 용산은 고민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집권여당이면 잔말 말고 대통령 하라는 대로만 하라는 거다. 이런 식이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으로의 외연 확장을 꾀하는 ‘한동훈 여당’도 내쳐질 수 있다. 아니, 윤 대통령이 여당에서 버림받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그건 윤 대통령이 자처한 길이다.
나밖에 모르는 국정의 결말은 실패한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왜 굳이 대통령이 되려고 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미’ 대신 ‘유’를 생각해야 한다. 유튜브가 아니라 민심을, 진보가 싫다면 합리적 보수의 말이라도 듣길 바란다. 임기가 절반이 지나지 않아, 반전의 시간도 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점점 꺼지고 있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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