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과 충돌에도 ‘정면 돌파’ 택한 한동훈…차별화 기회? 리더십 위기?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둘러싼 당정 갈등이 확산하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정치력 시험대에 섰다. 일단은 의대 증원 유예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정면 돌파를 택했다. 여론이 한 대표 쪽으로 기울면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정책 조율·갈등 조정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조기에 리더십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대표는 28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의정 갈등이 당정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을 두고 “국가의 임무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라며 “거기에 대한 논의, 그리고 어떤 게 정답인지만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의대 증원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이슈”라며 “당이 민심에 맞는 의견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대통령실이 한 대표 제안을 재차 일축한 이후에도 증원 유예 입장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대통령실에 이어 ‘원내사령탑’인 추경호 원내대표 역시 대통령실 입장에 힘을 실으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코로나19에 걸렸다가 이날 복귀한 추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의료개혁은 한 치도 흔들림 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데에서 정부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당도 함께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친윤석열계 의원들은 한 대표가 대통령실과 각을 세우는 것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대통령실 출신 한 의원은 통화에서 “본인이 정말 (유예안을) 관철하려고 했다면 대통령을 여러차례 만나서라도 설득했어야지 고위당정 때 국무총리한테 몇분만에 툭 통보하는 게 어딨냐”며 “차별화를 위한 것 아닌지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양측이 감정적인 발언을 주고받으면서 갈등은 가팔라지고 있다. 친한동훈(친한)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통화에서 “(대통령실이)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지 않냐”며 “당과 대통령 잘 되자고 하자는 건데 내부총질은 대통령실이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한 대표 제안을 사실상 즉각 거절하고 “폄하하자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반응을 보인 것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측 핵심 관계자도 통화에서 “국민 생명이 달린 문제”라며 “고집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고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면 충돌 양상에도 한 대표가 뜻을 굽히지 않는데는 이번 사안에 갈등을 불사할 명분이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는 이번 사안을 앞서 대통령실과 이견을 확인하되 충돌을 자제했던 김경수 전 지사 복권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보고 있다. 김 전 지사 문제는 보수 지지층에 소구하는 이슈였다면, 의정 갈등은 전체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갈등을 불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당정 갈등으로 비춰지는 건 부담스럽지만 사람이 죽어나가는 게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냐”고 말했다. 친한계 핵심 인사도 통화에서 “김 전 지사 문제는 적극 지지층에 관한 문제였다면 이건 국민 전체 생명에 관한 문제니까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한 대표 제안에 따라 교착 상태에 놓인 의정 갈등 문제가 풀린다면 윤 대통령으로부터 확실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여론이다. 한 대표 측은 시간이 흐르면 한 대표 측으로 여론이 기울 것이라고 기대한다. 코로나19 재확산에 추석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친한계 인사는 통화에서 “추석 연휴 지나면서 (의정갈등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는) 국민들의 압력이 엄청 세질 것이라고 본다”며 “시간은 한 대표 편”이라고 말했다. 친한계 핵심 인사는 “코로나19 환자수 급증, 파업 문제 등 여러 상황들을 감안하면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수는 없다”며 “결국 국민 여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대표 측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위기 타개를 위한 불가피한 대안”이라며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것도 나쁘지 않은 상황으로 평가한다. 친한계 핵심 인사는 “여당 대표가 갈등을 불사하고 용감하게 던진 상황에서 야당이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숟가락을 얹은 것”이라며 “여야 관계없이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확고한 반대 입장을 돌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한 갈등이 길어지고 한 대표 제안도 무위에 그칠 경우 리더십 타격은 불가피하다. 이미 당대표 출마 당시 공약이었던 제3자 특검법 발의가 당내 반발에 부딪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의대 증원 문제마저 돌파하지 못한다면 한 대표 정치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 있다. 한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여론으로 돌파하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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