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환의 진화의 창]왜 종교적 믿음을 지니는가
인류학자 파스칼 보이어의 책 <종교, 설명하기>에는 어느 날 그가 손님들을 초대해 만찬을 함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자신이 현장 조사하고 있던 카메룬의 팡 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팡 족은 마녀의 배 속에 특별한 내장이 하나 더 들어 있다고 믿는다. 이 내장 때문에 마녀는 한밤중에 마을 위를 날아다니고, 사람들의 작물을 망치고, 피에 독을 푼다는 것이다. 가끔 마녀들은 성대한 잔치를 벌여서 희생자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다음엔 누구를 공격할지 계획을 짠다고도 했다. 팡 족 사람들은 자기 친구의 친구로부터 하늘을 날던 마녀가 바나나 잎사귀에 내려앉거나, 순진한 희생자들에게 마법 화살을 던지는 모습을 보았다는 말을 분명히 전해들었다고 했다.
보이어가 팡 족의 진기한 믿음을 알려주고 있을 때, 손님 중에 어느 유명한 가톨릭 신학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인류학이 대단히 흥미롭고도 어려운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겠지요. 사람들이 어떻게 그처럼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믿을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하니까요.” 보이어는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마음을 가다듬고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하는 격이네요’라며 응수하려는 순간, 대화 주제는 벌써 다른 걸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그처럼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믿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물론 타당하다. 다만 여기서 주어는 팡 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인류임을 유의해야 한다. 연구 초창기에 보이어는 팡 족에게 대다수 유럽인이 지닌 종교적 믿음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세 사람이 뚜렷이 서로 구별되면서도 동시에 정말로 한 사람이라는 믿음, 그리고 인류가 현세에서 겪는 모든 불행은 옛날 두 명의 조상이 정원에서 이국적인 과일을 따 먹는 바람에 생겨났다는 믿음 말이다. 팡 족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경악했다. 만약 가톨릭 신학자가 자신들의 믿음을 비하했음을 나중에 알았다면, 팡 족은 이렇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사돈 남 말 하시네!
왜 인간은 ‘기이한’ 종교적 믿음을 지니는가? 왜 그처럼 유별난 믿음을 무시하기는커녕 그럴듯하다고 여길까? 언뜻 생각하면 기이한 개념, 즉 세상과 사물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거스르는 초자연적 개념은 무엇이든지 종교를 이루는 요소가 될 듯하다. 꼭 그렇지는 않다. 하늘을 나는 거대한 섬, 제물로 바친 음식을 먹어치우는 산, 말하는 고양이 등은 민담, 소설, 동화에 단골로 등장하지만, 종교를 이루는 요소는 아니다. 초자연적인 개념 가운데 일부분만 종교에 포함된다. 동물이나 인간처럼 의도와 목표를 지닌 일반적인 행위자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위반하는 신, 혼령, 정령, 악마, 조상님에 대한 개념이 그렇다.
진화의 관점에서 종교적 믿음을 연구하는 인지종교학자들은 종교를 이루는 초자연적 개념이 무엇이며, 그것들이 인간의 마음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 엄밀하게 밝혀야 한다고 본다. 이 말은 곧 인간의 원초적이고 형이상학적 욕구가 종교를 만들었다고 학창 시절에 배웠던 지식이 다 틀렸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가설은 번개, 홍수, 폭풍, 지진, 돌림병처럼 불가사의한 자연현상을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종교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연현상에 대해 종교가 내놓는 ‘설명’은 궁금증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부채질한다. 번개가 신이 악인에게 내리는 징벌이라면, 왜 그토록 비효율적인 수단을 택했을까? 그냥 악인이 사고나 질병을 당하게 하면 되지 않나?
인지종교학자들은 각 문화권에서 ‘종교적’이라고 여겨지는 믿음이나 행동을 판별한 다음에, 왜 어떤 믿음이나 행동은 여러 문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 탐구한다. 예를 들어 신, 혼령, 조상님 같은 초자연적 행위자에 대한 믿음,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 사고나 질병을 초자연적인 행위자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 초자연적 행위자에게 대한 헌신, 엄숙한 종교 의례 등은 여러 문화에서 발견된다. 마음속의 어떤 심리적 적응이 예기치 않게 활성화되어 각 문화에서 종교적인 믿음 혹은 행동을 만드는지 흥미로운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종교를 참이자 진리로 받아들인다면, “왜 인간은 종교적 믿음을 지니는가?”라는 질문은 싱겁기 짝이 없는 질문이다. 신의 가르침이니 응당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여러분이 보기에) 그토록 기이한 믿음을 따르는지 솔직히 궁금하다면, 종교의 과학적 탐구는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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