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오늘]공항은 공항이고, 폭력은 폭력이다
강한 플래시를 얼굴에 쏘면 특수폭행죄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됐다. ‘변우석 과잉 경호 논란’이 화제가 되며 언론에서 나온 얘기다. 공항에서 경호원이 팬의 얼굴에 플래시를 발사하는 일은 그간 일상처럼 벌어져왔다. 한데 피해 대상이 대한항공 프레스티지 라운지 이용객과 일반인이 되니 전대미문의 사건처럼 다뤄지고 있다. 발생 단 5일 만에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질의를 받았고, 현재 경비업법 위반으로 관련자 4명이 입건됐다. 해당 경호업체 대표가 “경호원이 플래시를 비추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 인정하고 사과도 했다. 나는 이 온도 차가 너무나 얼떨떨하다.
심하게 밀쳐서 넘어뜨리고 폭언을 하는 ‘전통적인’ 팬 대상 폭력과 이번 사건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해당 경호원들은 플래시를 쐈을 뿐만 아니라, 권한 없이 통로를 막고 탑승권을 검사하는 중대한 업무방해 행위를 했다. 그러나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해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경비업법을 위반한 본질은 같다. 오히려 팬 대상 폭력은 더 진지하게 논의돼야 한다. 그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대책을 세웠더라면 이번 과잉 경호 논란은 터지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체 경찰력이 있고 24시간 밝은 공공장소인 공항에서 늑골이 골절되고 뇌진탕 진단을 받는 수준의 폭행이 꾸준히 일어나는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게다가 피해 대상이 욕망을 표현하는 여성집단이라는 사실은 여성혐오가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복잡한 상징성을 가진다.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동 응답 메시지처럼 돌아오는 “그러게 누가 공항 가래?”라는 면박은, 가부장제의 레퍼토리인 “맞을 만해서 때렸다”와 똑같은 말이다. 세상에 그래도 되는 폭력은 없다. 공항은 공항이고, 폭력은 폭력이다.
과잉 경호 논란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건 연예인이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팬을 방치한 공범자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가장 시끄러운 경호를 받고도 아무것도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구설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사실을 밝히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어렵다. 공항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폭력 그 자체로 인정되기 위해선 연예인은 연예인이고 경호원은 경호원이라는 분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경호원의 폭력이 표면적으로 정당화되는 이유는 공항에 오는 팬들이 연예인의 프라이버시와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공개되지 않는 정보를 구해서 공공장소에서 위험하게 몰려드는 상황은 분명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화제성이 돈으로 환산되는 관심경제 시대에 공항에서 팬을 제외하는 것은 점점 불가능한 미션이 되고 있다. 엑스(구 트위터)에서 “공항 정보”를 검색하면 단돈 2000원에 입출국 정보를 살 수 있다. 왜 연예인의 개인정보가 염가에 후려쳐지고 있을까?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운집한 인파가 인기의 척도가 되며 입출국 정보가 더는 기밀이 아닌 상황이 됐다. 요샌 연예 전문매체 유튜브에서 입출국 라이브를 한다. 타이밍만 잘 맞추면 예고를 보고 시간 맞춰 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공항은 마케팅의 주요한 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해외 스케줄을 소화하러 가는 성공한 스타의 이미지, 신경 썼으면서 마치 쓰지 않은 듯한 협찬 의상을 입고 인간적인 매력을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주체가 공항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공짜로 누리는 현실이 ‘변우석 과잉 경호 논란’을 유발했다. 진정한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해선 먼저 이 복잡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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