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국가교육위원회 일파만파
지난주 SBS를 시작으로 몇몇 언론매체들은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가 수능 이원화, 고교 내신평가의 외부기관 출제, 평준화 기조 약화 등을 골자로 하는 중장기 개혁안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국교위는 즉시 공식 입장문을 내고 그 내용은 단지 ‘아이디어’ 수준일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것이 13 대 8로 다수를 점하고 있는 보수 측 위원들로부터 나온 생각이라는 점, 그리고 지금까지 국교위의 의사결정이 투명성이나 사회적 합의 등 보다는 폐쇄된 논의를 통해 전개되었고, 게다가 이번에는 단체 채팅방의 짬짜미로 ‘사전 조율’까지 시도했다는 점 등은 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한 개인 전문위원을 해촉하는 데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당시 논의되던 ‘아이디어’들 가운데 특히, ‘고교 내신평가 외부기관 출제’라는 제안은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교육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아이디어 수준에서라도 결코 나오면 안 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내신 평가를 외부기관에 돌린다는 것은 교사를 무력화한다는 뜻이고, 일제고사를 상시화한다는 뜻이며, 학교서열화를 통해 평준화를 폐지하겠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다. 대학입시의 편의성을 위해 다른 모든 교육적 가치를 포기하겠다는 극단주의적 발상이다. 얼마나 기가 막히면 어느 사교육 유튜버는 “반국가세력 혹은 백치”나 낼 만한 아이디어라고까지 혹평을 했다.
평가의 중심이 학교 안에서 학교 밖으로 이동할수록 교육은 표준화되고 오직 수능식 문제풀이 중심으로 고정된다. 모든 학교의 시험이 동일하게 될 테니 학원들은 기뻐 환호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교육 시장은 바로 이런 표준화를 먹잇감으로 삼기 때문이다.
수많은 아이디어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일부 위원들이라도 이런 몰상식한 수준의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국가교육의 미래 비전을 좌우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또한 이 정도의 ‘날것’으로서의 아이디어도 사전에 걸러내지 못하고 회의 안건화하도록 내버려두면서, 급기야 언론에까지 유출되게 만든 조직의 무지와 무기력함에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들이 5성급 호텔에서 혈세를 펑펑 쓰고 있었다는 MBC 보도는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이런 기구에 안심하고 국가교육 중장기계획을 맡겨 놓을 수 있을까?
이쯤 되면 국교위가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든다. 현재의 국교위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작동 방식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돌아보면, 지난 2년 동안 국교위가 보여준 행태는 몇 가지 근본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첫째, 미래를 개척하는 진취적 상상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현재 당면한 문제 해결에 급급할 뿐, 선제적으로 새로운 판세와 플랫폼을 설계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둘째, 교육 문제 전반에 관한 시스템적 접근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각 전문위원회 혹은 특별위원회별로 개별 사안들이 서로 나뉘어 난무할 뿐,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과 프레임이 보이지 않는다. 셋째, 기구 운영의 본질인 사회적 합의를 실천하고 있지 못하다. 국교위는 그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조에서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각종 비전과 정책, 계획 등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그 조직의 구성 방식, 운영 과정, 성과 공유 등의 측면에서 전혀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공청회 몇번 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는 아니다.
이번 국교위 임기도 2년이 다 되어간다. 앞으로 1년 후면 국교위 구성원들이 바뀐다. 제2기부터라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려면 지금부터 다양한 제도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상임위원 혹은 최소한 위원장만큼이라도 국회의 인사검증을 거칠 필요가 있다. 또한 위원 및 전문위원 선정에서 기존의 당파성을 떠나서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검증된 인사들이 위촉될 수 있도록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사회적 대타협 과정을 국교위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교위 내부 합의 과정을 투명하고 자세하게 국민에게 공개하되, 국교위 회의록에서 발언자를 구체적으로 명기하고, 내용도 국회 속기록에 버금가도록 자세히 공개할 필요가 있다. 혹은 모든 회의 과정을 유튜브 등으로 공개하는 방식도 검토해볼 만하다. 셋째, 올해 말이면 향후 10년간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이 만들어질 텐데, 여기에 내부 전체 회의에서조차 타협이 이뤄지지 않은 쟁론적 사안을 무리하게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합의가 이뤄진 부분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면 된다. 국교위가 당장 내년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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