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에 2000원, 어차피 안 걸려"…딥페이크에 전국 '발칵' [이슈+]

김영리 2024. 8. 2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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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성착취물' 이미 상업화 됐다
피해자 10명 중 3명 미성년자
2000원대 값싼 가격에 10대 접근성 높아
"처벌 수위 약해…10대는 놀이로 인식하기도"
국가수사본부 사이버범죄수사과 김문영 경감이 28일 서울시내에서 수사참고자료로 활용하는 딥페이크 탐지 소프트웨어를 설명하고 있다. 교복을 입은 학생이 담겨있는 사진은 딥페이크 기술이 활용된 가짜 합성물이다. /사진=뉴스1


딥페이크 성범죄물이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유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울시의 한 여자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사진이 담겨있던 학교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당분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당분간이라도 가급적 인스타그램 사진을 내리거나 비공개 처리하라"고 권고했다. 이 학교 교사 A씨는 "담임선생님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비활성화하더라"라며 "26일부터 가정통신문도 계속 배포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지역 중학교 교사 B씨도 "피해 지도를 보니 다행히 재직 중인 학교는 아직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자발적으로 개인 신상이 유출될까 봐 얼굴이 나온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아예 SNS 계정을 삭제한 학생들이 더러 있다"고 전했다.

이어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을 겪게 돼 비뚤어진 성 관념을 갖게 될까 우려스럽다"면서 "졸업 앨범에 있는 담임선생님의 사진을 활용한 사례도 있다는 말이 교사들 사이에서 돈다. 이런 일이 터지니 당장 나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며 우려했다.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딥페이크 성범죄 정황이 수면 위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참여 인원만 수십명에 이르러 상업화된 딥페이크 성범죄물 제작방이 나오는가 하면, 특정 학교·지인능욕·가족 등 주변인을 내세운 텔레그램 대화방이 활개 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의 특징은 10대 피해자와 가해자가 눈에 띌 정도로 많다는 점이다. 28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8월 25일까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로부터 딥페이크 피해 지원을 요청한 781명 가운데 무려 36.9%에 달하는 288명이 10대 이하였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허위 영상물 성범죄 가해자 120명 중 91명(75.8%)은 10대였다. 전날 경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개월간 서울에서만 딥페이크 합성물을 만든 청소년 10명을 검거했다.

높은 SNS 참여도, 값싼 가격으로 인한 낮은 접근성, 안일한 법 지식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성범죄가 발생하는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사회적 파장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1장 2000원...10대 피해자 왜 많나

딥페이크 사진 제작방의 일부 대화 화면. 대화방 참여자만 28만명에 이른다. /사진=추적단 불꽃 제공


여성의 얼굴에 나체 사진을 합성하거나,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시켜 음란물을 제작하는 것을 딥페이크 성범죄라고 부른다. 이때 여성의 얼굴이 담긴 사진만 있으면 가짜 합성물을 만들 수 있어, 피해자와 가해자의 물리적 접촉이 있었던 과거와 달리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 수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경닷컴은 이날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활동가에게 이번 사건에서 유독 10대가 두드러지는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우선 가짜 합성물을 제작하는 데에 드는 비용이 매우 저렴하다는 점이다. 앞서 텔레그램에서 활동하는 모 업체는 사진 1장을 제작하는 것에 약 2000원으로 가격을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 딥페이크 사진 제작방에서는 '다이아' 등으로 불리는 일종의 포인트를 구매해 사진을 제작하게끔 하는데, 돈이 부족하다해도 친구를 초대해 이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원 활동가는 "아직 미성숙하고 성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많아질 시기인 10대가 유혹에 휩쓸리기 쉬운 구조"라며 "범죄를 저지르는 데 드는 비용이 저렴할뿐더러 친구를 초대한다면 심지어 무료로도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이 딥페이크 제작방의 참여 인원을 빠르게 늘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빠른 수익화를 목적으로 삼는 운영자 입장에서 10대를 마치 '홍보책'처럼 활용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외 10대의 SNS 참여도가 다른 연령대 대비 높고, 학교별로 묶여 생활하는 집단성이 범죄의 전파 속도를 올렸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원 활동가는 다양한 피해 제보를 접하고 있다면서 "이를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들이 역으로 본인의 신상정보가 털려 순식간에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채 그저 가벼운 '놀이문화'로 여기고 있다"며 "딥페이크 사진 제작방 운영자 등 어른들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피해자 2000명 이상일 것"

딥페이크 피해학교 지도. 중학생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된 바 있다. /사진=딥페이크맵 캡처


원 활동가를 비롯해 교사, 법조계 전문가들은 모두 "피해자 인원이라고 언급되는 2000여명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입 모아 지적했다. '익명성 보장'을 내세운 텔레그램의 특성상 애플리케이션(앱) 내에서 활동하는 가해자들은 잡기가 어려워 가해자들 사이에서 '어차피 안 잡힌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꼬리가 잡힌다 해도 처벌 수위가 낮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어렵게 검거했다고 해도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2항에 따라 처벌되는데, 이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날 여성변호사회는 성명을 통해 "현재 딥페이크 성범죄는 성폭력범죄처벌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면서 "각 법률마다 한계가 있어 효과적인 규제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입법 공백을 보완하고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원 활동가는 "무엇보다 딥페이크 범죄가 피해자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았더라도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는 이에 상응한다는 점이 알려져야 한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추후 대응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며 "수사 기관에서도 딥페이크 성범죄에 많은 인력을 배치해 면밀한 조사를 부탁드린다"고 재차 요청했다. 

다만 그는 "현재 관련 학교 지도나 제보를 공개하는 엑스(X) 계정과 같이 피해 사실을 알리는 수단들이 모두 민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잘못된 정보로 사적 제재가 일어나는 등 또다른 파장이 생길까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단은 관련 정보를 범죄 예방과 피해자 보호의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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