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료붕괴 코앞`… 누구도 총대 안 멘다
정치권 중재 손놓고 입장 고수
의사계, 정부 협상 제안 무반응
애꿎은 국민들만 '죽음' 내몰려
정부가 28일 추석연휴를 '비상대응주간'으로 정하고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진료수가)를 250%까지 올리기로 했다. 응급실 진료 후 신속한 입원과 전원이 이뤄지도록 응급 수가 가산도 기존 150%에서 200%로 인상하기로 했다. 파격적 인센티브로 응급실을 떠나는 의사를 붙잡고, 보수도 보장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응급실을 떠나는 의사를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에 따른 '응급실 뺑뺑이'가 심각하다.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다가 119 응급차에서 사망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23일 전공노 소속 소방노조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올 상반기에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에 이른 국민이 이미 지난해 수치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응급실 뺑뺑이의 심각성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 22일 한 라디오 프로에 나와 자신이 경험한 응급실 뺑뺑이를 토로하면서 사회적으로 더 비화했다. 이마가 깨져 119대원들이 22곳 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병원에서 안 받아줬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정부가 의료공백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수련의가 있는 상급병원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 외 수련의 제도가 없이 운영되는 지역종합병원이나 그 밑에 급 종합병원들은 응급실 운영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28일 현재 파악한 바로는 병상측면에서 408개 응급의료기관 중 응급실 병상 운영이 감소한 곳은 28곳이다. 병상 수 기준으로는 2.6%가 감소했다. 이런 수치를 토대로 정부는 응급실 뺑뺑이가 과장됐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은 "최근 응급실 전담인력의 사직 등이 증가하고 있어 일부 응급실은 24시간 근무를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그래서 특별대책을 발표했다"고 실토했다.
전공의 이탈 6개월 됐지만 의료 공백은 이제 시작이라는 지적도 많다. 초기 간헐적으로 일어나던 수술 지연과 취소는 전국 130여 상급병원에서 일상화되고 있다. 주변에서 수술기일을 잡지 못해 사태가 악화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점점 흔해지고 있다. 정부의 의대증원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여전히 70%(6월 기준)를 넘는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척이 수술을 제때 못 받고, 응급상황에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빈발하면 지지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응급실 공백에 대해 항간에는 두 가지 말이 나돈다. 환자 입장에선 '아프면 곧 산송장 된다', 과로의 의사들은 '응급실을 폐쇄하면 응급실 문제는 해소 된다'는 말이다. 국민의 치료받을 기회와 권리가 망가진 현실을 의사와 환자 입장에서 한탄한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제를 풀 정부와 의사, 이를 중재할 여야 정치권은 제 입장만 고수하거나 방관만 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의료붕괴를 막기 위해 제안한 2026년 의대증원 유예 제안을 거부했다. 대통령실은 "국민생명과 직결 사안에 굴복하면 정상적 나라 아니다"며 의대증원 등 의료개혁을 밀고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집권여당 내에서조차 의견조율이 안되고 제 주장만 반복하는 것이다.
반면 의협 등 의사계는 정부의 협상 제안에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수차례에 걸쳐 복귀시한을 늦춰졌지만 복귀한 전공의는 2%도 안 된다. 정부에 백기를 들라는 요구다. 이런 상황에서 건보노조의 29일 파업 예고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고대병원, 중앙대 병원 등 일부 대형병원에서 극적 타결이 되고 있지만, 전공의 공백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정부와 의사계의 극한 대립에 중재역할을 할 수 있는 주체가 그나마 정치권이다. 특히 야당의 중재는 중립적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무슨 '특위'를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을 뿐 의사계와 정부를 만나 적극 설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국면을 즐기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8일 "의사 정원 2000명을 늘리겠다는 근거가 대체 뭔가"라며 "5년 안에 1만명 늘리겠다 할 게 아니라 10년간 분산할 수 있지 않나"라고 했다. 그동안 정부가 밝혀온 증원 배경에 관심이 없었다는 토로다. 분산 증원이 의사들을 설득할 하등 힘이 없다는 점도 자명하다.
국민의 생명을 놓고 정부, 의사계, 정치권의 무책임한 고집과 방관이 계속되면서 애꿎은 국민들만 죽음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누구도 총대를 안 메는 것이다. 암시민연대 등 환자단체연합회는 "조속한 의료정상화만이 생명을 구하는 길"이라며 의정이 당장 만나 협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료개혁에 줄곧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내놓고 있는 이상돈 중앙대 법대 명예교수는 "다 떠나서 우선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며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정부와 의사계가 각자 주장을 유예하고 응급실과 수술실을 정상화시키는 특단의 결단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강민성·이민우기자 mw38@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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