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도파기 위험’ 불거진 체코 원전 수출, 정부는 예상 못했나
한국의 체코 원전 수주 사업이 지식재산권 문제로 암초에 부딪혔다. 미국 기업 웨스팅하우스는 체코전력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듀코바니 원전 2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데 대해 체코 반독점당국에 지재권 위반, 미국 핵수출통제 규정 위반으로 제소했다고 26일 밝혔다. 미국 기술을 활용한 원전을 제3국에 판매할 때 웨스팅하우스가 미 정부에 신고해야 하는데 한수원이 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간단히 풀릴 사안이 아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의 수주가 “불법적인 미국 기술 이용”일 뿐 아니라 “웨스팅하우스 본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주의 1만5000개 일자리 유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펜실베이니아는 미 대선 경합주여서 미국 정부로선 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웨스팅하우스는 2022년 한국의 폴란드 원전 수주 시도 때도 같은 이유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웨스팅하우스가 법대로 하자는 데는 원전이 사양산업이 되어가는 현실이 있다. 위험성·경제성 등을 이유로 에너지원에서 원전 비중은 갈수록 줄고 있다. 시장의 한정된 파이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어서 한 치도 양보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는 예상할 수 있었다. 지난해 4월 한·미 정상 워싱턴선언에 “양 정상은 각국의 수출통제 규정과 지재권을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IAEA 추가의정서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세계 민간 원자력 협력에 참여하기로 약속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정부는 당시 한·미가 원전 수출에 협력하기로 했다는 점을 부각했지만, 뜯어보면 이 문구는 웨스팅하우스 입장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을 예상하지 않고 원전 수출에 나섰다면 문제다. 그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의 9월 체코 방문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원전 수주가 목표라면 윤 대통령이 먼저 가야 할 곳은 미국이 아닌가.
한국의 체코 원전 수주엔 다른 암초도 많다. 유럽 내 재생에너지 시장 급성장으로 인해 원전 경제성이 하락하고, 엄격한 원전 안전·노동 규제 등으로 공기·비용이 늘어날 수 있으며, 체코 정부의 자금조달도 난제로 꼽힌다. 원전 수출 성과에 집착하느라 과도한 외교력·행정력·예산이 쓰이는지 국회가 검증해야 한다. 정부는 “24조원 수출 쾌거” “1000조원 원전 수출시장 진출” 등 불명확한 성과 홍보만 앞서가지 말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는 현실적인 에너지 정책에도 힘을 쏟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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