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증원 유예안’에 격노한 용산…시험대 선 ‘한동훈 리더십’
명품백‧채상병 특검‧김 여사 문자 이어 4차 ‘윤-한 충돌’
추경호는 “정부 방침 동의”…與지도부 ‘계파 분열’ 분위기도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의사-정부) 갈등이 당정(여당-정부)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의대 증원 유예안'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하면서다. 의대 증원을 두고 당정이 상반된 진단과 처방을 내놓은 가운데, 당 지도부 내 친한(親한동훈)계와 친윤(親윤석열)계 간의 '계파 갈등' 조짐도 일기 시작했다. 당정과 당 내부에서 동시에 한 대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한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타이밍 미묘? 한동훈과의 만찬 연기한 용산
취재에 따르면, 의대 증원 관련 윤 대통령의 입장은 여전히 '타협은 없다'이다. 피해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미래 세대를 위해 의사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게 윤 대통령의 소신으로 알려진다. 당초 대통령의 이 같은 생각에 여권은 물론 야권에서도 '환영' 의사가 나왔다. 그러나 의료인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정부가 이 같은 움직임에 별다른 제동을 걸지 못하자 '증원 규모 및 시점 조정'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집권여당을 이끌고 있는 한동훈 대표도 정부에 속도조절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 대표는 지난 25일 고위 당정 회의가 끝난 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2026년 의대 정원 증원 유예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27일 페이스북에 "저는 2025년엔 입시요강으로 발표된 증원을 시행하되, 2026년엔 2025년 증원분까지 합한 7500명을 한 학년에서 교육해야 하는 무리한 상황을 감안해 증원을 1년간 유예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며 자신의 입장을 거듭 밝혔다. 올해 모집하는 내년도 의대 정원을 최대 1509명 확대하기로 한 정부 결정은 유지하되, 2026학년도 증원은 재검토하자는 일종의 절충안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의대 증원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한 대표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료 개혁과 관련해 대통령실의 입장은 일관된다. 변함이 없다"며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당 쪽에서의 의견과 전혀 무관하게 항상 일관된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을 두고 당정이 이견을 표출한 가운데, 오는 30일 예정됐던 윤 대통령과 한동훈 지도부의 만찬은 추석 이후로 연기됐다. 대통령실은 당 지도부와 협의한 후 일정을 미뤘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복지위 소속 당 의원들과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제가 이야기 들은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여권에선 한 대표가 의대 증원에 제동을 걸자, 대통령실이 '만찬 연기'로 불쾌감을 표출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용산과 친윤의 견제…"한동훈 정치력 시험대"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정치 현안을 두고 충돌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두 사람은 4·10총선 국면이던 1월 김건희 여사의 명품 명품백 수수 의혹, 3월 '이종섭-황상무' 문제 해법을 둘러싼 1, 2차 충돌에 이어 김 여사 문자-전대 개입 논란으로 3차 충돌한 바 있다. 정치권에선 이번 의대 증원을 두고 '윤-한 4차 충돌설'이 확산하고 있다.
전당대회 후 윤 대통령이 한 대표와 '러브샷'을 하며 외친 '원팀' 기조에도 금이 가는 모습이다. 당장 여당 지도부 내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한 대표는 의대 증원 유예안을 지도부와 논의‧합의 없이 발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추경호 원내대표는 28일 한 대표의 의대 증원 유예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전에 심도 있게 상의를 한 적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의료개혁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하고 정부의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당도 함께 할 생각"이라며 대통령실의 편에 섰다.
대통령실 사정에 능통한 한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한 대표에게 직접 유예안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게 없다"며 "공식적인 루트로 논의가 이뤄진 게 없으니 대통령이 한 대표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표현도 맞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전당대회 당시부터 예고됐던 당정 갈등이 현실화되면서 '한동훈 리더십'에도 정치권 관심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당정 관계 재정립'과 '당의 단일대오'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 대표가 딜레마에 처했단 시각도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사이 신뢰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렇다면 한 대표가 당 지도부, 중진 의원들부터 설득하고 중지를 모아 대통령실에 (의대 증원 유예안을) 전달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한 대표는 원대대표도 모르게 개인의 의견을 대통령실에 전했다. 당내 입지가 없는 상황에서 미숙한 정치력을 발휘한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한 대표가 당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의료개혁이 실패하면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모두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대 증원을 두고 당정이 불협화음을 내는 가운데, 윤 대통령이 한 대표가 제시한 유예안에 어떤 입장을 밝힐 지에도 정치권 관심이 쏠린다. 윤 대통령은 오는 29일 국정 브리핑 겸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 개혁 과제를 직접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오후 윤 대통령이 한 대표와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만날 가능성도 점쳐진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국민의힘 워크숍을 포함해 취임 이후 3년 연속 여당 연찬회나 워크숍에 참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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