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우야든동 흥해래이
無의 공간이 상상력 키워…우리만의 놀이터 가꿔보길
김종희 문화공간 빈빈 대표
무더위로 몸부림치는 날 구지봉에 올랐다. 이글거리는 지열로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여름 햇살 냄새가 전신에 부딪쳤다. 하필 그런 날에 답사를 가느냐고? 답사의 백미는 그런 날이다. 너무 뜨거워 꿈틀거리는 생물들이 어딘가로 숨어버릴 때, 오직 대상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외물이 사라지면 밖으로 향한 감각이 안으로 향한다. 일체의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그곳에 스며들 수 있는 날이라야 오롯이 대상에 몰입할 수 있다. 오랜 답사 경험의 결과 얻은 나름의 논리인 셈이다. 인적 드문 삼복. 누구도 밟지 않는 시원을 열어가는 환희로 역사와 설화 사이, 신화와 문학 사이를 걸어가는 묘한 즐거움을 맘껏 누리는 것이다.
가야는 수로왕 등장 이전부터 부족 국가가 다스렸다. 어느 날 구지봉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우리들이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구지봉이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명하기를 임금이 되어 이 땅을 다스리라 했다. 너희들은 땅을 파고 춤을 추며 이렇게 노래를 불러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잠시 후 머리를 들어보니 자주색 끈이 하늘에서 땅에 닿아 있었다. 끈이 있는 곳 붉은 상자 안에 여섯 개의 황금알이 있었다. 알에서 처음 나온 사람을 수로라 하고 나라 이름을 대가야 혹은 가야국이라 했다는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는 건국 신화 이상의 의미로 존재한다. 혁신도시, 양성평등, 민주 절차, 다양성, 다문화, 통합과 화합의 정치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대부분의 문제가 거기에 있으며 해결 방안 또한 거기에 있다.
구지봉은 광장문화의 시원이다.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하여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광장이다. 구지봉은 형체 없는 소리를 좇아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광장이며 춤과 노래라는 놀이의 사회학이 시작된 곳이다. 놀이란, 단지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의 놀이는 창조적 행위이며 그 결과 개인과 사회는 성장한다.
놀이는 인간의 정신을 말랑하게 한다. 절대적 가치로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틈을 발견하는 눈을 놀이는 만들어준다. 흥이나 신바람은 잘 노는 사람들의 공통된 성정이다. 신바람이란 어떤 경우에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다. 놀이란 시름을 덜어내는 방법이며 관계를 열어가는 길이다.
우리는 흥의 국민이다. 우스갯말로 손주의 코를 풀리는 할매도 ‘흥’하고 추임새를 넣어준다. 흥의 DNA는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그 출처를 구지봉에 비추는 상상만으로 이미 관자놀이가 올라간다. 철의 제국 가야는 통합과 화합의 정치를 열어 가는데 그것이 음악을 통한 조화로운 통치였다. 음악정신의 보편성은 공감이다. 공감은 타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감성의 지평을 열어간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조화로운 사회를 열었던 가야는 생각할수록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다.
그러나 구지봉에 가면 아무것도 없다. 정작 아무것도 없어서 더 많이 있다. 어떤 조형물도 설치되지 않아 오히려 상상력은 배가 된다. 무엇이든 스토리를 입혀 불편한 상징물을 기어이 만들고 마는 현장이 얼마나 많은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구지봉은 관광의 대상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여행이다. 땅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상상하는 여행, 나아가 나를 발견하는 여행이다. 입에서 입으로, 기억에서 기록으로, 막연함에서 구체성으로 우리의 원형을 이끌어낸다. 그렇게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열린 행사장으로 문패를 붙인 시장 관사가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난다. 일 년여에 걸친 대대적인 리뉴얼 끝에 공개될 공간과 장소가 궁금하다.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그곳은 석학 초청 강연과 시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꼭 무엇을 채워 넣고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그 공간과 장소만큼은 그냥 놀이와 그냥 여행의 장소여도 좋겠다. 도시철도 2호선 남천역과 금련산역의 중간지점,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어 원경의 마린시티와 광안대교를 차경할 수 있는 잔디밭.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을 벗어나 마당을 가지고 싶은 시민이 한낮의 햇살을 맘껏 가질 수 있도록 기계적인 프로그램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일상의 놀이터…. 어디에나 있는 카페테리아가 없어도 좋을 공간. 나의 광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열어가는 이야기가 계절마다 농밀하게 익어갔으면 좋겠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가장 많이 하는 것이다. 일상의 무거움을 덜어내고 음악처럼 보고 그림처럼 듣는 열린 장소 열린 공간이면 좋겠다.
열매들 속살을 채우는 끝물 더위, 멀리 가을 오는 구지봉에서 듣는다. 우야든동 웃어래이. 우애든동 흥해래이.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